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프로그램 시연도 못하고, 상담 지침조차 없어...첫 환자에게 쩔쩔맬듯"

1만5000여곳의 요양기관에서 금연상담이 시작됐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사전에 가이드라인을 배포하지 않는 등 부실한 준비로 일선 의료기관에서 혼란을 빚고 있다. 

 

25일 건보공단 금연치료 기관으로 등록된 전국 1만5300여곳의 병의원이 금연상담을 시행한다.

참여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은 8000여곳 이상으로 가장 많았고, 진료과목별로는 내과가 6500여곳, 가정의학과가 1800여곳으로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공단은 앞으로 6개월간 사업비 1000억원을 투입해 해당 의료기관을 지원하게 되며, 논의 과정을 거쳐 오는 9월부터는 금연상담료를 급여화해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원할 예정이다.

금연상담료는 초진료 1만5000원, 재진료 9000원로 정해졌으며, 흡연자들은 금연치료 의료기관에 등록해 치료를 받을 경우 12주 동안 6회 이내의 상담료를 지원받고, 금연치료 의약품 또는 패치 등 금연보조제 투약 비용의 일부를 지원받게 된다. 

개원가 활성화 기대 상당히 높아

공단 측은 "시작 후에도 지속적으로 참여 기관을 받을 예정이며, 참여할 수 있는 곳에 대한 제한이 없으므로 더욱 많은 의료기관에서 신청할 것"으로 예상했다.

의료기관에서는 시작 전부터 높은 기대를 보였다. 지난달말 가정의학과의사회 등 유관 단체에서 개최한 금연치료 합동 세미나에는 수백여명의 의사들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특히 개원가에서는 1차 활성화와 동네의원 살리기에 도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보통 환자가 병·의원을 방문하면 금연상담만 하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흡연과 관계되는 만성질환자들은 동네의원을 많이 이용하는데, 이때 금연상담을 동시에 시행하면 이중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어 많은 이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의 한 보건소 금연클리닉(위 기사와 관계 없음).

한 개원의사회 관계자는 "현재도 하루에 3~4분은 진료를 하는 도중에 금연치료제를 같이 처방해달라는 요청이 있다. 금연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편"이라며 "만약 본격적으로 수가가 지급되면 개원가 활성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금연은 치료제 복용 보다도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면서 "금연상담이 흡연자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횟수를 더 늘려주는 방향으로 가면 더 큰 효과를 볼 것 같다"고 내다봤다.

신청만 받으면 끝? 졸속 운영으로 혼란 예상

이 같은 기대 속에 대다수 의원이 금연치료를 하겠다고 뛰어들었지만, 당장 시작일이 다가오자 울상을 짓고 있다. 문제는 다름 아닌 '준비부족'.

A내과의원 원장은 "미리 청구 프로그램을 시연해볼 기회가 없었다. 첫 환자를 받을 때 허둥지둥할까 걱정이다"라며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또한 "공단이 의사들을 교육할 열의가 없는 점도 상당히 아쉽다"며 "얼마 전 의사회에서 열린 워크숍을 제외하고는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B의원 원장은 "환자들의 관심에 미치지 못하는 준비 상황이다. 진료를 보는 중에 보통 5~6명의 환자들이 금연상담에 대해 문의하고, 전화문의는 10통 이상이 온다"며 "당분간 환자들이 많이 올 것 같은데, 공단의 준비 부족으로 환자들이 실망하진 않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내과의사회 관계자는 "문제는 의사회에서 진행한 교육에 참여하지 않는 의사들이다. 스스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상담 가이드라인을 구상해야 하는데, 다른 환자를 보면서 준비하기는 상당히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의사 중 80% 이상이 금연상담에 대해 교육을 받지 못했다"며 "약제마다 사용이 다르고, 부작용의 문제도 많다. 이런 부분들이 매우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단에서도 의사 교육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서는 인지하고는 있다. 실제 이달 초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공단 관계자는 "일본의 연구에서 의사들이 상담교육을 받은 경우 환자의 금연성공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근거로 추후 의사 인센티브 지급시 '교육 여부'가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상담에 익숙치 않은 일부 진료과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금연치료기기관을 신청한 C정형외과의원 원장은 "신청하면 상담 프로그램도 주고 처방 가이드라인도 배포하는 줄 알았다"며 "주변 내과, 가정의학과 선생님들에게 물어물어 급하게 배우기는 했지만, 아직도 환자를 보기에는 석연치가 않다"고 말했다.

C원장은 "의협에서도 회장 선거 준비 등으로 금연상담에 대해 많이 신경쓰지 못하는 분위기다. 내과의사회에서 3월말쯤 교육을 한다고는 하지만, 이외에는 협회나 학회 등에서 별도의 도움을 주지 않는 것도 매우 아쉽다"고 했다.

매뉴얼에 모두 담겨 있어...공단 "준비 부족 아니다" 반박 

하지만 공단 급여보장실 관계자는 "요양기관에 배포한 안내서에 상담 매뉴얼이 상세히 나와 있다. 이는 홈페이지에도 게시해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다"며 "매뉴얼을 보고 충분히 쉽게 따라할 수 있는데 무엇이준비 부족이란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 공단에서 배포한 매뉴얼 일부.

그러면서 "지난 며칠 간 병의원들로부터 '준비가 부족하다' '미리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게 해달라' 등 수없이 많은 전화를 받았는데, 이는 공고한 자료에 모두 있는 내용"이라며 "반송된 자료가 없는 것으로 봤을 때 모두 리플렛을 살펴봤을텐데 지나치게 의사의 책임을 공단으로 떠넘기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환자 등록 프로그램 운용 자체도 상당히 쉽다"며 "환자등록-저장-상담-처방-저장 순으로 이뤄지는데, 별도의 청구가 없어서 입력, 저장만 알면 끝이다. 굳이 시연할 필요가 없어서 당일날 시스템을 여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공단은 계속되는 민원과 요구로 '의사 상담 교육자료(가이드라인)'를 따로 만들고 있다고 전하면서, "내달 7일에 진료전략, 상담방법 등의 내용을 담은 교안이 PPT파일 형태로 나오면, 바로 각 협회에 보내 회원들에게 배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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