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
경기도의사회 정책이사
전 대한전공의협의회장
43. 응답하라 의료윤리
규제 기요틴이 만든 숙제


최근 의료계는 국무조정실에서 발표한 규제기요틴에 대한 논의로 시끄럽다. 규제기요틴이란 2014년 11월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8개 경제단체로부터 비효율적이거나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규제를 접수 받아 단기간에 대규모로 개혁해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증대와 내수침체 장기화에 대응하겠다는 정책이다.

이에 따라 경제단체의 건의사항 153건 중 114건을 개선 추진키로 했으며 경제 관련 규제는 기재부가, 사회 관련 규제는 국조실이 중심이 돼 규제개선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및 보험적용 확대를 문제 삼고 있다. 또한 문신사 합법화, 이미용 의료기기 마련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의협회장은 단식투쟁을 벌였고 의료계 각 단체들은 성명서를 연달아 발표하며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문신사 합법화는 무면허 진료를 정부가 조장하는 것과 같다”며 여러 근거를 들어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정해 놓은 면허제도의 근간을 스스로 흔드는 자충수를 두고 있으며 생명과 건강이라는 근본적 가치보다 경제논리를 앞세운다는 것이다.

경제논리 앞세운 정책 강행 안돼

필자의 생각으로 의료계의 입장은 타당해 보인다. 정부가 한 나라의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국민과 전문가 단체에게 미리 알리고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 성숙기간을 거친 후 진행을 하는 것이 맞거늘, 행정부처에서 준비한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형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예산을 낭비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부가 정책 입안 과정에서 전문가 단체의 자문을 얻는다고 반론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책발표 후 전문가 집단이 이렇게 거세게 반대하는 것을 보았을 때, 의견 수렴이 제대로 됐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의견수렴을 위한 절차가 실효성이 떨어지는 형식적 공문발송을 하는 것이거나 다양한 직역의 의견을 듣지 못하는 편향적인 전문가 대표와 소통을 했다면, 정부가 좋은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의견수렴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꿔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으로 보험적용이 확대되면 건강보험 재정의 지출이 늘어날 것이고, 결국 그 비용은 국민의 주머니로부터 보충될 것이 분명하다. 보험료 수가 인상과 비급여 확대로 국민의 의료비 부담은 당연히 늘어날 것이다.

정부에서 이러한 예산 문제를 자유롭게 이야기해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역시 국민의 선택이니 따라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국민에게 부담이 되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거나 혹은 이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지 못한다면, 충분한 논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정책을 진행하는 것으로, 그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할 것이다.

‘밥그릇 프레임’서 벗어나야

의료계도 정부가 만들어 놓은 밥그릇 싸움의 프레임 설정을 인지해 정부를 향한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을 향한 외침을 해야 한다. 국민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전문가로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 올바른 의료정책이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문가로서의 책무일 것이다.

정부를 향한 시위성 목소리를 크게 낼수록 정부의 정책을 더욱 홍보해 주는 형국이 될 것이고, 한의사들의 반발이 거세질수록 밥그릇 싸움이라는 프레임의 늪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될 것이다. 정권은 경제 성장이라는 실적에는 급하지만 이번 사태에서는 느긋하다는 것을 의료계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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