의료계 문제제기에도 복지부 강행 4개월차...환자 민원 급증

얼마 전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에는 30대 이 모씨(여성·가명)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유방재건술을 시행받기 전에 양전자단층촬영(FDG-PET)을 받을 수 있는 방도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2013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유방전절제술을 받았다는 이 씨는 진단 당시 임신 중인 터라 수술 전, 후 한 번도 PET 검사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 와 검사를 받으려고 보니 지난해 12월부터 PET 검사에 대한 요양급여 적용기준 및 방법이 변경됐기 때문에 명확한 재발 소견이 없으면 불가능하단다. 다른 검사들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러려면 PET 한 번으로 끝날 것을 수차례 내원하면서 따로 받아야만 한다. 검사 비용은 물론이고 거기에 드는 제반 비용과 시간, 방사선 피폭량도 만만치 않다.

이 씨는 유방암이 무증상으로 전신 재발하는 경우도 많고, 나이가 젊을수록 재발률이 훨씬 높다고 들었던 터라 더욱 불안하다며,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고 하소연했다.


명확한 재발 소견 없으면 PET 추적검사 '불가'

 

최근 복지부에는 이 씨와 같은 유방암 환자들의 항의전화와 홈페이지를 통한 민원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기존에는 수술 후 1회, 항암치료 중 2회 외에 많게는 수술 후 5년 동안 최대 6회까지 PET 검사가 가능했지만, 2014년 12월 1일부터 '재발이 의심되는 증상, 징후 등이 있거나 재발 범위를 결정하기 위해 촬영한 경우만 인정하고 재발의 임상적 소견 없이 촬영한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급여기준이 변경됐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시행 전부터 간암, 갑상선암 환자 등에 대한 건강보험 혜택이 줄어든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던 만큼 어느 정도 진통은 예상했지만 유방암 환자들의 이 같은 반응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눈치다.

4개월이 지났지만 일선 병원들도 혼란을 겪기는 매한가지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PET 검사에 더 이상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한 암환자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며 "개정 이전에 예약을 마친 환자들은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풀어놨기 때문에 아직 여파가 적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료현장에 혼선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지방 대학병원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집계를 내본 결과, PET 시행 건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밝혔다.

현 사태를 접한 전문가들은 전체 암종에 대해 추적검사 목적으로는 PET 시행이 불가하다는 파격적인 고시를 하려면 적어도 6개월 전부터 세부분과학회 관계자들과 충분한 사전논의가 이뤄졌어야 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10월 대한핵의학회(회장 이재태)를 필두로 대한간학회, 대한간암학회, 대한대장항문학회, 대한폐암학회, 한국유방암학회 등 10개 학회는 공동성명서를 내고 개정고시의 재개정을 강력히 촉구한 바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추적관찰 중 어떤 검사를 어느 시기에 얼마의 간격으로 시행할지 여부는 전문의의 판단이 가장 중요한데, 그러한 진료의 자율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은 강제적인 처사라는 지적이다. 재발이 의심돼 PET 촬영을 했더라도 아닐 경우 삭감의 칼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데다, 비급여 자체가 막혀 있어 환자 본인 부담으로 검사하길 원하는 경우라도 불가능하다는 점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유방암학회 윤정한 회장(화순전남대병원 외과)은 "진료현장에서 임상의의 판단 하에 필요한 환자들에게 검사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률적인 기준을 정해놓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전이 병소가 여러 군데거나 일반 CT, MRI로 판정하기 힘든 병소들과 같이 PET이 꼭 필요한 환자들이 있지만 삭감 우려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유방암 추적 시 정확도·편의성·경제성 'PET' 우위

▲ 복지부 PET 급여기준 개정의 근거 중 하나인 ASCO 문서

획일화된 PET 제한 기준은 암수술 후 재발이 다양한 양상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된다. 같은 암이라도 병기에 따라 재발률에 차이가 있고, 수술 후 재발 시기나 부위, 양상 등이 각기 다른 특성을 나타낸다. 암종에 따라서는 재발할 때 전혀 증상이 없는 경우도 많다.

울산의대 안세현 교수(서울아산병원 유방내분비외과)에 따르면, 수술 후 유방암의 재발률은 25~30% 정도로, 전신재발이 48%, 수술 부위 피부, 흉벽, 유방내부에 해당하는 국소재발이 29%, 액와림프절, 쇄골상부 림프절, 내유림프절에 나타나는 구역재발이 23%다.

수술 후 2~3년 사이에 재발이 가장 흔하고, 70%가 5년 이내에 재발하는데, 이때 통증, 기침, 두통, 덩어리 만져짐 같은 증상이 있는 경우는 32%에 불과하다고 했다. 나머지는 정기검진으로 발견되며, 그 중 3분의 1을 PET(31%)이 차지한다.

유방암의 재발검사 시 PET의 유용성은 여러 논문을 통해 이미 충분히 검증된 상태다.

조기발견 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구역재발의 경우 민감도, 특이도를 감안한 전체적인 정확도 면에서 PET이 유방초음파와 동일하거나 우수하다고 보고됐고(Invest Radiol 2003;38:250-6), 뼈나 폐의 전이 발견도 각각 전신 뼈스캔(Lancet Oncol. 2009;10:606-14)이나 흉부 CT 검사(J Clin Oncol 2008;26:4746-51)보다 정확하다.

연세의대 정준 교수팀(강남세브란스병원 유방외과)은 수술 전 PET 검사가 종양의 분자생물학적 정보를 제시함으로써 유방암 재발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논문(Breast Cancer Res 2014;16:3418)을 발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 표. 비용·시간·방사선노출 모든 측면에서 PET 단독검사가 우위

안세현 교수는 "복지부가 내놓은 근거자료는 '임상의사들과 환자들이 질문해야 하는 5가지 항목에 대해 지혜롭게 선택하기(Choosing wisely, Five things physicians and patients should question)'란 제목의 문서로, 말 그대로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위원회가 제시하는 선택사항에 불과하다. 공식적인 가이드라인이라고 주장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질책했다.

함께 제시된 미국 AETNA 보험 기준 역시 '치료 후 무증상 환자에서 재발 또는 예후 예측을 위한 추적검사는 실험적 단계라고 명시하고 있다'며, 정기적인 PET의 유용성과 검사 시기 및 적정 횟수는 계속적으로 정립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외 환자 입장에서는 방사선 피폭과 편의성, 경제적 측면을 따져볼 수 있다.

     

유방촬영, 유방초음파, 뼈스캔, 흉부 CT, 간초음파로 대체할 수는 있지만, 방사선 위해를 줄이기 위함이라는 복지부 논리와는 달리 5가지 검사의 방사선 노출량을 합치면 12msv 정도가 되면서 PET 단독 검사(10msv) 시보다 오히려 늘어나게 된다<표>.

또한 5가지 검사의 수가비용은 45만 7742원으로 PET 검사비용(47만 2100원)과 비교해 별 차이가 없지만, 실제 환자가 지불하는 비용은 각각 9만 3842원과 8만 3950원으로 많아지게 되고, 1시간 30분이면 끝날 검사를 2번 이상 추가 방문해 6시간 이상 검사를 받아야만 하는 수고도 따른다.

▲ 안세현 울산의대 교수

안 교수는 "환자들의 병원 방문에 따른 시간 손실, 직장 결근, 피로감, 교통비, 식사비, 기타 비용을 합치면 너무나 비경제적이다. 편리한 PET 검사를 놔두고 굳이 힘든 검사를 여러 날에 걸쳐서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PET 관련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고, 적정진료를 유도하겠다는 기본 취지는 이해하지만 의료정책을 경제 논리로만 풀어나가려고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며 "너무나 다양한 특성을 가진 암 관련 검사를 한 가지 기준으로 묶는 것은 넌센스다. 현장에서 암환자들의 목소리의 귀를 기울여 달라"고 피력했다.

한국유방암학회는 현재 내부적으로 대처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정한 회장은 "핵의학회 등 유관학회와 정부 관계자들이 공동으로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복지부는 고시 시행 기준일로부터 6개월 정도 모니터링을 해보고 기준변경이 필요하다면 반영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입장.

보험급여과 관계자는 "유방암 환자들로부터 PET 관련 민원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6개월 후 청구 데이터가 쌓이면 유방암학회 등 전문가들을 모셔놓고 현장의 의견을 청취해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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