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환자안전 시작] 연속된 참사에 환자안전 수면 위로...환자와 소통이 '첫 걸음'

환자안전에 의사는 물론 정부, 국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우나리조트 붕괴, 세월호 침몰, 판교 환풍구 붕괴 등 지난해 한달에 한 번 꼴로 대형재난이 터졌고, 신해철 씨 사망사건으로 인해 환자안전에 대한 관심이 극에 달했다. 여기에 환자안전법까지 국회를 통과하면서 보고체계 운영, 재발 방지 방안 개발, 환자안전 관련 시설·인력 마련 등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동안 환자안전의 무엇이 문제였는지, 또 어디까지 개선됐고, 앞으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아봤다.

우리나라는 세월호 사건 전까지 대형재난에 대한 사전 예방은 물론 사후 대응방안이나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었다. 일단 사고가 터지면 허둥지둥 헤매다가 막대한 인명피해를 내기 일쑤였다. 각종 재난 후 안전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찬밥 신세이던 환자안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환자안전과 관련된 기존 수가를 인상하고 새로운 형태의 수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안전행정부와 함께 '대형재난 대응 및 의료지원인력 운용계획'을 세웠다.

먼저 안전과 관련된 예산 40억여 원을 100억원대로 끌어올리고, 상황전파와 현장대응의 신속성 제고를 위해 재난의료지원단 출동과 응급의료 현장지휘체계를 개편했다. 특히 현장 응급소장인 보건소장의 지휘 하에 환자를 분류한 후 병원으로 이송했던 것을 앞으로는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의사 중 1명이 책임자가 되고, 최종책임자가 보건소장이 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재난응급의료상황실'도 개설한다. 24시간 운영체제며, 정보를 관리하고 상황을 전달받는 부서다. 뿐만 아니라 다음카카오에 의뢰해 보안성, 검색기능 등이 강화된 '재난전용 다자간 동시 대화 어플'을 개발 중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카카오톡을 통해 현장에 있던 의료진, 공무원 등 여러 관계자가 상황 보고를 한 것에서 착안, 다자간 대화가 가능한 동시에 보안기능, 검색기능 강화된 어플을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재 20개에 불과한 권역센터를 내년 중으로 15개 추가 지정해 총 35개 재난거점병원을 운영하고, 차량 부족이나 장비 노후화, 전문인력 부족 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국회도 움직이기 시작해 잠자고 있던 환자안전법을 다시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렸고 국내 최초로 환자안전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는 성과를 냈다.

환자안전법은 △종합적인 환자안전관리체계 구축 △환자안전사고 보고 시스템 운영 △안전사고 재발방지 방안의 개발 등을 핵심으로 한다. 이번에 복지위를 통과한 법안은 오제세 의원이 발의한 '환자안전 및 의료 질 향상에 관한 법률안'과 신경림 의원이 발의한 '환자안전 및 의료 질 향상 법안'을 병합한 안이며, 안전을 위한 국가와 지자체, 의료기관의 책무도 명확히 했다.

또한 '보건의료기관과 보건의료인, 환자의 환자안전활동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규정도 명문화해 사업 지원근거를 마련했다. 다만 법안 심의과정에서 의료계와 병원계에 과도한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 각종 벌칙규정은 대부분 삭제됐다.

병원 자발적 참여 가능한 환경 만들어야

이와 관련해 학계와 환자단체 등에서는 환영의 입장을 보였으나, 일각에서는 반발이 잇따르고 있는 실정. 또 하나의 규제가 생긴 것에 대한 반감은 물론 제대로 된 지원체계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병원 내에서 환자안전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재정과 인력이 적극적으로 투입될 수밖에 없는데, 수가나 인센티브 등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는 부분에 대해 논의가 없었다. 즉 위원회의 설치 및 전담인력 배치, 보고체계 및 보고학습 시스템의 운영 등 규제만 강화하고 모든 책임을 병원에만 떠넘긴다는 불만이며, 소요비용의 보상기전부터 마련해야 자발적 참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울산의대 이상일 교수는 "병원에서 예방 가능한 사망자 수는 지난해 1만8000여 명으로 추산된다"며 "세월호 사건 희생자 304명으로, 환자안전사고에 인해 매년 세월호가 5척씩 침몰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환자안전사고는 주로 예측하지 못한 사망, 수혈 오류, 영구적 상해, 환자 오인, 방향이나 부위가 틀린 수술, 수술 도중 신체 내 이물질 미제거, 인공호흡기 사고, 치료지연, 수술실 화재, 병원 내 감염, 낙상 등이다. 이 같은 환자안전 사고나 의료 오류 등에 대해 보고하고 이를 바로 시정, 사후조치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하는데, 대부분 보고체계가 없거나, 있더라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보고가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비밀보장의 문제, 병원 피해 우려, 처벌의 두려움 때문. 이 교수는 "보고체계를 의무화하고, 보고한 직원을 보호해주는 한편, 사전에 감염 등을 예방할 수 있도록 의료진과 직원들의 교육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보고체계가 잘 갖춰지기 위해선 의료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의사'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보스턴의대 임상내과 전진학 교수(Metro West MedicalCenter 감염내과장)는 "환자안전을 위해서는 보고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의사들 참여가 우선시돼야 다른 의료인들도 참여한다"고 말했다. 의료현장에서는 '의사'들이 가장 핵심 인물이기 때문에 의사들이 솔선수범해 보고를 제대로 하면 자연스럽게 간호사, 영상기사 등 의료진들도 보고하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주장이다.

전 교수는 "의료계에서 의사들의 의견을 중시해주는 만큼, 권한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며 "보고와 환자안전의 인과관계를 인지하고, 보고를 생활화하자"고 당부했다.

환자와 소통이 환자안전 향한 지름길...환자가 함께하는 건강증진병원

현재 우리나라 7곳에 위치한 건강증진병원은 질 높은 의료와 간호서비스는 물론 말 그대로 ‘건강증진’이라는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병원이다. 이곳에서는 직원은 물론 환자들이 조직적으로 건강증진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지역사회와도 적극 협력하고 있다.

HPH네트워크 최재경 운영위원장(건국의대 교수)은 "병원 내에서 건강증진 활동이 이뤄지면 그 효과가 상당히 크다”며 “의사 외에도 간호사, 영양사, 심리치료사, 운동재활치료사 등이 전문적인 지식으로 진료과정에서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위해사건을 예방 중"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낙상을 예방하기 위해 전 직원들이 △위험도 평가도구 및 평가주기 개발 △위험도 분류 기준 마련 △고위험환자군 및 발생가능 장소 등에서 예방활동 실시 △성과 관리, 경영진 보고 및 관련 직원 공유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수술에서도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환자가 수술 부위에 대한 표시를 환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환자뿐 아니라 직원들의 건강관리도 병원에서 책임지고 있으며, 직원들은 예방접종, 금연, 절주, 영양 등의 건강증진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특히 업무 중 감염이나 약제분진 흡입 등을 예방하기 위해 주기적인 직원 교육활동을 시행하며, 병실 안 공간 확보와 환자 편의를 위해 설계, 보완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아직 한국에서는 환자안전이란 개념이 자리 잡지 않았고, 건강증진병원이란 부분도 낯설다"며 "가정의학회 등 학회 등을 찾아 병원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제적인 사업을 해야 하므로 많은 병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자참여 동반자 관계로 바라봐야

의료계도 정부, 국회와 한마음으로 환자안전에 대해 다가가고 있지만, 정작 환자안전을 위해서는 '환자'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이 대두되고 있다.

의사나 병원의 의무만을 요구했던 환자가 오히려 가장 영향력 있는 당사자라는 것이다. 일단 환자가 먼저 의사 회진시 이름을 정확히 말하거나 증상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을 거치면 오류가 발생할 확률이 적다. 이를 위해 의료기관평가인증원과 보건복지부, 환자단체연합회는 정확한 환자 본인을 확인을 유도하는 안내 포스터를 제작, 전국 의료기관에 배포한 바 있다.

포스터에는 의료 소비자를 대상으로, 의료기관과 함께 정확한 환자 확인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인증원 측은 "의료 소비자가 진단 및 치료과정 등에서 환자확인 절차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의료기관 내 환자안전 사건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이대목동병원에서는 4개월간 좌우가 바뀐 엑스레이 필름으로 578명의 환자를 진료한 일이 발생했다. 궁극적으로는 병원과 관련 의료진들의 문제지만, 이때 환자들이 자신이 치료받는 곳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이를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해당 사태가 보다 일찍 밝혀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해외에서는 환자의 참여에 대한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료정보학회에서는 기조강연을 의료인이나 정보학자가 아닌 환자가 맡았고, 해당 강연의 주제어는 다름 아닌 참여의료였다.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해당 질병에 대해 정보를 찾아야 하는 것은 물론 환자동호회 등 여러 참여를 통해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러한 '환자참여'를 반-의사(anti-doctor)가 아니라 동반자로 바라봐야 하며, 환자들에게 정보를 개방해 의료진들이 미처 거르지 못한 오류를 마지막에 환자나 가족이 막을 수 있는 장치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환자안전을 향상시키기 위해 환자들의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환자를 치료 동반자로 바라보는 관점이 일반적이지 않지만, 환자안전에 관심 있는 의료진들은 환자의 참여가 가져올 많은 긍정적인 측면과 환자 건강의 주체가 환자 자신이라는 측면에서 '환자참여'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환자참여'는 환자안전의 마지막 보루며, 환자안전을 위한 모든 활동들이 의미있는 결과를 낳기 위해선 필수적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HPH네트워크 안주희 기술위원장(경기의료원 수원병원 교육수련부장)은 "환자의 병태 확인하고 이를 전체 의료진들에게 공유해야 한다. 또 이를 반드시 재확인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도 환자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져야 완벽한 진료를 했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학분야 분쟁의 최대 요인은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부족 때문"이라며 "충분한 설명을 통한 환자의 동의 하에 진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또한 "단순한 정보 제공에 그쳐선 안 된다. 환자의 호소를 충분히 듣고, 의사는 관련 지식과 성실함을 가지고 진료에 협력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논의의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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