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연극 ‘도둑맞은 책’
4월 26일까지 동양예술극장 3관

인간 본성에 대한 매혹적인 탐험
인간에게는 이성이라는 강력한 통제수단이 있다. 법치국가에서 우리는 무척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는 때때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총기사건부터 어린이집 폭력사태까지 각종 사건 사고들은 왜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일까? 사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사건들은 결국 작은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된다.

사실 이런 작은 욕심마저 초탈한 인간은 없기 마련이다.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욕망은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끝없는 경쟁 속에 더 처절해 진다.
결국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냉정하게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불편하게 하고 결국 그 욕망으로 다른 이를 파멸에 빠뜨리는 그것에 있다. 연극 ‘도둑맞은 책’은 극한 상황에서 욕망 때문에 인간이 이성을 포기할 때 얼마나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주제는 무겁지만 2인극의 형태로 풀어낸 무대에 스릴러를 더해 보고 듣는 재미를 더한다.

추리영화 같은 숨가쁜 스토리라인
한 해를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영화대상 시상식이다. 오랜 기간 동안의 침묵을 깨고 올해 최다 부문 노미네이트로 화제를 몰고 온 작가 서동윤은 시상식에서의 짤막한 소감 뒤 오랜만에 참석한 리셉션 장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어두컴컴한 지하 공간. 마취에서 깨어난 서동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랜 기간 함께해 온 보조작가 조영락뿐. 당황도 잠시. 온몸이 결박된 채 묶여 있는 서 작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름아닌 특정 살인사건을 소재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거부하는 서동윤과 이를 압박하는 조영락은 이전의 기억과 소설, 그리고 현실을 오가며 끊임없이 부딪히고 결국 소설과 현실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모호해진다.

100분 동안 배우 2인만으로 진행된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팽팽한 스토리라인은 이 연극의 가장 큰 장점이다. 탄탄한 각본력과 연출력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유선동 감독의 동명 영화시나리오를 원작으로 한다. 또한 원작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1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 수상작으로 선정된 바 있어, 이야기의 완성도에 신뢰감을 더한다.

초연에서 다소 느린 템포로 진행됐음에도 스릴러 연극으로 이름을 높였던 이 작품은 재연을 맞으면서 시공을 교차하는 것으로 편집되면서 한층 더 호흡이 가빠졌다. 실제 작품 후반부에 가면 앞에서 벌어진 스토리에서 관객이 추리를 따라가기 다소 어려울 정도의 속도감을 보인다. 연극은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에 연극을 멀리했더라도, 이 작품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숨막히는 100분…두 남자의 연기 ‘배틀’
작품은 살인사건을 통해 의문이 확장되는 범죄소설이면서 작가의 고뇌와 질투가 첨예하게 개입된 심리묘사 스릴러이다.
관객들은 연극 속에 나열된 서 작가의 심리상태를 따라가며, 살인사건의 전말과 그의 내면의 실체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손에 땀을 쥐게 된다. 어쩌면 이 극의 결말은 아주 어렵지 않게 예견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몰입도를 깊이 유지하는 것은 바로 그 결과로 치닫는 두 인물의 심리를 대사와 연기로 표출하기 때문이다.

 
살인과 납치라는 다소 묵직한 사건이 등장하지만 그 사건으로 치닫는 단계에서는 나도 한번 저런 유혹을 당했었다 싶을 정도의 원인들을 잘 표현하는 것은 두 배우의 몫이다. 결국 극적으로 표절이나 살인으로 표현되지만 그 주인공의 행동이 ‘과연 내가 저 상황에서 달랐을 것인가?’라는 지점을 연기로 풀어낸다. 또 무대에서 보여주기에 엄청난 대사량과 집중도는 각 씬마다 소설의 인물, 과거속의 인물을 오가면서 관객을 끌어들인다.

작가와 보조작가 역할에 등장하는 두 배우의 연기는 특히 남자배우이기에 그 에너지가 강력하다. 극 중반에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작가를 압박하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에서 배우들의 연기 진폭은 그들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력하다.

탐욕으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패악의 끝을 보여주는 서동윤 작가역에는 대학로와 뮤지컬계 대극장을 오가며 심리극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박호산이 맡았다. 서작가를 납치하고 짐짓 수수께끼를 던지듯 건조하게 과거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또 다른 탐욕을 보이는 보조작가 조영락 역에는 ‘별에서 온 그대’ 드라마로 친숙한 김강현이 공연한다.

다소 어두운 배경에 주제의식이기에 청소년 관람은 권하지 않는다. 작은 극장이지만 연극의 묘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꼭 앞열에서 보기를 추천한다. 교차 편집이 많고 영화대본을 연출하여 올리는 연극인 만큼 시놉시스 인물의 이름은 기억하고 관람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찾아간다면 스릴러의 외피를 두른 심리극의 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3관에서 4월 26일까지 공연된다(공연 문의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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