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중소규모로 특화…칠전팔기 자세로 계속 도전

내수 시장의 포화, 인구 고령화에 따른 급격한 의료비 증가 등 의료 시장 전망은 밝지 않다. 특히 대형병원과 의원 사이에 낀 중소병원의 처지는 더 열악하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중소병원들이 국내 의료시장을 뒤로하고 돌파구로 찾은 것이 해외 진출이다.

전문가들은 해외진출이 중소병원들의 숨통을 틔우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진단한다. 가능성이 있다는 객관적 근거들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 의료서비스 시장은 2009년 2조 2000억 달러, 2015년 3조 8000억 달러, 2020년 5조 5000억 달러로 연평균 8% 이상의 성장이 전망된다. 특히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은 연평균 15% 이상 성장해 2020년에는 세계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할 것이란 희망 섞인 자료들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대학병원들처럼 덩치가 큰 병원들보다는 척추나 재활, 피부 성형 등 전문 과목을 전공으로 하는 중소병원들이 해외 진출에서는 성공 확률이나 위험부담 등에서 우위에 있다는 분석들도 발표되고 있다.

 

2014년 보건산업진흥원이 발간한 '2013년 보건산업백서'에 따르면 의료기관의 해외진출은 대형병원들의 환자유치 사무소 운영 등에서 중소병원들의 전문진료과목 진출로 바뀌고 있다. 특히 비교우위가 확실한 특성화 및 전문 중소병원 중심의 소규모 해외진출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삼성서울병원 개원 20주년 국제심포지엄에서 박성민 보바스기념병원 이사장은 "우리나라 의사들은 성실하고 창의적이다. 여기에 우수한 의료 인프라와 역동적인 면까지 갖춰 해외로 진출하기 좋은 조건을 갖췄다"며 "준비하는 병원과 끊임없이 노력하는 병원에게 기회가 온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옆 동네 병원이 아니라 메이요클리닉이나 클리블랜드가 돼야 한다"고 해외진출을 강조했다.

선병원·보바스병원 등 활약

2013년 9월 실시한 의료기관 해외진출 현황조사에 따르면 총 111개의 의료기관이 19개 국가에 다양한 형태로 진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09년 49개 기관 진출 수 대비 100%, 연평균 11% 증가율로 급성장하는 수치다.

해외 진출에 뛰어든 중소병원은 선병원, 마리아병원, 연세에스병원, 우리들병원 등이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초기 진출은 성공적이라 볼 수 없었다.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하면서 진출과 철수를 거듭하면서 경험을 쌓아왔고, 이후 보바스병원, 윌스기념병원 등이 기존과는 다른 전략으로 해외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해외진출 병원 중 눈에 띄는 곳은 선병원이다. 비교적 일찍 해외로 눈을 돌린 선병원은 최근 알제리에 500병상 규모의 병원을 건립하고 위탁운영 하는 프로젝트에 성공하고, 중국 진출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다.

알제리 정부 5개 대학병원 건설 계획이 발표된 것은 지난 2013년이다. 37개 병원이 입찰했고 이중 오스트리아, 영국 등 최종 10개 병원이 최종 입찰에 올라 1위로 통과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 프로젝트는 알제리 주택도시계획부와 보건부가 발주한 것으로 선병원이 컨설팅, 위탁운영, 의료장비 공급 및 운영을 맡게 된다. 운영기간은 오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이다. 지난해 12월 초 열린 글로벌헬스케어 프론티어 2014 세미나에서 이규은 선병원 행정원장은 "알제리 프로젝트를 따낸 것은 서울대병원, 현대건설이 도와줘 가능했다"며 "앞으로 보건부에서 수익·손실과 관계없이 편성해 분기별 운영 자금을 받을 예정이고, 위탁운영비는 분기별로 실비정산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근엔 세계 500대 기업인 파트너사와 손잡고 오는 2016년 항저우에 '검진 + 치과 + 스킨'을 혼합한 의료기관 오픈을 앞두고 있다.

성공의 뒷면에는 수차례 실패의 아픈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 행정원장은 "지난 2000년 칭다오 시립대병원 위탁운영을 시도했지만, 수수료와 수익구조 불투명 등으로 제안을 거부했다"며 "베이징에 있는 모 제약그룹과 검진센터 프로젝트 또한 계약 체결 후 파트너의 계약 불이행으로 좌절됐고, 2013년에도 계약 체결을 앞두고 성사가 되지 않았다"고 경험을 밝혔다.

해외 진출의 맏형이라 할 수 있는 우리들병원은 중국 상하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에 척추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UAE와 두바이 우리들척추센터는 자본금 투자 없이 의료 기술 및 의료시스템 등의 비용을 받는 형식으로 성공사례를 만들고 있다.

재활병원 진출 약진

재활전문병원들의 해외 진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012년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인 알마티에 현지 의료기관과 합작으로 척추재활센터를 설립한 윌스기념병원은 지난해 9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추가로 120평 규모의 재활센터를 개소했다. 국제복싱협회(AIBA) 훈련센터에 오픈한 이 재활센터는 재활치료사를 현지에 파견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보바스병원은 두바이 보건청 산하의 DRC(Dubai Rehabilitation Center) 위탁운영, 인도네시아 Hermina 병원그룹 교육, 훈련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는 중국 장쑤성 이싱과 산둥성 옌타이에서 각각 한국형 노인·재활병원의 본격 운영에 돌입했다.

이싱 보바스병원은 526병상 규모의 재활전문병원과 440병상 규모의 최고급 요양시설을 갖춘 병원이다. 보바스병원은 중국측 사업자인 중대지산그룹으로부터 컨설팅 수수료와 위탁운영수수료, 브랜드 사용료 등을 받는다. 옌타이에 건립되는 '옌타이-보바스 리합 종합병원'은 150병상의 입원실과 재활치료센터, 중환자실 등을 갖추고 올해 초 개원 예정이다.

박성민 보바스기념병원 이사장은 "중동 진출의 어려운 점은 라이센스 문제와 잦은 담당자 교체, 언어, 이중과세 등을 조심해야 한다"며 "두바이는 중동지역이라 다른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는 좋은 지역이고. 국립병원 등이 열악하고 최근 의료시스템 개혁에도 실패해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지역"이라고 진단했다.

또 "중국은 양국 의료진 간의 능력차이와 인허가 사항, 언어, 파트너사에 대한 공개 자료 부족, 문화와 언어에 대한 해석의 차이 등 불확실성"이라고 분석했다.

박 이사장은 병원을 망하게 하고 싶으면 CEO가 오만하면 된다고 경고한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변화를 당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하루 빨리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글로벌 시장은 이미 생존을 위한 전쟁터이다. 우리나라도 빨리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피지기…진출국 제도 모르고 덤볐다간 필패

중소병원의 해외진출이 핑크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철수한 병원들의 사례에서 보듯 병원들의 해외진출은 험난하다. 병원들의 해외진출 트렌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에서도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이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의 주요 대학병원이나 오스트리아 VAMED, 싱가포르 Parkway Holdings 등이 의료기관의 해외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도 차세대 성장전략의 핵심 분야로 의료산업을 선정하고, 의료서비스, 의료장비, 의약품 등을 패키지화해 신흥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

진출하려는 국가 제도 파악 면밀히

보건산업진흥원 2013년 조사에 따르면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법, 제도 부문이 36%로 가장 많았고, 현지 네트워크 24%, 재무 19% 등으로 조사됐다.

법제도 부문에서는 국가별 상이한 의료면허 및 인허가 제도로 진출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의약품 수출입과 관련된 현지 평가 등록제도 또한 복잡한 것으로 나타났다.

네트워크 부문에서는 신뢰할 만한 현지 파트너 정보에 대한 부재가 애로사항으로 나타났고, 재무부문은 투자 및 운영 예산의 확보가 어려워 수익성 창출에 애로를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말 개최된 글로벌 헬스케어 프론티어 2014 세미나에서 박성철 북경대성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국가별로 법과 제도가 달라 그 나라의 의료 관련 법과 제도를 꼭 확인하고 진출하라고 강조한다. 특히 중국은 관련 법 규정이 정립돼 있지 않고, 상충하는 내용도 많아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 변호사는 "중국 의료시장 진출에는 명확하고 투명한 가이드라인이 결여된 상태라 조심해야 한다"며 "대부분의 규정은 여전히 국가 정책의 범주에 해당되며 이러한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실시세칙 등은 구체적인 법규정의 개정, 입법은 진행이 느린 상태"라고 말했다.
중국·중동·동남아 시장 유망

해외로 나가는 것이 미래 지향적인 방법이라지만 막막한 것 또한 해외진출이다. 현재 중소병원들이 문을 두드리는 나라가 중국, 두바이, 동남아시아 등인데 이들 국가에 관한 장단점을 조목조목 따져보라고 조언한다.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은 인구 13억의 거대한 시장이라는 매력과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1억 4000명이라는 가산점까지 있어 진출을 고려해 볼 만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동남아시아도 가능성이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자체적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고, 싱가포르나 인도네시아 등 인근 지역으로의 전초기지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열린 삼성서울병원 개원 20주년 국제심포지엄에서 박성민 보바스기념병원 이사장은 "두바이는 그동안 미국이나 유럽 등 유명 의료기관들에 높은 보상을 주면서도 의료진 파견 약속 등을 실행하지 않는 행태에 실망하는 추세"라며 "최근 실력과 자국 의료진을 파견할 의지를 갖춘 우리나라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있어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소개했다.
투자규제 심할 땐 위탁운영 고려

진출할 국가가 정해졌다면 어떤 형태로 나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대학병원 등이 현지에 연락사무소 형태를 운영하는 반면에 중소병원들은 자본투자가 수반되는 직접 투자형태가 많고, 기술전수, 라이선싱, 프랜차이징 형태 등 다양하다.

박 이사장은 "해외 진출을 준비할 때 그 나라에서 수용할 수 있는지를 기본으로 성장성, 실행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며 "위탁운영을 할 것인지 투자+위탁운영을 할 것인지에 대한 장단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불확실성이 높고 현지 투자 규제가 심할 때는 위탁운영을 선택하는 것이 좋고, 고수익이 기대되고 현지 투자에 제약이 없을 때는 투자+위탁운영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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