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재활·신경·정형 vs 한의계, 피부·성형 vs 치의계

의료계 내부에서 전문과목 성역이 무너진지 오래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A의원'이란 간판을 달고 피부미용, 쁘띠성형, 지방이식 등의 진료를 보는 게 주된 사례다.

이제는 그 범위가 넓어져 보건의료 전반에서 고유 분야를 넘나드는 진료가 이뤄지고 있으며, 성형 등 돈 되는 의료시장에는 이미 치계와 한의계가 모두 뛰어들며 거대한 레드오션이 됐다. 이에 따른 의료계-한의계, 의료계-치과계 다툼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직역 간 갈등이 심각한 상태다.

최근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제한을 철폐하는 내용을 담은 정부의 '규제 기요틴' 발표로 영상의학전문의-한의계 갈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는 가운데, 여러 진료과에서 발생하는 직역 간 갈등에 대해 짚어봤다.

의료기기 싸움 수십년간 지속...한의계 "진단기기는 모두 인정돼야" 주장

의료기기 사용 문제는 이미 의료계와 한의계의 고질적인 갈등이다. 관련 소송도 허다하며, 일부 의료계 단체에서는 한의사의 불법적인 의료기기 사용을 고발하는 사태도 종종 일어난다.

토론회도 수없이 열렸다. 대부분 '한의사는 오감이나 맥 등 한의학적 진단만 가능하다'는 입장이 우세한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 경제부처와 일부 국회의원 사이에서 '창조경제' '일자리 창출' '국부창출' '국민 가계부담 해소' 등을 이유로 점차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제한에 대해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입장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 국회 오제세 전 보건복지위원장은 "같은 의료인이지만 한의계만 의료기기 사용이 제한돼 곤혹을 치르고 있다"면서 "의료법상 한의사도 의료인이므로 의료기기 사용은 당연하다. 진료범위 등이 명확하게 기재되지 않아 어디까지 사용해야 할지 그 한계를 정해야 할 때"라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을 우위에 두고 더 좋은 의술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

새정련 이목희 의원,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 역시 "한의사들의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 활발한 의료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으며, 새누리당 김명연 의원은 "현재 공항검색대에서도 축산업계에서도 X레이 쓰고 있다. 한의대를 나온 의료인인 한의사가 진단기기를 활용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을 원천봉쇄하는 것은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다"면서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 한의계의 진단기기 활용에 대한 해결책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것일까?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상 한의사의 경우 혈액·분뇨 검사기 등 수치가 나오는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고, 지난해 12월26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안압측정기, 청력검사기 등 안과 및 이비인후과 검사 기기의 사용도 가능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게다가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에서는 규제기요틴 발표를 통해 '현대 의료기기' 전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혁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실정.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의료계에서는 "영상전문의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영역임에도, 이에 합당교육 절차조차 없는 한의계에서 이익을 목적으로 국민 건강권을 위협하는 정책을 마련한다"며 강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반박해 한의계에서는 "건보법상 상병명 교과서를 같이 쓰라는 규정이 있고, 진단에 있어서 70% 이상 양·한방이 동일한 교육과정을 밟고 있다"면서 "진단 의료기기는 당연히 허용해야 함은 물론 치료기기 중에서도 한의계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IPL이나 레이저 등의 사용을 허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 부재와 과잉 사용 논란에 대해서는 "의사들도 처음부터 의료기기를 잘 사용하지 못했다. 한의사도 의사와 마찬가지로 진료현장에서 의료기기 사용할 때 정확한 진단을 위해 일선에서 끊임없이 공부할 것이고, 이는 양한방을 넘어 의료인이라면 갖춰야 할 상식"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CT나 맘모그래피 등 양방에서도 영상전문의가 독점적으로 판독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의가 쓰면 안 된다고 규정해두진 않는다. 이처럼 한의사도 일반의처럼 의료인범주에서 제한을 두지 말아달라는 것 뿐"이라고 했다.

앞으로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의 손을 떠나 주무부처인 복지부로 오면서, 어디까지 '적용 범위'로 설정할지를 두고 지금보다 더 큰 의료계-한의계 갈등이 이어질 전망이다.

IMS로 인한 신경외과·정형외과vs한의계 다툼 심각

▲ IMS와 관련한 의사협회(위)와 한의사협회(아래) 신문광고.

양·한방 갈등에서 의료기기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으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계속되는 소송으로 'IMS (Intramuscular Stimulation·근육내 자극 치료법)'에 대한 관심이 극에 달했었다. IMS시술 방법 중 침술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 지난 10여년간 법정공방과 논란이 계속되는 실정.

한의계는 현행 의료법상 의사는 한의사 면허 없이 한방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므로 이를 시행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에서 IMS는 근육에 침을 꽂아 신경을 자극해 통증을 완화하는 엄연히 의학적 행위라고 반박하고 있다.
 

▲ 의료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IMS기구.

지난해 11월초에는 대법원 판결에서 1·2심 무죄 판결을 깨고 A정형외과의원 원장이 시행한 IMS시술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결이 내려지면서 의협-한의협 간 갈등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다만 대법원에서는 IMS 시술을 두고 판결을 내린 것이 아니라 A 원장이 한 부위에 여러 대의 침을 놓았을 뿐 아니라, 한방 침술시 사용하는 침을 이용한 점을 근거로 들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즉 IMS 시술을 의사에게 허용한 것인지 아닌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단순히 의사가 한방의료행위인 침을 놓은 것에 초점을 두고 유죄판결을 내린 것이다. 따라서 IMS와 관련한 갈등은 정확한 판결이나 법적 제지가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될 전망이다.

추나요법 등 한방물리치료 급여화 '솔솔'...의료계 비판 잇따라

한방물리치료와 관련해서는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복지부와 심평원에서 한방물리치료 비급여 목록을 정리하면서, 재활의학계에서 이를 급여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돼왔기 때문. 이러한 의료계 우려는 사실이 됐다.

정부에서 현재 중장기 보장성 강화 정책을 짜고 있는데, 양방에 비해 한방의 급여화가 다소 뒷전인 점을 감안해 한방 물리치료를 급여화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근골격계 질환 환자들이 한방치료를 많이 이용하지만, 대부분 비급여로 이뤄져 치료비 부담이 극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다.

다만 '한의사가 사용가능한 물리치료기 등 의료기기 사용권한과 업무범위에 대한 논의 이후에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결정한다'는 단서가 있어 적용시기는 2018년쯤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근거 없이 행해지는 한방물리요법이 상당하므로, 의학적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증명 없이 급여로 인정해주는 것은 옳지 못한 처사라며 반박하고 있다. 의협은 "한방물리요법에 대한 안전성과 임상적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았으며, 특히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는 한방물리요법에 대해서는 관련 법적·제도적 논란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한방물리치료 뿐 아니라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한방 물리치료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재활의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현행법상 의사·치과의사와 달리 한의사는 지도권이 부여되지 않아 물리치료사 고용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한의사는 직접 한방 물리치료를 시행해야 하지만, 일부 한의원에서는 간호조무사에게 물리치료를 시키는 등 편법을 사용해오고 있는 상황.

기획재정부 및 관련부처는 내년 한방 물리치료사 교과과정을 개발하고, 오는 2018년 처음으로 한방 물리치료사 국가시험을 치를 계획이다. 또한 한방 물리치료사 제도 시행 및 한의사의 한방 물리치료사 지도 등을 시행할 수 있도록 올 상반기 중 의료기사법 개정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처럼 정부의 적극적인 추진이 이뤄지고 있으나 이에 못지 않게 재활의학회, 의사협회 등에서 반발하고 있는 상태며, 의료계를 넘어 물리치료사들도 반발하고 있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톡스·필러는 물론 양악으로 촉발되고 있는 '치과'와의 갈등

치과에서 보톡스와 필러 시술이 횡행해지자, 지난해 7월경 대한의사협회는 이에 대한 불쾌한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치과의사 면허범위인 '치과 의료와 구강 보건지도'를 벗어나는 행위로, 국민건강에 위해를 가져올 수 있어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실제 지난 2012년 8월 B치과의원 원장이 보톡스·필러 시술 행위에 관한 광고를 하다 기소유예 처분을 받게 됐는데, 이때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출한 바 있다. 헌재는 이해관계자인 의협에 의견서 제출을 요청했고, 의협은 의견서를 통해 "보톡스 및 필러 시술은 그 성분 및 시술 방법으로 인해 인체에 매우 해로운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는 의료행위로, 치과의사가 보톡스 및 필러 시술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단언했다.

덧붙여 법원의 판례에도 보톡스 및 필러 시술행위는 치과의사의 면허범위에도 포함되지 않을 뿐 아니라 보건복지부 및 국민권익위원회 역시 판례와 동일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치과의사들은 같은 의료인으로서 보톡스·필러 사용에 대해 제한을 두면 안 된다는 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게다가 이갈이 치료 등에 있어서 보톡스 치료가 각광받고 있으며, 필러의 경우 의료계에서도 피부과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

치협은 "치과에서의 보톡스·필러 시술은 구강악안면외과 교과서 및 악안면성형재건외과 교재 등을 통해 각 치과대학 및 치의학전문대학원에서 교육되고 있다"면서 "국가인증시험인 구강외과전문의 시험 문제로도 출제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적으로도 해당 분야는 치과의사 진료 분야로 인정되는 상황이고, 관련 연구와 강연 등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면서 "미용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치과의사 사이에서도 '심미치료'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증폭되고 있다"고 단언했다.

게다가 치과의사들에 의한 보톡스·필러 시술이 면허 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례도 없고, 최근에도 관련 건에 대해 검찰의 무혐의 처분이 잇따라 나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교근 및 교근주변 보톡스 시술은 치과 고유의 치료영역이므로, 오히려 일반의사들이 교합을 무시한 채 환자들에게 시술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보톡스·필러는 물론 안면윤곽술로 각광받는 양악수술에서도 치과의사와의 영역 다툼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양악수술이 치료가 아닌 '미용수술'로 자리잡으면서 성형외과-치과 간 신경전이 잇따르고 있는데, 성형외과에서는 "치과의 진료영역은 치아가 붙어있는 부분으로 얼굴 전체가 아닌 상악과 하악이 전부지만, 얼굴 전체를 손 대는 양악수술은 이에 대한 전문적 교육을 받은 성형외과에서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 여대생이 치과의사에게 양악수술을 받다가 사망한 사건을 근거로 들며 성형이 더 전문적인 우위를 선점하고 있음을 공고히했다.

하지만 치과의사들은 "인터넷이나 성형외과의 잘못된 광고로 인해 마치 양악수술이 성형외과의 진료과목인 것처럼 돼 있다"며 "기능적인 면을 고려했을 때 양악수술은 엄연한 치과 영역"이라고 반박했다.

양악수술은 위턱과 아래턱을 동시에 하는 수술이므로, 치아의 위치가 변하기 때문에 치과의 진료 영역이라는 것.

단순한 사각턱 수술의 경우에는 성형외과에서도 집도할 수 있지만, 양악은 구강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수술을 해선 안 된다는 입장. 이때문에 대형성형외과에서도 양악의 경우 반드시 치과의사와의 협진을 시행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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