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지친 의사들 '안정 속 혁신' 원해...유권자 10명 중 7명은 투표 안해 '바닥친 민심'

▲'큰 절' 하는 추무진 의협회장. 추무진 회장은 당선증 수령 후 "짧은 시간이었으나 협회를 위해 노력한 저의 진심을 알아주신 회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회원만 바라보고 협회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인사를 전했다.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이슈=추무진 의협회장 연임 의미, 남겨진 과제]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이 제 39대 의협회장에 당선, 앞으로 3년 간 더 의협을 이끌어나가게 됐다.

추무진 회장은 20일 마감된 차기 의협회장 선거에서, 온·오프라인 합산 총 1만 3643표의 유효표(무효 134표) 가운데 3285표를 획득, 24.1%의 득표율로 연임을 확정지었다.

2위를 차지한 임수흠 후보와의 표차가 고작 66표, 3위를 차지한 조인성 후보와의 표차도 146표에 그쳤을 만큼 그야말로 '초박빙'의 승부. 임수흠 후보는 3219표(23.6%)를, 조인성 후보는 3139표(23%)를 각각 획득했으며 이용민 후보가 2211표(16.2%), 송후빈 1792표(13.1%)로 뒤를 이었다.

승부는 끝났지만 이번 선거는 의료계에 몇 가지 생각거리를 남겼다. 첫 직선제 회장 연임이라는 기록과 개혁파의 좌절, 역대 정기선거 사상 최악의 투표율이라는 기록은 의료계의 현 주소를 읽을 수 있는 꽤나 중요한 신호다.

직선제 도입 이후 첫 연임...의사들, '안정 속 혁신' 택했다

의협회장이 재선에 성공한 것은 지난 2001년 직선제 도입 이후 처음이다. 그 사이 2명의 의협회장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채 낙마했고, 2명의 회장이 재선에 도전했다 실패했다. 각종 외풍과 극심한 내부분열로 의협이 부침을 겪은 탓이다.

추 회장의 연임은 이 같은 의료계의 흐름 속에서 꽤나 상징적인 기록이라는 평가다.

내부 분열과 투쟁으로 반목해 온 과거로 회귀하기보다는, 협회의 안정을 바탕으로 외부의 위협을 막아내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사회원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른바 중도·보수 후보들이 강세를 보였다. 추무진 회장을 비롯한 합리적 보수를 표방한 임수흠 서울시의사회장과 실용·중도를 표방했던 조인성 후보가 1~3위를 휩쓸며 선전했다.

반면 노환규 전 회장으로 대변됐던 개혁·투쟁파 후보들은 상대적으로 고전했다. 정부와의 전면 투쟁을 예고했던 이용민 후보, 내부개혁을 외쳤던 송후빈 후보는 상위권 후보자들과 1000표 이상의 격차를 보이며 하위권으로 밀려났다.

'선거의 왕'이라 불렸던 노환규 전 회장 효과도, 계속되는 분열과 갈등에 지친 의사회원들 앞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노 회장은 지난해 총파업 투쟁 당시 후보자들의 행적을 공개하며, 간접적으로 송후빈 후보를 향해 지원사격을 보냈으나 선거결과를 뒤짚지 못했다.

반대로 안정 속 혁신을 주장해 온 추무진 회장의 전략이 주효했다. 이른바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논리다. 추 회장은 선거운동 기간 "회무의 연속성, 내부 안정과 화합을 바탕으로 의료계를 옥죄는 외부의 도전을 강력히 막아낼 것"이라며 "강한 의협을 만들기 위해 계속 일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 의심(醫心)을 파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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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기선거 최저 투표율, 바닥친 민심

선거에 참여한 의사들은 안정과 혁신을 택했지만, 그 밖의 더 많은 수의 의사는 차라리 무관심을 택했다.

이번 39대 의협회장 선거의 선거인단 4만 4414명 가운데 실제 투표에 참여한 사람은 1만 3789명이다. 최종 투표율은 31.02%. 선거권자 10명 중 7명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계산이다.

이는 역대 정기회장 선거 가운데 최저 투표율. 기존 정기선거들은 모두 40%가 넘는 참여율을 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처참한 수치다.

정기 선거로 치러진 33대, 34대, 36대 회장선거 투표율은 각각 43.8%(투표수 1만 4353표/선거인단 3만 2764명), 53.9%(1만 8863표/3만 4967명), 42.2%(1만 8246표/4만 3284명)를 기록했었다.

한 선거캠프 관계자는 "한달 내내 전국을 뛰어다녔지만 선거에 대한 관심도를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며 "사는 것이 힘들고 바쁜데다, 의협에 대한 관심과 기대치가 낮다보니 많은 의사회원이 선거에 등을 돌렸고, 결국 기대치에 낮은 투표율로 이어졌다"고 안타까움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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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은 성공했지만...'3000표 회장' 꼬리표 떼기-선거 후유증 봉합 숙제

회원들의 신임을 받는데는 성공했지만, 추 회장의 앞에서는 적지 않는 난관들이 놓여 있다.

가장 중요하고도 절박한 과제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등 규제 기요틴의 저지. 추 회장은 "회원 한분한분의 뜻을 받들어 규제 기요틴 등 의료계 말살정책은 지난 단식투쟁 때처럼 죽고자 하는 심정으로 막아내겠다"는 각오다.

최근 불붙은 전공의 특별법 제정도 추 당선자가 계속해 끌고 나가야할 숙제다. 추 당선자는 환자안전과 전공의 처우개선을 목표로 특별법 제정에 공을 들이고 있으나, 대한병원협회와의 갈등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덧붙여 수가현실화 등 2차 의정합의 이행, 회원투표 근거규정 마련 등 대통합혁신과제 이행도 추무진 집행부가 계속해서 끌고 가야 할 과제다. 추 회장은 이번 선거 공약으로 이의 해결을 약속했었다.

각종 현안에 덧붙여 이번 선거과정을 통해 또 하나의 과제가 추 당선자의 어깨에 얹어졌다. 치열한 선거과정에서 벌어진 의료계의 상처를 봉합하고, 본인 스스로 대표성과 무게감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추 회장이 획득한 투표 수는 모두 3285표로 역대 직선제 선거 당선자의 득표수로는 가장 적다. 역대 회장선거에서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던 대표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고작 3천여표를 받은 회장이 11만 의사들을 대표할 자격이 있느냐는게 논란의 요지다.

같은 맥락에서 타 후보자와의 투표율 격차가 크게 않았다는 점도 부담이다. 선거를 치르며 크게 찢어진 의료계의 조직을 다시 하나로 엮어내지 못한다면 향후 회무 추진 동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의료계 관계자는 "역대 최고의 접전으로, 과정이 치열했던만큼 선거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면서 "이를 최대한 빨리 봉합하고, 화합과 단합을 이끌어 내는 것이 당선자에게 주어진 또 다른 숙제"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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