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기-젠더혁신] 젠더 불균형 실태 분석 논문 발표 예정

젠더(gender)는 사회나 문화를 함축하는 사회학적 의미(남성적·여성적)의 성, 섹스(sex)는 생물학적인 의미(남성·중성·여성)의 성을 뜻한다. 생명과학계에서 말하는 젠더혁신은 섹스와 젠더 두 개념을 모두 포괄한다. 정확한 성별·젠더를 고려한 분석방법을 도입해 연구의 우수성과 질을 높이자는 취지이다. 동시에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연구 관점과 방법의 변화도 지향한다. 일찌감치 미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에서는 젠더혁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연구과제 선정 및 평가에 성별·젠더 요소를 적용할 것을 권고하는 등 활발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젠더혁신 프로젝트를 시행한 지 1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다.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자 현재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백희영(서울대학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료 분야에서 성별과 젠더에 대한 담론과 정책이 부족하다며, 다양한 실천방향 등이 논의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4년 6월 젠더혁신 포럼이 창립돼 격월로 운영되고 있고, 2015년 8월 서울에서 '젠더서밋(Gender Summit)'을 개최해 세계적인 젠더혁신관련 연구개발 추세에 동참해 협력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가치 중립적이고 성별에 무관한 것으로 생각해왔던 생명과학연구에서 젠더혁신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꼭 성별을 구분해야 할까? 이러한 물음을 시작점으로 해 본지는 2009년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부터 시작된 젠더혁신 프로젝트의 배경과 특히 보건의학분야에서 성별·젠더 분석방법을 도입한 사례연구를 소개한다. 더불어 국내외 전문가들과 함께 젠더혁신 프로젝트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해봤다. 1. 성·젠더 편견으로 사회적 비용 증가 2. 같은 질환 다른 증상…심장질환·골다공증 3. 선진국 젠더혁신 확산…한국은 걸음마 수준 4. "양성 구분해야 명확한 실험 결과 얻는다"
 
▲ 사진·고민수 기자 msko@monews.co.kr

젠더혁신의 첫 신호탄을 알린 Londa Schiebinger 교수가 모든 연구 과정에 성별·젠더 관련 요인을 분석하는 모형을 만들고 이를 '젠더혁신'이라고 명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주변인들 모두 왜 굳이? 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수년이 지난 지금, 과학적 진실의 규명은 성별·젠더 분석을 통한 정확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미국과 27개 EU 회원국 전문가들이 젠더혁신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가톨릭의대 생명의과학·분자생물학 이숙경 교수도 최근에서야 연구에서 성별을 구분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를 만나 우리나라 생명과학연구에서 필요한 젠더혁신은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생명과학·의료연구에서의 섹스와 젠더, 두 개념이 갖는 의미는?

실험대상자로서의 섹스(sex)와 젠더(gender)가 있다. 임상시험에서는 플라시보 효과를 고려해 섹스와 젠더 개념이 함께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대상군이 약을 먹을 때 젠더적인 부분이 효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섹스 자체만으로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몇몇 보고를 통해 사람·동물과 같은 전체 유기체에 섹스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모든 실험에 양성을 모두 포함시킬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론 그렇지가 않다. 연구자 대부분은 이미 발표된 논문 데이터를 통해 실험디자인을 짜고 결과를 도출한다. 그러므로 이전 논문에서 남성(male)만 사용했다면 나도 남성(male)만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실험에서 성별 구분과 관련한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국립보건원(NIH)도 연구에서 섹스·젠더 중요성을 인식하고 임상시험에 반드시 여성(female)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공표했다.

-생명과학계의 현실을 고려할 때, 실험에서 양성을 모두 고려할 수 없는 제약이 있을 것 같다.

비용·시간적 측면에서 큰 부담이 따라온다. 임상시험에서 복용군과 비복용군으로 나눠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보통 전임상에서는 쥐를 많이 사용한다. 쥐는 네개의 주기(발정 전기, 발정기, 발정 후기, 발정기·후기 사이)별로 각각 반응이 다르다.

이 같은 주기를 보기 위해 두 성별군도 각각 4개군으로 나눠 총 8그룹이 필요하다. 연구비, 수용시설, 인적자원이 2배에서 많게는 5배가 증가한다. 충분한 재원과 분명한 동기가 없다면 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 미국·유럽에서는 수년 전부터 젠더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 발표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듯하다?

인식이 부족했을 뿐더러 성별 구분을 명시하는 내용을 담은 명확한 권고안도 없다. 그러므로 연구자들이 임상시험에서 양성을 함께 쓰지 않거나 구분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결과을 파악하고 알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

올해 국내 의료·과학기술계 학자들도 의기투합해 젠더불균형의 실태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 그렇다면, 젠더혁신이란 여성이 당연히 포함돼야 하는 연구에 여성이 제외되면서 기존 연구나 지식에 오류나 편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인가?

그렇다. 하지만 연구의 크기를 갑자기 최대로 늘리자는 말은 아니다. 그동안 간과했던 개념을 확신시킬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실험을 하는 연구자 입장에서도 양성을 모두 포함시킨 실험이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나.

줄기세포 연구를 예로 들면, 세포만 집중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 세포 주변에서 일어나는 부수적인 과정들도 함께 관찰함으로써 지나칠 수 있었던 사실을 발견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 우리나라의 생명과학계에서 본 젠더 문제에 대한 현실은 무엇이고, 해결방안이 있다면?

조심스러운 문제다. 남녀가 무조건 다르다고 하는 것도 성차별일 수 있다.

실험에서 성별로 반응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일 뿐, female은 무조건 이렇고 male은 무조건 저렇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다만 집단적으로 봤을 때 female과 male이 분류될 수 있다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구에서 섹스와 젠더 중요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가장 먼저다. 연구자는 성별을 고려한 연구와 고려하지 못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변수, 한계점 등을 포함한 결과물을 도출하는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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