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연
고대구로병원
가정의학과 임상강사
44. 응답하라 의료윤리
동료의사와의 윤리

일반적으로 동료는 같은 직장이나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colleague, co-worker)을 부를 때 사용된다. 이는 직업적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편 의료인의 동료 평가(peer review)에서 사용되는 동료(peer)는 동등·등가를 뜻하는 어원 'par’의 변형 명사형(골프의 기준타수를 의미하기도 한다)이다. 이는 능력 따위가 동등한 사람을 말한다. 곧 동료 평가는 단순히 같은 위치에 있는 이들이 아닌 서로 능력이 동등하다고 생각되는 이들 사이의 수평적인 상호작용인 것이다.

동등함에서 비롯된 동료

한국 의사의 동료 사이 윤리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러한 동료의 개념부터 명확해야 할 것이다. 다음의 물음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 나는 주변 의사들을 나와 동등한 능력을 지닌 동료로 생각하는가?
- 나는 나와 다른 전문분야 의사들의 의학적 판단을 어느 정도로 신뢰하는가?
- 나는 동료 의사와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
- 나는 진료의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동료 의사에게 도움을 청하는가?

의사 간 윤리의 고전과 현대

동료 의사와의 윤리를 말하고자 할 때, 의학사의 고전인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제네바 선언을 돌아보고, 현재의 지향점으로 2014년 대한의사협회가 발표한 '한국의 의사상'을 되새겨볼 만하다.
 
나에게 의술을 가르쳐 주신 분을 나의 부모와 다를 바 없이 소중하게 섬기고, 내가 소유한 모든 물질을 그분과 공유하면서 그분이 궁핍할 때는 그분을 도와주고, 그분의 자손을 나의 형제와 같이 여기고, 그들이 의술을 배우고 싶어 하면 보수나 조건 없이 그들에게 의술을 가르치고, 내 아들과 내 스승의 아들과 의술의 원칙을 따르겠다고 선서한 제자들에게만 교훈과 강의를 포함해 모든 방식의 교수법으로 의술에 관한 지식을 전달할 따름이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전달하지 않겠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BC 5세기) 중>
 
나의 스승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다.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다. 나는 동료를 형제처럼 여기겠다.
<제네바 선언(1948) 중>
 
2.3.1. 의료인과 비의료인을 포함한 모든 동료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2.3.2. 의료진에 속한 각 구성원의 능력과 경험 및 의견을 존중하고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2.3.3. 동료 의사에게 환자를 의뢰하거나 진료를 위임하는 경우 적절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2.3.4. 동료 의사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을 하지 않아야 한다.
2.3.5. 직종 간의 이해를 증진할 수 있는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한국의 의사상(2014) 2.3. 동료와의 소통과 협력 중>

기원전 5세기와 20세기, 그리고 오늘의 의사상에서 추출된 동료 의사 관계의 핵심은 '긴밀함'이다. 전통적으로 의사들 사이에는 '부모'나 '형제'에게 적용되는 '소중함'과 '특별함'이 존재했다. 현대 한국의 의사는 비의료인을 포함한 이들을 동료로 보고 '소통', '협력', '존중'할 것이 요구된다.

공존을 위한 긴밀한 응시

명사로서 동료(Peer)가 동사형이 됐을 때 그 의미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유심히 눈여겨 봄'이 된다. 한국사회에서 의사가 되기까지 걸어온 여정에서 우리는 곁에 있는 동료, 동료가 되기 이전 동무들을 나와 동등하게 존중해 왔을까. 상대적 평가를 통한 서열화의 경쟁자로 바라보도록 적응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근처에 있는 나이가 많거나 적은 성별이나 배경이 다른 의사들을 나 자신에 비추어 소중하게, 동시에 냉철하게 바라보았던가.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한 긴밀한 응시가 동료 의사 간 윤리의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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