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공단·보사연 집중 포격

 

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에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의사(공급자) 참여율이 높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건정심에서 정부의 결정과 책임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와 달리 의료계에서는 완전히 대립되고 있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터라, 정부와 보험자의 밀어붙이기식 연구와 주장 남발이 여론 몰이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건강보험 의사결정기구 개편 방안'과 관련한 연구 결과를 발표, "정부에서 거부권과 재심의 요청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변경, 최종적으로 정부가 결정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구조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이 같은 개편을 위해 두가지 안을 내놨으며, 1안은 현재 건강보험과 관련된 주요 정책인 보험료, 수가, 보장성 등에 대해 심의 및 의결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은 고수하되, 결정된 사안에 대해 정부가 거부권 및 재심의 요청권을 행사하는 것을 주도록 하는 방안이다.

위원은 위원장 1인과 동수의 가입자, 공급자, 공익으로 구성토록 하고, 가입자와 공급자 위원은 각각 가입자협의회와 공급자협의회를 구성해 전문가를 추천토록 제안했다. 또한 협의회 구성은 정부가 담당하며, 공익대표는 정부가 3배수를 추천하고, 가입자와 공급자대표가 모두 동의하는 사람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2안은 1안과 마찬가지로 복지부가 최종 의사결정권을 갖게 되며, 위원 구성방식도 동일하게 이뤄졌다.

반면 2안에서는 '중앙위원회' 산하에 '전문위원회'를 구성하는 형태로 개편해 건정심을 확대 운영하는 방안이 담겨 있으며, 전문위는 재정 관리·상대가치 조정 등 급여 관리, 의약품·치료재료·의료 등의 질 관리 및 평가 등을 맡게 된다.

연구진은 "1안은 정부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방안이며, 만약 기관의 대표가 전문성이 결여됐다면 전문적 식견을 갖춘 대리인을 활용해야 한다"면서 "조정과 중재 역할을 담당하는 공익대표는 가입자와 공급자의 동의 절차를 갖추도록 해서 중립성과 객관성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2안은 1안 보다 전문성을 강화한 방안"이라면서 "모든 사안에 대해 충분한 검토, 준비, 시범사업 등을 위해 전문위를 두는 것으로 마련했다"고 부연했다.

앞서 보사연에서는 지난해 11월초 '2015년도 유형별 환산지수 연구보고서'를 통해 건정심에서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등 이익단체 대표들의 참여를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수가를 결정하는 건정심에 의약계 당사자들이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건보 재정과 보장성에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정심은 수가뿐만 아니라 상대가치, 약가, 치료재료 가격, 급여 여부 등 건강보험의 보장성과 재정에 영향을 최고의결기구인데, 여기에 이익단체의 대표가 3분의 1이나 참여하면서 이해상충이 발생한다는 것.

보사연은 "건정심의 위원 구성은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조해 중립적인 위원 즉, 공익대표들로 구성해야 한다"면서 "보장성 및 가격을 결정하는 건정심 산하의 의약품 급여평가위원회, 치료재료전문평가위원회 등의 위원구성도 이익단체를 배제하고 가입자 대표를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의뢰로 시행된 연구며, 공단에서도 이미 수차례 건정심 구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왔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공단과 보사연에서 '건정심 구조 개편'을 위한 집중 물밑 작업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말 열린 공단 재정소위에서 정부가 난임 치료 급여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는데, 이에 대한 반대가 일자 정부 측 관계자가 이에 대한 어려움을 거듭 호소하고 나섰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정부 관계자는 건정심 구조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고, 급기야는 공급자와 가입자 위원들의 설득을 위해 난임부부들까지 재정소위 논의의 장에 배석토록 해 반대하는 위원들을 당혹시켰다는 후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말 공단 토론회에 참여했던 서울대 김진현 교수는 "우리나라는 공급자들이 직접 자신의 문제에 대해 투표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서 "건정심을 비롯해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치료재료급여평가위원회 등의 위원 구조를 변경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 이러한 특수한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의료비와 약제비 지출이 기형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은 가입자와 정부 등만 참여할 뿐 이해당사자인 공급자에게는 자문만 받되 참여할 수 없는 구조다. 독일이나 영국도 진료비에 관해 정부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있으며, 의료계는 배제한 채 이뤄진다"고 못박았다.

건보공단 김종대 전 이사장 역시 "우리나라의 보험료율과 수가, 급여구조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건정심에 공급자가 위원으로 있음에도, 정작 보험자는 참여할 수 없다"면서 "잘못된 의사결정구조를 바꾸고, 의결권은 복지부장관만 갖도록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건정심 구조 변경 후 건정심 권한은 단순한 '논의기구'로 바꿔야 하며, 의사결정은 복지부 장관 책임으로 넘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건보공단, 보사연 모두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세 곳 모두 '건정심에서 의사 등 공급자를 배제시켜야 한다'는 데는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와 일부 학계에서는 현재 건정심 구조가 정부 측에 유리한 구조며, 공익위원의 참여를 배제시켜야 한다는 반대 논리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때문에 정부와 보험자 등의 주장을 관철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에서 건정심 구조 개편을 주장하는 것은 가입자와 공급자 사이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중재역할을 해야 할 공익위원 몫 절반을 정부가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이 정책결정을 좌우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

이에 대해 감사원 역시 정부에서 공익대표를 임명 또는 위촉하고 있고, 심의안건 자료와 설명이 충실하지 않아 형식적인 심의·의결절차로 전락될 염려가 있다고 지적했으며, KDI에서는 건정심의 구조와 역할로 인해 수가협상이 '계약관계'에 기초한 보험자와 공급자 간 협상이 아닌 정부의 입장에 도덕적 우위를 부여한 '갑을관계'에서 정부 입장을 그대로 관철시키는 구조가 됐다고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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