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규제 기요틴 논란] '한의약 육성법' 개정, 국회 회의록 들여다보니…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가열되고 있다.

이원화된 의료체계에서 한의사에 면허범위 이외의 의료행위를 허용할 수 있는지, 또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이 정말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해당 사항을 법률 개정 없이 정부내 행정 절차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지가 주요 쟁점.

이는 지난 2011년 국회와 정부, 한의계와 의료계가 참여한 법 개정 논의과정에서 이미 한 차례 정리됐던 문제다. 당시 논의의 결론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불가’다.

"우려하시는 것처럼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서는 저희가 CT나 MRI 같은 기기를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김정곤 전 대한한의사협회장)"

"제가 볼 때 너무 첨예하게 지금 부딪히는 경계점들이 있는데 아까 CT, 엑스레이 쓰는 것. 그것은 한의사협회도 인정을 하고, 그렇지요? 그것은 현대적으로, 현대적이 아니라 초현대적으로 응용·개발하더라도 CT, MRI는 한의학이 아니잖아요.(신상진 전 국회 보건복지위원)”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가 대두된 것은 2011년 18대 국회에서다.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석용 의원이 '한의약 육성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한의약의 정의를 기존 '우리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의료행위'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하거나 이를 현대적으로 응용·개발한 의료행위'로 수정하자고 제안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쟁점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적 응용·개발'이라는 문구의 해석을 두고 한의사의 현대의료기 사용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한의협은 한의약 육성이라는 법 제정 취지에 부합하는 조치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의사협회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은 현대의학과 질병에 대한 접근방식이 전혀 다르다"며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이용을 부추겨 사회적 부작용을 양산할 우려가 있다"며 반발했다.

 

 

쟁점 1. 이원화된 면허체계,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가능한가?
-“학문적 원리 기준…한의학 원리에 기초한 것만 가능”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란은 법안심의과정 중에서도 핵심 이슈 중 하나로 꽤나 심도있게 다뤄졌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옮기면, 2011년 4월 열린 첫 심의에서 손숙미 의원은 "오로지 한의사협회만 찬성이다. … 굉장히 쟁점이 많은 것이다. 이렇게 급하게 처리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며 법안의 신중한 처리를 주문한다.

이에 복지부는 "MRI나 CT를 쓰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국회를 설득한다. 면허 범위 내의 의료행위만을 허용하도록 한 의료법과 이를 바탕으로 한 사법부의 판례 등을 준용해 한의학 원리에 기초한 의료기기만, 한의사가 쓸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복지부 김용호 당시 한의약정책관의 설명은 이랬다.

"의료행위의 해당 여부는 진료행위가 학문적 원리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합니다. 판례도 그렇고 우리 복지부 유권해석도 그렇고. 그래서 '한의학 원리를 기초로 해…'라는 단서를 붙여 수정 제시를 한 것입니다. MRI나 CT 이것을 쓰자는 것이 아니고 옛날에 하던 예를 들어서 돌침을 쓰던 것을 레이저가 개발되면 레이저침을 쓸 수 있고 이렇게 개발할 수 있게 해야 된다는 거지요. 그런데 그게 묶여 있으니까, 옛날 방식으로만 하라고 돼 있기 때문에 그게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전체를 바꾸거나 양방 의료기를 사용하자 그런 뜻은 아닙니다."

신상진 당시 국회 복지위 법안소위원장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불가 원칙을 복지부에 거듭 확인한다.

"서울행정법원 판례를 보면 '어떠한 진료행위가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한의사만 할 수 있는 한방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결국 해당 진료행위가 학문적 원리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돼 있어요. 그러니까 레이저 침이라는 것은 원리를 한방에 두고 있지요? 판례가 무슨 레이저냐 전기냐 해 가지고 옛날에 우리 선조들이 썼던 것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원리가 어디 있느냐 그게 정확한 판례라고, 현행 법 속에서도."

다수의 의원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고 해서 한의사들이 CT나 MRI 이런 것을 사용할 수 있게 허용되는 것은 저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전현희 전 의원)” “그것은 안 돼.(윤석용 전 의원)”

 

 

쟁점 2.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국민건강에 도움될까?
-한의협회장 "서양의학적 진단기기 한방진료에 응용 못해"

 

첫 회의에서 결론 도출이 무산된 이후, 국회는 같은 해 6월 해당법률을 재심의했다.

이날 법안소위에는 김정곤 당시 한의사협회장이 전문가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그는 현대 의료기기를 이용한 진단결과는 한방진료에 응용하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환자 설명을 위한 자료일 뿐, 이를 이용해 치료법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김정곤 당시 한의사협회장의 진술이다.

"병원에서 검사를 하는 부분은 한의학적인 이론은 전혀 가미되지 않습니다. 판독한 대비표를 보면 순수하게 서양의학적 관점에서 판단을 해줍니다. 한방병원에서 그것을 하는 이유는 예를 들면 다리를 다쳐 온 사람이 과연 뼈가 부러졌는지 인대만 늘어난 건지에 대한 부분을 알아서 결과에 경과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고, 진단은 참고로 할 뿐이지 그것 때문에 기가 어떻다고 판단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요."

그는 "진단의 결과를 한의사는 전혀 응용하지 않고 상황설명만 해주는 데 쓴다는 그런 말이냐"는 손숙미 의원의 질의에도 그렇다고 인정했다.

"한의사는 그러니까 그 진단 결과에 상관없이 한의적으로 접근을 해서 약을 지을 뿐이다. 이런 말씀이죠?(손)"
"네(김)"
"그러면 지금 양의사가 쓰는 걸로는 일단 진단까지 끝나는 거네요. 그게 약을 짓는다거나 한의사가 진료행위를 하는데 응용이 안되고 있다는 말씀이시지요?(손)
"서양의학적으로 개발된 기기는 그렇습니다(김)"

당시 한의협은 법 개정으로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우려하시는 것처럼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저희가 CT나 MRI 같은 기기를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의견서를 드렸고 … 이미 수석전문위원께서도 전통적인 한의학의 기초에 원리를 둔다고 그러면 이 법을 개정하더라도 의료법상 의료행위의 개념이나 한의사의 업무범위 규정과 상충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히신 바 있습니다.”

 

 

쟁점 3.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정부가 결정할 수 있나?
-CT·MRI 등 사용은 법 개정 사항…정부 단독으로 못해

 

당시 국회 논의과정에서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추가적인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라는 얘기가 여러 차례 나온다. 복지부가 CT와 MRI, 초음파 기기 등은 규제 기요틴 대상이 아니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얘기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양의들이 주로 쓰는 CT나 MRI 이런 것들의 영역을 한방에서 침범할까봐 이것이 제일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의료기사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절대로 쓸 수 없는 것입니다.(최영희 전 의원)”

복지부는 규제 기요틴 추진을 발표하면서 “양·한방 이원화 체계의 특성과 국민의 요구, 헌법재판소 결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침마련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헌재가 언급한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 청력검사기 등을 기존 복지부가 해오던 유권해석 수준으로 각 기기를 검토해, 규정을 정비한다는 얘기다.

긴 논의 끝에 당시 국회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불가, 다만 레이저침 등 한의학에 기초한 기기에 대해서는 사용 근거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취지로 한의약 정의에 관한 문구를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라고 정리해 법안을 처리했다. 현대의료기기 사용논란을 일으킨 ‘현대적’이라는 문구는 완전히 삭제한 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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