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건보료 퍼주기", "복합제 산정 방식은 개악" 의견차 팽배

보건복지부가 제도의 정확성을 높이고 우수한 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고자 추진했다는 약가제도 개편. 그러나 제약업계에서는 일부 항목에 아쉬움이, 시민단체에서는 제약사에 건강보험료를 퍼준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의사들도 제약사 퍼주기에 불과한 약가제도 입법예고를 철회하라며 가세했다.

이선영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3일 제약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보험약가제도 개선방안 설명회에서 "제도 개선 목적을 규제완화 또는 규제강화의 이분법적으로 보면서 오해를 유발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하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번 개선방안의 골자는 무엇이며 제약업계와 시민단체, 의료계에서는 어떤 주장이 제기될까. 정책 추진방향과 각 단체 관계자들의 입장을 조명해봤다.

일괄인하 이후 대거 개편, 주요사항은?

이번 제도개선은 사실상 2012년 일괄약가인하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개편 및 재정비로 풀이된다. 복지부가 입법예고한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및 '약제의 결정 및 조정 기준'은 등재절차 개선, 복합제 직권조정 및 산정 시 기준 개선, 급여목록정비, 사용량 약가 연동제 완화 등의 내용을 담고있다.

구체적으로 신약의 약가 결정시 효과 개선과 부작용 감소 등이 인정된 약제는 현행 '대체약제 가중평균가' 이하를 적용한 것에서 비교약제(대체약제 중 최다빈도 사용약제) 개별 가격 수준까지 인정한다.

 

또 제약사가 대체약제 가중평균가를 신약의 특성에 따라 90%선에서 수용하면 공단과의 협상과정을 생략해 약 60일이 단축된다. 대체제가 없거나 환자수가 적어 경제성평가 자료 생성이 곤란한 희귀질환치료제는 경제성 평가를 생략하고 'A7국가(미국, 영국, 프랑스 등 제약 주요 선진국)의 최저가 이하' 수준에서 경제성을 갈음한다.

아울러 그동안 복합제 가격 산정에서 일부 불합리한 부분이 발생했다는 지적에 따라, 복합제 약가의 산정기준이 된 단일제가 약가 조정될 경우 복합제 약가에 반영하는 근거규정을 마련했다. 또한 제약산업 육성계획의 일환으로 사용량 약가 연동에 따른 약가인하를 일정기간 유예하며 약가인하에 해당하는 금액을 환금할 수 있는 근거를 명시했다.

"제약사 퍼주는 특혜 정책 철회하라"

이 같은 내용의 제도 개편에 시민단체, 의료계의 반대 목소리가 거세게 제기됐다. 시민단체 모임인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은 3일 정책 설명회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정부의 약가제도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 시민단체가 3일 정부의 약가제도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입법 예고와 관련해 "건강보험 재정에서 약값 비중이 30%에 달하고, 약가 산정기준이 추후 등재될 신약 뿐만 아니라 제네릭 의약품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감안하면 이번 개정안이 미칠 영향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복지부가 약값을 결정하는 기본 원칙인 '경제성 평가'와 공단 '약가협상'에 온갖 예외를 적용해 기존 원칙을 누더기로 전락시켰다고 피력했다.

특히 공단은 보험재정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지출할 수 있는 약값을 결정하는데, 신속등재절차로 협상을 건너뛰는 것은 국민의 대리자인 공단의 중요한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희귀질환 치료제는 대부분 대체제가 없는 진료상 필수약제로 현재도 이미 비용효과성 자료 입증을 면제받고 있으며, 희귀질환 치료제 경제성 평가 면제 특례제도는 더 많은 약제의 경제성 평가 면제에 대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사용량 약가 인하 제도로 가격이 인하된 약들은 새로 들어올 신약의 가격결정 기준이 되는데, 이는 미래 재정안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신설된 예외항목을 없애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은 "이번 개정안은 건강보험재정흑자를 국민들이 아닌 제약사에 퍼주려는 구체적인 시도"라며 "재정 흑자 12조원을 제약사에 퍼주겠다는 약가제도 개정안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산업부로 개명하는게 낫겠다"

대한의원협회도 4일 성명서를 통해 "복지부는 제약사 퍼주기에 불과한 약가제도 입법예고를 즉각 철회하라"면서 "이번 개선안은 건강보험 약가제도의 근간을 이뤄왔던 선별등재방식과 공단 협상절차를 복지부 스스로 와해시킨 개악안이자, 허울좋은 명분을 앞세워 제약사에 높은 약가라는 선물을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먼저 '대체약제 가중평균가의 90%' 약가를 수용한 제약사에게 협상절차를 생략할 수 있도록 만들어, 비용효과성이 없는 약도 좋은 가격에 보험 등재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지적했다.

또 신약의 적정가치를 인정해달라는 제약업계의 주장을 복지부가 수용해 일부는 비교약제 개별 가격수준으로 약가를 산정하는데, 이는 근거가 희박하다고 반박했다.

제약업계가 국내 신약의 약가수준이 낮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2013년 제25회 한국보건행정학회에서 모 약대교수가 발표한 '우리나라와 OECD 국가의 약가비교' 분석 결과로, 이 연구에서 한국의 등재신약 가격은 환율기준으로 OECD 평균 가격의 42% 수준(구매력지수 기준 59% 수준)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의원협회 측은 "이 분석에서 국내개발 신약은 제외됐고 모두 외자사가 개발한 신약이 조사대상이었다"면서 "국내개발 신약의 약가수준이 낮다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개발한 신약의 국내 약가수준이 OECD 평균보다 낮다는 것이다. 국내개발 신약의 약가수준이 OECD 국가에 비해 낮은 것인지 높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연구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복지부가 제약산업 육성이라는 정책 방향에 맞춰 개량신약, 혁신형제약사의 복제약, 원료합성 복제약 등에 약가를 우대해주는데 이를 건강보험으로 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정부가 제약산업을 육성하려면 정부재정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의원협회가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한 복합제 약가산정 방식은 개편됐지만 이는 극히 일부의 주장이 반영된 것으로, 여전히 복합제에 왜 특혜를 부여하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복합제의 최초 약가산정 시 개별 단일제 가격을 반영하는 것이 맞지만, 특허만료 돼 약가조정을 할 때는 여타 단일제와 마찬가지로 특허만료전 상한가의 53.55%로 조정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복지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특허만료전 상한가가 아니라 최초 보험등재 당시의 개별 단일제 가격을 기준으로 약가를 조정했다는 의견이다.

의원협회 측은 "복지부는 국내 등재신약의 가격이 OECD 평균보다 훨씬 못미친다며 이번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반면, OECD 평균 진료비의 1/3에도 못 미치는 국내 의료수가로 인해 의원급 의료기관이 무더기 폐업 위기에 몰린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며 "복지부가 오로지 제약산업 육성, 영리자법인 설립 허용, 원격의료 도입 등 산업 활성화에만 관심이 집중된 것을 보면 아예 보건복지산업부로 개명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복합제 관해서는 점점 개악"

▲ 보건복지부가 3일 제약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가톨리대에서 보험약가제도 개선방안 설명회를 가졌다.

시민단체와 의료계가 "이번 약가제도 개편은 제약사 퍼주기"라고 입을 모은 가운데 제약업계 내에서도 제도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한 다국적사 관계자는 정책설명회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점점 복합제 관련 제도는 개악으로 보인다"면서 "복합제도 임상에서 의미있고 재정을 절감할 수 있는 제형개발인데 복지부는 이를 약값을 높이기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해 제약사를 폄하하는 것 같다"고 발언했다.

또 바이러스제제 등 일부는 복합제로 환자가 느끼는 개선점이 크기도 한데  단일제를 합한 정도로만 취급해 절반에 가까운 약가만 인정하면 연구를 통해 이런 복합제를 개발할 이유가 없고, 일일투약비용을 기존에 인정하다 삭제한 것도 납득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에 복지부 측은 "복합제 직권조정 기준을 구체화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산정을 명확화하는 것이 이번 개선의 목적"이라며 "일일투약비용 삭제는 2012년도에 약가를 조정하면서 단일제보다 복합제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예방하고자 만들어진 것이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설명회 이후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사용량 약가 연동제가 유예된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조건도 까다로울 뿐더러, 약가인하는 적용 시점에서 인하가 되는 반면 환급은 일정 기간까지 높은 단위의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수용이 어렵다"라고 풀이했다.

"제약사 퍼주기? 뭔 소린지 모르겠다"

시민단체와 의료계 등의 '제약산업 퍼주기'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도 있었다. 한 제약계 관계자는 "왠지 정부가 퍼주는 것 같아서 문제제기 하는 것 같은데 (이번 개정은) 재정적으로 중립이다. 그래서 제약사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온다"이라며 "복지부 설명대로 기존 제도를 합리화하는 개념이며, 일부 제도가 난수표같이 알 수 없다는 차원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재정적으로 사안마다 건보재정이 더 들어가도록 설계한 점은 없어 보인다고 선을 그었다. 대체약제 가중평균가의 90%를 수용한다는 것은 협상을 생략하면 약가 10%를 깎겠다는 내용인데, 보통 공단과 협상하면 깎이는 평균이 10% 정도이기 때문에 이를 시스템화 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약가 협상 기간이 짧아진 것이지 해당 약제들도 사용량 약가연동제 등 사후약가 인하 기전에서 관리되기 때문에 소비자나 시민단체가 불만을 가질 내용은 없다고 전했다.

또 제약사는 협상을 할지 가중평균가 90%를 수용할지 선택할 수 있는데 이는 사안마다 다를 수 있으며, 공단의 제도 운영 방식과 제스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임상적 유용성을 인정받았을 때 비교약제 개별 가격수준까지 약가를 인정하는 부분은 비교 대상에 맞추는 것이라 근거도 있고, 내용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지만 인정받기가 쉽지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약가제도 개선은 기존 제도가 갖고 있는 경직성을 완화하고 선택의 폭을 넓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수반되는 근거가 있고 정부가 사후관리를 포기한 것도 아니기에 무책임하다고 볼 수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제도 개편의 입법예고 기간은 2월 16일까지이며, 복지부는 입법예고시 제출된 의견을 3월까지 검토하고 4월 중 규제심사 및 법제처 심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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