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희
서울외과 부원장
가톨릭대학교
인문사회의학과 겸임교수
생명대학원 외래교수
45. 응답하라 의료윤리 - 끝
동료의사와의 윤리

스토리텔링기법 효과적
친구와 수다 떨듯 상담하면
환자, 안도감 느끼고 의사 신뢰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대통령의 소통이 이슈가 되고 있다. 물론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문서나 다른 수단을 이용해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너무하다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 장막을 걷어낸 다음 직접 눈빛의 흔들림을 보면서 서로 이야기한다면 평가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사무적 질문보다 감성적 대화를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듯이 말하는 내러티브 스피킹(narrative speaking)이 의사에 대한 신뢰도, 나아가서 환자의 만족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암이 발견된 지 얼마나 되었나요?"라는 사무적인 질문보다는, 손을 잡고 "많이 놀라셨지요? 하지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저에게도 같은 병을 가진 가족이 있는데요…"라고 시작한다면 환자는 일단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타 직종의 의료인 및 동료 의사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람직한 의료를 위해서는 효과적인 의사소통이라는 사회적 학습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이를 실현하려면 의료 주변 환경이 변화돼야 함은 물론 정부의 법적, 정책적 뒷받침도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스토리텔링으로 공감 끌어내
선순환을 위해서는 우리 자신부터 변화의 물꼬를 터 상대방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결국 양쪽이 같이 가야 하는데, 그 길이 바로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식인 내러티브 스피킹인 것이다. 외국에서는 진작에 여러 분야에서 유행하고 있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아직도 토론 문화라든지 담론 같은 것이 익숙하지 않지만 끼리끼리 수다는 잘 떤다. 그것을 좀 더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의 막무가내식 방해에도 의료보험의 새로운 시도로서 '오바마 케어'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을 상대로 무작정 정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정책에 스토리를 입힌 스토리텔링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국민 대다수의 공감과 동의를 이끌어내는 소통 방식으로 의료 문제에 접근함으로써 의료가 일종의 문화로서 승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의사이며 시인인 마종기의 시 '새로운 소리를 찾아서'에서 그는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소리는 작고 큰 공기의 흔들림이 세 개의 흰 뼈의 다리를 지나 맑은 물에 닿을 때 드디어 피어나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소리는 당신 가슴의 수많은 떨림이 길고 은근한 여행에서 돌아와 드디어 벗은 몸의 밝은 눈을 뜰 때"라고 표현했다.

의학적 술기에만 집착해선 안 돼
우리가 의학적 서술에서 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의과학적 지식은 단지 우리가 병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고 치료할 수 있는 수단일 뿐이다. 우리에게 소리는 가슴에 와 닿았던 자장가 소리, 빗소리나 벌레 우는 소리를 듣고 감성으로 느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 정신 및 영혼의 합일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과 감성을 울리는 말 한 마디로 인해 정신과 영혼이 치유되고 더 나아가 육체의 병이 치료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의사가 치료하는 것은 병이 아니라 병에 걸린 인간인 환자라는 사실이다. 전인적으로 환자를 보아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의학적 지식과 술기에 집착하다가 가장 중요한 인간인 환자에 대한 인간적 관심에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호모 사이언티쿠스인 동시에 호모 엠파티쿠스이며 호모 에티쿠스이다 (인간은 이성적이며 과학적인 동시에 감성과 윤리성을 다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어떻게 보면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행위는 과학이 아니라 의과학적 지식을 수단으로 한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영혼과 마음을 쓰다듬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로써 의료의 궁극적인 목표인 보다 나은 삶과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박제된 '의료문화'가 아닌 역동적인 '문화'로서 의료를 만들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의료는 새로운 문화가 될 것이다.

‘응답하라 의료윤리’ 연재가 종료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의료윤리연구회 필진께 감사드립니다. 
현장에서 진료하는 의사들이 고민하는 의료윤리에 관해 한발 더 구체적인 고민을 담아
오는 7월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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