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영역 가늠자는 경제논리 아닌 과학적 근거”

 
정부는 지난해 12월 28일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민관합동회의를 열고 경제활성화를 방해하는 걸림돌로 지목된 규제들을 일괄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규제 기요틴(단두대)'의 추진이다.
여기에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과 미용기기 분류 신설, 비의료인 문신 허용 등 의료분야 과제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정부 발표 이후 의료계에는 반대여론이 들끓고 있다. 경제활성화에 눈이 먼 정부가 의료의 전문성을 훼손하고, 비의료인들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부추기는 '정상의 비정상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규제 기요틴 무엇이 문제인가?
이번 기자좌담회에서는 규제 기요틴, 그 가운데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허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왜 사용권 요구하나
한의계 “환자 불편·의료비 이중청구”
의료계 “한의원서 진단해도 같은 문제 발생”

질 관리 문제 없나
의료계 “영상전문의 판독…정도관리 엄격”
한의계 “한방영상전문의 있어 문제 없다”

영상진단 교육 충분한가
한의계 “한의대 커리큘럼서 이미 시행”
의료계 “한의대 교육으로는 부족…영상전문의 교육 총 9년 과정”

 

메디칼업저버 기자들이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 고신정(사회): 경제활성화를 위한 대규모 규제철폐, 이른바 '규제 기요틴'을 두고 의료계가 들썩이고 있다. 오늘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첨예하게 의견대립이 벌어지고 있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알다시피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의료계와 한의계가 여러 차례 소송을 벌일 정도로 대립해왔던 분야다.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 기요틴 발언 이후 정부에서 경제인단체를 모아 각자 필요한 규제개선 사항을 말해 달라고 했고, 그 가운데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포함돼 갑작스럽게 추진과제가 됐다.
정부발표 이후 의·한방 갈등은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일단 한의계는 이게 왜 필요하다는 것인가?

▶ 서민지:
환자의 불편과 이중적인 의료비 청구 때문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염좌 환자가 침 치료를 받고 싶어 한의원을 찾았다 치자. 정확히 어느 부위에 침을 놔야 하는지 알려면, 현재의 상황에서는 환자가 일단 의원을 찾아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침치료를 위해 한의원에 와야하는 불편이 있다는 것이 한의계의 입장이다. 또한 한의학 연구를 할 때도 '근거'가 중요한데 이러한 근거 마련을 위해 진단장비, 의료기기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속내를 좀 들여다보자면, 한방 활성화가 주된 이유가 아닌가 싶다. 한의계의 어려움은 수년째 지속돼 왔고, 이제는 맥을 못추는 지경에 이르렀다. 네트워크화 돼 있거나 다이어트, 피부치료 등 일부 상업화된 한의원을 빼고는 대부분 불황을 겪고 있다고 보면 된다.

▶ 고신정: 반대로 의료계는 무조건 막는다는 입장이다. 의료계는 이번 조치를 의료영역 침범으로 보고 있다. 빗장이 한번 열리면 우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감이 크다. 의료계가 강경투쟁 투쟁 분위기로 내달리는 데는 오는 3월로 예정된 의협 차기회장 선거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 범위가 어디까지 정해질 것인지도 이슈다. 이에 대한 정부 입장은?

▶ 손종관:
보건복지부는 일단 헌법재판소 판결을 주요 근거로 해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의 범위를 해석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일단은 검사결과가 명확하게 수치로 확인되는 부분들이 검토대상이다. 헌재 판결에서 언급된 배변, 혈액 검사 등 3종에 안압측정기 등이 허용범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 CT와 MRI 등에 대해서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 서민지: 한의계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상 전면 개방을 요구했다. 심지어는 한의학에 근거한 치료기기도 허용하라는 입장이다. 예를 들면 한의계가 침의 논리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IPL, 열의 원리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레이저 등이 대표적이다.

▶ 고신정: 학계 전문가들의 견해는 어떤가?

▶ 안경진: 아직 공식적인 입장표명은 없다. 다만 지난 한의협 기자회견 이후에도 한의계 쪽에서는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의협은 그렇지 못해 실망스럽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며 보다 전략적인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내과와 초음파학회 등에서 공동으로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영상의학회도 상임이사회를 거쳐 공식입장을 발표할 예정이어서 추이를 지켜봐야 할 듯 하다.
특히 초음파의 경우, 의료계 내부에서도 정도관리를 위해 초음파 인증제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인데 한의사에게 허용할 경우 질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크다. 판독이 정확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 같은 이유로 질병의 발견이 지연되거나 악화되는 상황 등이 우려된다는 얘기다.

▶ 박미라: 진단결과를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할 수 없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의원에서 검사기기를 통해 장기, 뼈, 염증, 종양 등의 증상들을 발견하더라도 결국 환자는 다시 의사를 찾아가야 한다. 
의료기기를 이용한 진단은 특정질환만 고려하고 찍는 것이 아니라 질환의 원인을 명확히 분석하기 위해 찍는 것이다. 전문지식이 총동원돼야 하는 분야다.

▶ 서민지: 그에 대해 한의계는 의사 중에도 영상전문의가 있듯이 한방에도 한방영상전문의가 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영상전문의가 질환을 더 본다고 해도 모든 의사가 CT, MRI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을 해놓지 않은 것처럼 한의사들에 대해서도 사전 규제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단 자율권을 주면 양심과 상식에 맞게 알아서 쓸 수 있다는 주장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교육도 진행하겠다고 했다. 현재 한의대 커리큘럼에 영상교육이 이미 포함돼 시행 중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 원종혁: 그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다. 한의계는 한의대와 의대 교육과정의 70~80%가 질환의 진단에 초점을 맞춰 프로그램이 유사성을 띤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한의대 커리큘럼 중 현대의학과 관련된 부분은 해부학과 생리학에 그친다. 그것도 방대한 해당 학문의 일부만 발췌식으로 교육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의대 6년 커리큘럼은 본과 4년 동안 매과목마다 영상진단학이 기본으로 배정돼 있고, 이후 영상진단전문의가 되는데는 5년의 추가적 연수과정과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예과생을 제외, 도합 9년의 영상진단 교육을 받게되는데 초음파나 엑스레이 장비를 진단목적으로 사용하는 일을 너무 가벼이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 이상돈: 한의계가 전혀 과학적인 근거를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료기기를 써서 어떠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어떠한 임상결과를 어떠한 진료법과 연결시킬 것인지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근거와 결과를 가지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정책적으로 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임시면허를 부여받아 일단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안전한지, 비용효과적인지 먼저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제도 도입 여부에 대한 논의는 그다음이다.

▶ 임세형: 외국의 사례를 보면 정책결정의 기준은 근거다. 정부가 이해당사자 의견수렴도 거치지 않고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고 나서는 것은 합리적인 정책결정 방법은 아니지 않나. 단계적으로 근거를 모아가야 한다.

▶ 박선재:  한 달에 300만원도 못 버는 한의사들이 많다. 한의계 입장에서는 굉장히 절박한 문제일 수 있다. 다만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다. CT, MRI를 허용해주면 한의사 사이에서도 양극화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다. 돈 많은 의사는 기기와 장비를 사들여 변화에 대응할 수 있지만 조그만한 한의원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 고신정: 모두에 말했듯 이번 규제완화는 경제인 단체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의료기기 업체들도 이해당사자다. 의료기기업계의 반응은 좀 어떤가.

▶ 김지섭: 한의사로 의료기기 사용이 확대되면 산업계는 시장이 커지는 상황이니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의료계와 한의계의 대립이 첨예한 만큼 쉽게 의견을 드러내지 않고 표정관리에 들어가고 있다. 결국 공은 복지부로 넘어가는 셈인데, 정부가 잘 조율하고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이와 관련 업계에 문의해 본 결과 결국 밥그릇싸움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견, 산업계가 논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 등이 있었다. 의료기기 업체들은 내용을 주시하며 추이를 지켜볼 듯하다.

▶ 손종관: 복지부는 예정대로 각계의 의견을 취합해 상반기 중에 결론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복지부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또 나온 이후에도 이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 이슈들 각 분야에서 철저히 챙겨나가야 할 것이다.

▶ 고신정: 이번 논란을 계기로 의료일원화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의료일원화를 통해 논란의 불씨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은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만큼 의료계와 한의계는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복지부 결정이 나기까지 상반기 내내 치고받는 싸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 서울고등법원(2005누1758)
- 한의사의 CT 사용
- 판결요지: 국내 의료체계는 이원적으로 구분되어 있고, 의학과 한의학의 원리와 기초가 다르다는 점 등을 비춰볼 때 한의사가  방사선사로 하여금 CT를 촬영하게 하고 이를 이용해 방사선진단행위를 한 것은 한방의료행위로 보기 어려움.

2011년
▶ 대법원(2010도2534)
- 한의사의 의료기사 지도권 인정 여부
- 판결요지: 의료기사가 한의사의 지도 아래 진료나 의화학적 검사를 했더라도 해당 한의사가 의사나 치과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의료기사를 지도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의료기사의 행위 역시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

▶ 대법원(2009도6980)
- 한의사의 X선 골밀도 측정기 사용
- 판결요지: 사건 측정기를 이용해 환자들에 대해 성장판 검사를 한 것은 한의사의 면허범위 이외의 의료행위를 한 것.

2014년
▶ 대법원(2011도16649)
- 한의사의 필러시술
- 판결요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 해당 여부는 관련 법령의 규정과 취지, 기초가 되는 학문적 원리, 의과대학과 한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이나 국가시험 등을 통해 해당 의료행위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 사건의 필러시술은 전적으로 서양의학의 원리에 따른 시술.

▶ 대법원(2010도 10352)
- 한의사의 IPL 사용
- 판결요지: 의료법상 목적, 관련규정, 구체적 의료행위의 목적, 의학적 원리를 고려해 보았을 때 의사에게 면허된 의료행위로, 한의사에 의한 IPL 시술행위는 면허된 이외의 무면허 의료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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