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리병 치료 권위자, 환 마누엘 폴리테이 박사

전 세계 인구 4만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유전질환 중 하나인 파브리병(Fabry's disease).

세계적인 파브리병 치료 권위자로서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파브리병 환자들을 200명 이상 치료해 왔다는 환 마누엘 폴리테이(Juan Manuel Politei) 박사(부에노스아이레스 신경화학연구소 산하 신경대사질환연구재단)는 "조기진단과 더불어 권장량을 이용한 조기치료가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강조한다.

환자 몸에 결핍돼 있는 효소를 정맥주입하는 방식의 효소대체요법(ERT)을 통해 치료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폴리테이 박사는 "조기 권장량 치료로 신장, 뇌, 심장이나 신경병성 합병증 발생을 감소시킬 수 있다"며 "14년의 오랜 임상경험에 비춰봤을 때 장기적인 합병증 예방 효과가 입증된 약물은 파브리자임(성분명 아갈시다제베타)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내한한 폴리테이 박사를 만나 최신 데이터들을 토대로 파브리병 치료의 현황을 짚어봤다.

 

▲ 환 마누엘 폴리테이 박사가 파브리병의 조기진단 및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Q. 파브리병은 아직까지 국내에서 생소한 질환이다. 질환의 기전과 증상에 대해 소개해 달라.

대표적 리소좀축적질환(LSD) 중 하나인 파브리병은 알파갈락토시다아제 A 효소의 결핍에 의해 당지질 세라마이드 트라이헥소사이드(GL-3)가 체내 세포와 중요 장기에 축적됨으로써 다양한 전신 증상과 합병증을 일으키게 된다.
파브리병 환자의 신장 조직검사에서 혈관 내피에 GL-3가 축적돼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 같은 당지질이 세포 내에 축적되고 크기가 커진 세포들이 혈관을 막음으로써 여러 장기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증상으로는 신경병성 통증을 들 수 있다. 손이나 발, 손끝, 발끝 등에 타는 듯한 작열감을 호소하고 증상의 정도가 심하다는 게 특징이며, 혈관의 폐색으로 인해 뇌에 허혈성 병변이나 뇌경색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그 외 심비대, 신장애나 청각손실, 각막혼탁 등이 일어나기도 하고, 위장관 계통으로는 복통이나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Q. 파브리병의 유병률이 어느 정도인가?

모든 국가들로부터 데이터가 확보돼 있진 않지만 2001년 미국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 기준 4만명당 1명꼴로 파브리병이 발생하고, JAMA 1999;281:249-54에서는 일반인 11만 7천명당 1명꼴로 발생한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태어나는 모든 신생아들을 대상으로 성별에 관계없이 스크리닝을 진행한 결과 이탈리아에서는 신생아 3100명당 1명, 대만은 1500명당 1명꼴로 파브리병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생각보다 더 많은 환자들이 파브리병으로 고통받고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통증과 같은 증상을 처음 호소하는 시기가 4세인 데 비해 대부분의 환자들이 20대에 진단되는 것으로 확인돼, 치료시기 지연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Q. 조기진단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대안은 없나?

증상발생과 진단 시기에 차이가 나타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임상의사들이 파브리병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아 환자가 신경병성 통증을 호소하면 흔히 당뇨병이나 성장통을, 위장관계 증상들을 말하면 식중독이나 맹장염, 염증성장질환 등을 먼저 떠올리게 되고, 성인기에는 뇌졸중, 심비대 또는 신질환으로 유추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환자가 파브리병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는 의료진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임상의들은 손과 발의 신경병성 통증, 두통을 호소하거나 피부질환 또는 청각손실이 시작되는 소아 환자를 진단할 때 파브리병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소아기에 나타나는 파브리병의 증상에 관해 의료진들에게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 환 마누엘 폴리테이 박사

Q. 파브리병의 효소대체요법으로 2가지 치료제가 개발돼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아갈시다제알파 제제(상품명 레프라갈)가 새롭게 출시될 것으로 예고되면서 두 제제간 비교에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둘을 비교한다면?

파브리병을 비롯해 고셔병, 폼페병, 뮤코다당체침착증 등 LSD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체내 결핍효소를 2주에 1번 정맥주입하는 ERT 요법으로 치료한다.
아갈시다제베타와 아갈시다제알파 2가지 치료제가 나와 있는데, 베타와 알파는 각각의 일련 번호일 뿐 성분 자체는 같다고 보면된다. 두 제제 모두 인체에서 효소 유전자를 추출했다는 점과 결과물은 동일하고, 배양체(host cell)에 있어서만 아갈시다제베타의 경우 CHO세포, 아갈시다제알파는 섬유육종이라는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크게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허가용량이다. 아갈시다제베타는 1mg/kg 용량으로, 아갈시다제알파는 0.2mg/kg으로 승인을 받았는데, 아갈시다제베타에는 당성분의 일종인 마노스 6-인산(mannose 6-phosphate, M6P)이 더 많이 포함돼 있어 동일용량에서도 세포 내 효소활성이 훨씬 높게 나타난다.

최근에는 아갈시다제베타 투여용량이 높아질수록 GL-3 제거량도 늘어난다는 용량의존적 반응이 여러 임상을 통해 입증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2013년 노르웨이에서는 젊은 파브리병 환자들을 아갈시다제알파 또는 아갈시다제베타 치료군으로 나눈 뒤 용량별 차이를 확인한 결과 고용량(1.0mg/kg) 아갈시다제베타를 투여했던 군만 신장세포(podocyte)에서 당지질이 깨끗하게 제거됐다는 논문이 발표됐다(J Am Soc Nephrol 2013;24:137-148). 단백뇨가 발생하지 않았던 환자군은 고용량(1.0mg/kg) 아갈시다제베타 치료군이 유일했다.

또한 15세 미만 소아 환자들에게 아갈시다제베타를 1년 이상 지속 투여한 연구(J Pediatr 2008;152:563-70)에서는 GL-3 축적을 크게 감소시키고, 증상개선은 물론 말초신경손상도 가역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었다는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됨에 따라 조기치료의 중요성에 더욱 힘을 실어주게 됐다.

현재 유럽과 미국에서 모두 승인을 획득한 파브리병 치료제는 파브리자임이 유일한데,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아갈시다제알파 제제(0.2mg/kg)를 허가하지 않은 주원인은 신장세포와 같은 주요세포에서 GL-3를 충분히 제거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Q. 파브리병 환자에서 GL-3 제거율이 갖는 임상적 의미는 무엇인가? 아갈시다제알파 제제와 직접 비교한 데이터는 없나?

용해돼 있는 GL-3 농도는 파브리병 치료 결과 예측에 사용되는 유일한 생체 표지자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현재로서는 ERT 요법의 효과나 반응을 평가할 때 GL-3를 관찰하는 방법 밖에 없다. 

두 제제를 직접 비교한 무작위대조연구(RCT)는 없지만 본인이 직접 진행한 연구 중 출판 전 단계인 따끈따끈한 논문을 소개하겠다.
동일한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 12명의 아르헨티나 환자들을 대상으로 아갈시다제베타와 아갈시다제알파를 비교한 연구로, 그 중 2명이 아갈시다제베타로 치료를 시작했다가 중도에 아갈시다제알파 제제로 전환, 또 다시 아갈시다제베타로 처방을 변경했다.
그 결과 아갈시다제베타로 치료를 시작한 환자들은 신경병성 통증이 유의하게 개선됐지만 아갈시다제알파로 변경할 경우 통증이 재발 또는 악화됐다. 아갈시다제알파로 치료를 받은 환자는 1년 정도까지 통증이 감소되는 추세를 보이지만 1년 후에는 다시 악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아갈시다제베타와 알파간 전환요법에 관한 비슷한 연구가 지난해 독일에서도 발표됐었다(J Am Soc Nephrol 2014;25:837-49).

또한 뇌혈관성 질환의 예방이나 진행을 억제하는 효과는 아갈시다제베타에 대해서만 확인됐으며(Cerebrovasc Dis 2014;38:448-56), 아갈시다제알파 제제에서는 확인된 바가 없다.

Q. 뇌혈관성 질환에 대한 효과가 입증됐다는 것은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ERT 요법의 한계점을 극복했다는 의미인가?

ERT 요법 중 BBB를 통과하는 치료제는 없다. 다만 파브리병의 질환 특성상 뇌세포 내에 들어가지 않아도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차이다.

실제 환자의 뇌 MR 영상을 살펴보면 백색 병변이 많이 관찰되는데, GL-3가 축적된 것이 아니라 그 부위에 혈류공급이 억제 및 저해됐음을 나타내는 소견이다. 따라서 신경세포에 대한 혈류공급을 개선해 줌으로써 허혈성 손상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Q. 아갈시다제알파 제제는 투여시간이 40분으로 짧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은?

저용량인 만큼 주입시간이 짧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시간당 주입속도는 동일하지만 용량 차이 때문에 주입시간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아갈시다제베타는 최소 주입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규정돼 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아갈시다제베타를 투여하는 환자에게 3시간 동안 주입을 시작하고, 4회차까지 별다른 이상반응이 없으면 4회 간격으로 30분씩 단축하는 패턴으로 반복하는데 현재 90분 내에 주입하는 환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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