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특허연계 대비 독점권 선공... CP 도입, 의약품 일련번호 시스템 구축 등 분주

지난해 제약사들은 혁신과 도약을 강조하며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냈다. 리베이트 투아웃제로 인해 영업환경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고, 특별한 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업체는 매출액 감소를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사용량 약가연동제, 의약품 장려금제도 및 리베이트 규제로 예전처럼 내수시장을 겨냥한 제네릭 생산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시기를 맞았다. 영업 환경은 위축됐고 제네릭 출시를 위한 필요한 생동성 시험 승인 건수도 2010년 상반기 176건이었던 것에 비해 2014년 상반기는 76건으로 크게 줄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약사들은 2014년 시무식 당시 내세웠던 '글로벌 제약기업 도약', '창조와 혁신 체질화' 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분주했다.

이에 상위제약사로 꼽히는 유한양행, 녹십자, 동아ST, 한미약품, 종근당을 중심으로 지난해 어떤 성장동력을 마련해왔는지를 살펴보고, 2015년 청양(靑羊)의 해를 맞아 예상되는 변화 요인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내다봤다.

고군분투한 청마의 해…1조 매출기업 탄생

유한양행은 지난해 시무식에서 매출액 1위뿐만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업계 1위를 하자는 의미로 '일등 유한, 새 역사 창조'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유한양행은 '차별화된 신제품을 적시에 출품하고 기존 품목을 육성해 시장점유를 확대한다'는 전략으로 영업력을 활용해 주로 다국적사 제품을 도입 판매했다. 이에 2012년 출시된 비리어드와 트라젠타가 각각 올해 3분기 누적 약 650억원과 583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79.5%, 45.9%씩 고성장을 이뤘다.

이 같은 활약에 힘입어 유한양행은 지난해 12월 제약업계 최초로 매출 1조를 돌파했다. 유한양행 측은 그동안 국내 의약품 판매 확대와 수출도 크게 성장했으며, 건강생활용품과 화장품 분야로의 사업 다각화도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녹십자는 지난해 글로벌 진출을 위한 생산부문 강화와 해외 혈액원 추가 설립 등을 계획했다. 이에 의약품 수출과 더불어 플랜트 단위 수출을 성사시켰으며 3분기 누적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증가한 1357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녹십자는 지난해 WHO 산하 범미보건기구(PAHO)의 의약품 입찰에서 남반구와 북반구 각각 약 2300만 달러, 1500만 달러 규모의 수주를 성사시켰다. 이에 따라 녹십자는 중남미 30여 개 국가에 독감백신을 수출하게 됐다.

동아쏘시오그룹은 지난해 시무식에서 '2014년은 글로벌 도약을 위해 더욱 발전하는 한 해'라고 강조했다.

동아ST는 이에 맞게 글로벌 진출을 위한 기존 품목 시장 확대, 수출 품목 다각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중국 쑤저우 시노와 5년간 최소 250억 원 규모의 결핵치료제 '크로세린' 독점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수퍼박테리아 타깃 항생제 '테디졸리드'가 미국FDA로부터 '시벡스트로'라는 제품명으로 최종 허가를 승인받아 시판에 들어갔다.

그 결과 동아ST는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1억 700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달성했다.

한미약품은 2014년을 맞이하며 창조와 혁신을 통한 조직문화의 발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한미약품은 2014년 3분기 누적 기준으로 영업이익의 19배인 939억원(매출대비 22.4%)을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특히 연구결과를 해외 학회에서 수차례 발표하며 글로벌 행보를 본격화했다. 표적항암제 'HM61713'의 1상과 2상 임상 중간결과를 임상종양학회(ASCO)에서, 류마티스관절염신약 'HM71224'의 1상 중간결과를 유럽류마티스학회(EULAR)에서 발표했으며, 유럽당뇨학회(EASD)에서는 당뇨 및 비만치료 바이오신약의 주요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받았다.

2013년 지주회사 출범 이후 2014년을 제2의 창업 원년으로 삼아 혁신신약 개발과 해외 시장 개척을 이루겠다고 다짐한 종근당은 당뇨병 신약 '듀비에'를 출시했다.

듀비에는 지난해 3분기까지 월 7억 원 규모의 처방액을 기록했다. 또 프레더윌리증후군과 고도비만치료제인 '벨로라닙'의 미국 내 임상을 활발히 진행했다. 호주에서는 고도비만치료제로 임상에 돌입했다.

청양의 해, 제약산업 활로는?

상위제약사를 중심으로 지난해 운영 현황을 살펴본 결과, 다국적사 제품 도입을 통한 매출확대, 사업다각화, 글로벌 신약 창출을 위한 적극적인 R&D 투자,  내수시장 한계 극복을 위한 수출 극대화 등이 부각됐다.

또 올 한 해에도 대내외적인 변화에 대응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 업계의 숙제로 남았다. 그렇다면 올해 주목되는 제약업계의 변화 요인 및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 도입
가장 큰 환경 변화 요인은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도입을 꼽을 수 있다. CP는 리베이트 이슈가 부각될 때마다 언급됐지만 지난해에는 특히 리베이트 투아웃제 시행과 제약협회의 윤리경영선포식 등을 신호탄으로 제약사들의 도입은 더욱 활발했다.

CP 도입을 위해 각 제약사들은 자율준수편람과 운영규정 등을 마련하고, 감사실 등에 CP팀을 구성하는 한편 자율준수 관리자를 배치했다. CP 담당자 등은 영업 및 마케팅 활동이 관련 법규를 준수해 진행되는지 사전 검토를 실시해 법 위반 가능성이 있는 활동을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를 시행 중인 제약사들은 CP의 준수 여부를 평가해 인사고과에 반영하거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 동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발생하는 리베이트 이슈, 영업 현장과 CP 관리팀의 온도차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CP팀의 지도와 감사에 일부 영업사원들은 현장을 모르는 일이라며 불만을 제기했으며, 다른 업체의 CP 도입을 틈타 오히려 더욱 음성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해 처방권 획득에 주력하는 제약사의 행적도 업계 일각에서 거론됐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리베이트 근절 의지에 발맞춰 CP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업계 전체에 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며, 매출 목표를 높게 설정해둔 상황에서 윤리규정을 통해 영업사원을 압박하는 형태는 지양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허가특허연계제도 대비 독점권 선공

3월 15일부터 시행되는 한미FTA의 허가특허연계제도에 따라 제약사들은 특허 부문 강화에도 나섰다. 다국적제약사들과 특허 소송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전문 변리사로 구성된 특허팀을 구성하는 등 소송 전략 강화에 나선 것.

아울러 전문 분야인 의약품과 특허 부문 모두에 정통한 약사 변리사가 부각됐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지난해 10월까지 특허소송 청구 건수는 150건으로 2013년 71건의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약분야 정보제공업체 비투팜의 이홍기 부사장은 "이미 특허 소송이 급증하는 추세고 앞으로 제네릭 독점권을 위해 더 늘어날 것"이라며 "독점권을 받는 회사는 이를 발판으로 성장가도를 달리겠지만 반대로 몇 차례 독점권의 기회를 놓치면 1년 늦게 시장에 진입하면서 고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제약업계 특허소송을 다수 진행한 한 변리사는 "허가 3년 전부터 그린리스트 등재 특허의 존속기간이 언제까지고 무효가능성이 있는지 미리 전략을 짜야 한다. 특허권자도 특허가 부실하지 않게, 제3자가 들어올 수 없게끔 이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한 업계 관계자는 "제약사별로 특허에 대한 준비와 교육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CEO 마인드"라며 "본격적으로 특허 부문을 강화시키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의약품 일련번호 시스템 구축

올해부터 시행되는 의약품 일련번호 의무화제도를 위한 시스템 구축도 보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정·전문의약품 일련번호 의무화제도는 의약품에 일련번호(의약품 코드)를 부착해 제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제도다. 현재 규정에 따르면 예외약제는 방사선의약품, 희귀의약품, 세포치료제에 불과해 모든 제약사들은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혹은 2차 바코드를 부착하는 기기를 구비해야 한다. 특히 2016년부터는 제약사와 도매상의 일련번호 정보, 의약품 입·출고 정보 등을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업계 전반적으로 이에 대한 대응은 미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가 지난해 하반기 실시한 '의약품바코드 표시 및 RFID 부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련번호 표시 의약품은 57개 제약사 1387품목으로 전체 제약사의 15.4%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상황에 제약업계 관계자는 "일련번호 정보 보고가 2016년부터 시행이기 때문에 2015년 초에는 심평원에서 보고체계 등과 관련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이드라인이 확립되지 않은 지금 회사가 시설과 시스템을 구축해봐야 정부안과 다르면 이중투자의 부담을 떠안게 된다는 우려다. 단 이를 위해 제약사는 정책 동향을 주시하고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사업에 뒤쳐지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의약품 설계기반 품질 고도화

의약품 생산공정 업그레이드인 '의약품 설계기반 품질고도화(QbD, Quality by Design)'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전략으로 부각되고 있다. QbD는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의약품 생산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개발 단계에서 미리 예측하고 체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품질관리 시스템을 말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5년부터 QbD 적용 제품을 제형별로 개발하는 사업 등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제약사 중에서도 수출에 주력하는 상위 제약사를 중심으로 QbD 경험이 풍부한 다국적제약사의 도움을 받아 시행에 들어갔다. QbD의 메인은 위해평가라고 볼 수 있는데 벽에 평가 리스트를 붙여놓고, 첨가제/제조/패키징/용출 등 항목별로 점수를 매겨 리스크를 파악한다. 이후 점수가 낮은 항목을 대상으로 실험을 통해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 어떻게 관리할지 강구하는 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다국적사 전문가와 위해평가 등 QbD 일련의 프로세스를 함께하며 노하우를 배우는 중"이라고 귀뜸했다.

그러나 값비싼 설비를 들여온다고 바로 성과가 나오는 개념이 아니라 연구단계부터 인원관리, 품목별 위해평가 등 넓은 범위에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추산이 쉽지 않은 점과 QbD에 대한 제약계 CEO 및 오너들의 무관심은 여전히 장벽으로 꼽히고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지적됐다.

이처럼 2015년을 앞둔 제약업계는 어려운 환경과 빠른 변화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나름의 방안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정책·환경적 요인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전략은 끊임없이 요구된다. 제약업계가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 글로벌 도약, 혁신신약 개발 등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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