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진단과 치료를 권고하는 고혈압 치료 가이드라인이 잇달아 쏟아지고 있다. 2011년 영국이 가장 빨리 선보인 이후 유럽, 미국, 일본까지 가세하면서 그야말로 가이드라인 전성시대다. 그 사이 우리나라 가이드라인도 나왔다.

문제는 너무 많은 가이드라인이 오히려 진료에 혼선을 주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학회들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 관련 학회들은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라는 내용의 연제를 매년 주요 학회의 단골 세션으로 올려놓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골고루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과 하나만 보면 된다는 주장이 서로 상충되며 격렬한 토의도 벌어지고 있다. 아직도 식지 않는 이 논제를 두고 본지는 그동안 다양한 학회에서 나왔던 서로 다른 주장을 정리했다.

"큰 관점으로 보면 치료 방향 비슷 하나만 참고해도 충분"
"단계별 분류·고령기준 등 서로 달라 맞춤형 치료 위해 여러 개 봐야"

▲ 혈압계
대표적인 만성질환인 고혈압.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환자(유병률)는 2013년 기준으로 약 656만 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140/90mmHg 또는 고혈압 약물을 복용한 분율, 만 30세 이상).

청구 건수는 4만 7000여 건에 이르고 총 진료비(의료비+약제비)는 약 2조 900억 원으로, 전체 건강보험 외래 진료비의 6.34%를 차지하고 있다. 고혈압을 진료하는 기관만도 2만 931곳에 달한다.

이렇듯 고혈압이 주진료 질환이다 보니 가이드라인에도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그에 비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나왔고 또한 조금씩 차이가 있어 고민될 수밖에 없다.

2010년 이후 유럽·미국 등서 7개 쏟아져
지난 2010년 이후 지금까지 나온 영향력 있는 고혈압 가이드라인은 모두 7개다. 가장 먼저 영국국립임상평가연구소(NICE)가 2011년 영국판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선보였다.

2년 뒤 유럽고혈압학회(ESH)와 유럽심장학회(ESC)가 손잡고 새로운 유럽가이드라인을 냈는데 이는 국내 가이드라인 제정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됐다. 대한고혈압학회는 2013년 ESH/ESC 가이드라인을 수용 개작하는 방식으로 한국형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에 질세라 같은 해 연말에는 미국심장협회(AHA)/미국심장학회(ACC)/미국질병관리본부(CDC)가 고혈압 조절의 효과적 접근이라는 제목의 가이드라인을 냈고, 미국고혈압학회(ASH)와 국제고혈압학회(ISH)도 임상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냈다.

지난해에는 미국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NHLBI)와 고혈압분류위원회(joint national committee)가 JNC 8차 보고서를 12년 만에 내면서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비슷한 시기 일본고혈압학회(JSH)도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자국 임상근거를 기반으로 지침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정상혈압 정의 서로 달라 혼선

문제는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가이드라인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는 임상 적용 시 직결된다. 정상혈압의 정의, 고혈압 단계 설정(분류)의 차이, 고혈압 전 단계의 용어 사용 등이 대표적이다.

우선 진단 부분에서 영국은 가정혈압(HBP)과 24시간 활동혈압(ABP)을 진단과 치료에 '필수적 검사'로 언급하고 있는 반면 유럽은 '부가적 검사'로 규정했다는 차이가 있다. 즉 백의, 가면, 저항성 고혈압, 변동성이 클 때, 기립성 저혈압 등에서만 필요하며, 또한 진료실 혈압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게 유럽의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규정 자체가 모호하다. JNC8은 이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ASH/ISH 2013도 제한적이며, 백의고혈압이 의심될 정도에만 사용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권장 검사'로 돼 있다. 외래에서 초기 혈압이 높으면 가급적 진료실 혈압 외에도 가정혈압과 24시간 활동혈압을 측정해 고혈압 유무를 정확히 진단할 필요가 있다며 강조돼 있다.
결론적으로 검사는 가정혈압과 24시간 활동혈압이 해외서는 보조적 수단의 위치지만 우리나라는 필수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국내 가이드라인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혈압측정을 어떤 것을 인정해야 하는 부분은 여전히 논란이 있는 만큼 필수적으로 언급한 국내 가이드라인을 따르면 된다"는 입장인 반면 "진료실 혈압 측정이 일반화된 현 상황을 감안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필요 없어 해외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고 있다.

고혈압 단계 설정도 국가별 차이

진단 단계도 차이가 있다. 유럽은 최적, 정상, 높은 정상, 1기 고혈압, 2기 고혈압, 3기 고혈압, 수축기 단독고혈압 등 여러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고혈압과 전 단계 고혈압에 대한 정의를 지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소 혼동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의 것을 차용했지만 단계는 줄여 좀 더 단순한 것이 특징이다. 정상, 고혈압 전 단계 1기, 2기, 고혈압 1기, 2기, 수축기단독고혈압 등으로 간소화됐다.

고혈압 단계의 분류는 치료 시점을 결정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데, 다행히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시점은 수축기/이완기혈압 140/90mmHg로 같다. 이에 대해서도 고혈압 단계에 따른 구별이 필요 없는 미국 측 입장을 지지하는 전문가들과 세부적 단계를 통한 분류가 임상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미국 가이드라인의 입장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JNC7까지만 해도 단계를 구별했는데 이를 없앴다는 것은 임상적 적용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라면서 수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주치의제도에 따른 특성으로 주기적인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유럽과 한국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경각심을 알려주기 위해 단계별 분류가 필요하다"는 반대 입장도 만만찮다.

국내 가이드라인 고령 기준 없어

목표혈압을 설정하는 데 있어 고령의 경우 나이 기준이 없거나 서로 다르다. 영국 NICE 가이드라인은 고령의 기준을 80세 이상으로 규정했고, 이들의 목표혈압은 150/90mmHg 미만으로 맞출 것을 제시하고 있다. 가정혈압이나 24시간 활동혈압으로 잰 경우는 145/85라는 세부적인 단서도 달려 있다.

▲ 고혈압 가이드라인별 목표혈압 및 약제선택 차이점
ESH/ESC 2013 또한 80세 이상을 고령으로 정의했고, 목표혈압은 수축기혈압이 140~150mmHg로 범위가 넓다. ASH/ISH 2013의 경우도 80세 이상으로 같지만 목표혈압은 150/90mmHg로 미만으로 못 박았다. 반면 한국은 고령에 대한 정의가 없다. JNC8은 고령의 기준이 60세 이상이며 이들의 목표혈압은 150/90mmHg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일차 치료제 선택에 있어서도 베타차단제 포함 여부가 다르다. 영국을 제외한 ESH/ESC 2013과 ASH/ISH 2013, 그리고 우리나라는 베차차단제를 1차 약제로 인정하고 있는데 가장 최근 나온 JNC8에서는 제외돼 논란이 일었다.

때문에 이런 점에서 다양한 가이드라인이 참조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일차약제로 베타차단제를 쓰는 경우는 3제 또는 4제 이상부터 사용되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는 의견도 다수를 이루고 있어 많은 가이드라인이 필요없다는 입장도 있다.

아주의대 이승화 교수(심장내과)는 "최근 의사들 사이에서도 어떤 가이드라인을 참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많다"고 말하면서 "큰 관점에서 보면 대부분의 가이드라인 치료 방향은 비슷하기 때문에 하나만 참고해도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가톨릭의대 백상홍 교수(심장내과)는 "우리나라 가이드라인에서 언급하지 않는 부분은 해외 가이드라인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어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은 참고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라면서 "최근 맞춤형 치료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참고해서 나쁠 것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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