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트루바다' 효과 입증 연구 줄이어…HIV 감염 86% 감소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 치료제의 주성분에 포함되는 트루바다(Truvada)가 동성애자들의 HIV 감염을 86% 줄였다는 임상연구 결과가 공개돼 최근 주목받았다.

지난 2월 23~26일 미국 시애틀에서 성료된 레트로바이러스 기회감염 컨퍼런스(Conference on Retroviruses and Opportunistic Infections, CROI 2015)에서 에이즈 예방요법의 효과를 평가한 PROUD, IPERGAY 연구가 예상했던 결과를 다시 한 번 입증하며 베일을 벗은 것(Abstracts 22LB, 23LB).

두 연구에 사용된 트루바다는 테노포비르(tenofovir 300mg)와 엠트리시타빈(emtricitabine 200mg)을 섞은 길리어드의 HIV 치료제로 지난 10여 년간 에이즈 치료에 주요 역할을 담당했다. 더욱이 2012년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HIV 감염 예방 목적으로 승인받은 유일한 약물이다.

이번 연구결과가 중요한 것은 경구용 피임약이 1960년대 출시된 후 많은 논란 끝에 대중적인 약물이 된 것에 비춰볼 때, 경구용 에이즈 예방약 시대의 진입이 불가능한 얘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 '레트로바이러스 기회감염 컨퍼런스' 2개 연구 눈길 

효과적인 예방백신이 없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이하 에이즈)은 매년 50만 명 이상이 HIV-1에 새로이 감염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때문에 예방백신은 아니지만 경구용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를 통한 'HIV 바이러스 노출 전 예방(Pre-exposure Prophylaxis, 이하 PrEP)요법'은 이러한 인류의 위협을 미연에 차단하는 방법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미 미국질병관리예방본부(CDC)의 PrEP 치료 가이드라인에서는 가장 높은 근거수준인 IA로 테노포비르 300mg + 엠트리시타빈 200mg을 섞은 트루바다를 유일한 예방요법 치료제로 권고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번에 공개된 2개의 예비연구(pilot study)도 앞서 선보인 연구결과들과 수치상 크게 다르지 않다.

트루바다를 이용한 PrEP 요법이 실제 HIV 감염률을 획기적으로 줄이며 강력한 예방효과를 일관되게 입증한 것. 더욱이 이번 예비연구는 예방효과를 충분히 입증했기 때문에 조기 중단됐다. 

△ PROUD, 트루바다 즉시 투약군 감염위험 86% 감소

HIV 바이러스 노출 전 예방요법을 평가한 오픈라벨 무작위 연구인 PROUD는 2012년 11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영국의 13개 병원 545명의 남성 동성애자가 등록됐다. 대상이 된 이들은 연구시작 4주 전 HIV 음성, 10명(중앙값, 범위 4~20명)의 파트너와 90일 전부터 콘돔 없이 항문성교를 한 경우였으며, 총 64%는 이미 12개월 전부터 성매개감염병(STI) 진단을 받았다.
연구는 트루바다 즉시 치료군과 1년 동안 치료를 연기한 군으로 구분해 분기별 추적관찰을 실시했다.

1년째 결과에 따르면 즉시 치료군에서는 HIV 감염자 3명, 치료 연기군에서는 19명이 발생했다. 이 두 군 사이에는 7.6명(100person year)의 감염자 수 차이를 보였는데(즉시 치료군 1.3 vs 치료 연기군 8.9(100person year); 90% CI, 4.1 - 11.2), 특히 즉시 치료군에서 상대적인 감염의 위험이 86% 감소됐다(90% CI, 62% - 96%; P = 0.0002).

또 두 군에서 직장 클라미디아(rectal chlamydia), 임질(gonorrhea) 또는 기타 STI 발생 비율에는 차이가 없었으며, 예방 약물요법을 받은 즉시 치료군에서는 참여자들의 위험 행동 증가가 관찰되지 않았다고 연구의 주저자인 런던 임페리얼대 임상역학과 Sheena McCormack 교수는 밝혔다.

△ IPERGAY, 상대 위험도 86% 감소

이와 함께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HIV 감염위험 예방도를 평가한 IPERGAY는 투약 요구에 따른 즉각 치료인 '온 디맨드(on demand)' 효과를 평가했다. 이 연구는 앞선 연구들에서 일부 환자의 경우 실제 예방효과가 충분치 않고, 복약 순응도가 낮다는 데 주목했다. 예방요법의 효과를 기대해 매일 투약하는 것이 어렵다는 데 착안한 것.

때문에 작년 캐나다에서 토론토 세인트마이클병원 Darrell Tan 박사팀의 주도로 진행된 IPERGAY 연구는 HIV에 감염되지 않은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예방효과와 위험 요인, 내성 증가 가능성 등을 집중 검증하고 트루바다를 복용하는 시험군이 예방효과를 과신해 다른 예방조치를 간과할 가능성은 없는지 실생활의 복용 실태도 관찰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IPERGAY 연구에는 콘돔 없이 항문성교를 한 남성들이 등록됐으며 크레아티닌 수치는 60mL/분 이상이었다. 총 414명은 무작위로 온 디맨드 치료를 받거나 위약을 투약받았는데, 이들은 성교 24시간 전 2알, 24시간과 48시간 후 각각 추가적인 투약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예방요법을 시행받은 남성들은 한 달 16알(중앙값, 범위 12 ~ 24알) 또는 주당 4알의 예방요법 치료를 마친 셈이다.

그러나 연구팀은 성관계 전 또는 2일 이후 트루바다를 복용하는 것이 예방효과를 갖는지 아직 확실치 않다고 설명했다.

추적관찰 8.8개월(중앙값) 결과, HIV 감염 발생률은 위약군 대비 트루바다 치료군에서 낮게 관찰됐다(트루바다 치료군 0.94 vs 위약군 6.75(100person year). 더욱이 이번 연구에서도 상대적인 위험도는 트루바다 치료군에서 86%까지 감소했다(95% CI, 39.4% - 98.5%; P=0.002).

기타 성매개질환의 감염도 PROUD와 같았다. 연구기간 기타 STI 발생률은 치료군과 위약군 사이에 차이가 없었으며(치료군 38% vs 위약군 32%; P=0.22), 심각한 이상반응 비율은 두 군 모두 약 9%로 나타났다. 트루바다 치료군 가운데 2명은 일시적으로 크레아티닌 청소율이 60mL/분 이하로 감소했다.

연구팀은 예상했던 대로 강력한 예방효과가 확인됐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하지만 Tan 박사는 "투약을 받은 환자에서는 자신이 예방요법으로 보호받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위험 행동의 증가가 관찰됐다"고 제한점을 설명했다. 이에 트루바다의 약물효과가 항상 지속되지 않을 수 있어 콘돔 등 다른 예방 기구의 사용도 권고했다.


△ 트루바다 효과 입증 연구 줄줄이

▲ 길리어드 트루바다

이번 연구결과 고위험군 대부분에서 트루바다의 예방효과가 관찰됐다는 점은 일단 환영할 만하다는 분석이다. 학회 기간 유럽 에이즈치료그룹의 Brian West 회장은 보건당국에 트루바다의 비용효과를 고려해 이에 대한 긍정적 검토를 전달할 계획임을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 트루바다의 예방요법 효과는 어제오늘 거론된 일이 아니다. 지난 2012년 7월 16일 트루바다가 HIV 감염 예방 목적으로 FDA 승인을 받을 당시 안전성 및 약물 내성 발생 가능성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를 해당제약사에 요청하기는 했지만 예방효과만큼은 확실히 인정하는 분위기였던 것.

이러한 전폭적인 지원에는 iPrEx(Pre-exposure Prophylaxis Initiative)와 Partners PrEP 임상 2개 연구결과가 바탕이 됐다.

미국국립보건원(NIH)과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지원으로 이뤄진 첫 iPrEx 연구는 HIV 음성 또는 남성과 성관계를 한 트랜스젠더 여성 등의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트루바다가 HIV 감염 위험을 44%까지 낮췄으며, Partners PrEP 연구에서는 남녀 한 쪽이 HIV에 감염, 일상적으로 콘돔을 사용하는 커플에서는 HIV 감염 위험을 75%까지 줄였다.

효과의 입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3년 6월 12일 에이즈 발생이 빈번한 태국의 보건 당국과 미국질병관리예방본부(CDC)가 시행한 무작위 대조군 임상결과 트루바다에 포함되는 테노포비르 300mg을 매일 경구 투약한 경우 불법 약물 주사 사용자들에서 HIV 감염 위험을 약 49%까지 낮췄다. 이를 토대로 CDC는 약물 주사군 등의 고위험군에서 HIV 감염 위험을 예방하는 옵션으로 트루바다를 고려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가이드라인의 중간 업데이트를 발표했다.

△ 약가 부담 걸림돌…대중적 인식 확산 필요

예방효과가 증명된 트루바다의 처방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FDA 승인 이후 미국에서 트루바다를 처방받은 사람은 1만 명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CDC가 한 해 5만 명의 HIV 보균자가 새로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치에 턱없이 못미치는 수치다.

문제는 트루바다가 에이즈 치료제로서 약물 자체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 고위험군에서 보험급여가 된다고 해도 매번 복용을 해야 하는 데 약값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 하지만 이에 맞서 비용 효과적인 부분에서 HIV에 감염된 뒤 치료비용과 비교하면 예방요법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HIV 감염이 줄지 않는 상황에서 예방에 대한 인식 확산을 위해 트루바다의 라벨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 감염전문가들은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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