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기
서울지방병무청
징병전담의사
42. 응답하라 의료윤리
‘음주수술’ 논란을 되돌아보며

'보수적', '폐쇄적', '권위주의적'과 같은 표현은 흔히 의사들의 문화를 말할 때 적절한 단어가 된다. 보다 엄격하게 검증된 지식을 고도로 습득하고 훈련해야 하며 작은 판단이나 행위 하나에도 환자의 생사가 엇갈릴 수 있는 병원에서 살아온 의사들의 상황은, 전장에서 적과 대치해 싸워야 하는 군인들의 상황과도 유사하다. 다만 아군과 대치하는 대상은 적이 되어야 하는 군인들과는 달리 의사들은 건강한 삶을 위해 함께 보듬어야 하는 일반 국민들을 대하기에 그 문화는 보다 사회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의료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뜨겁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도 '~한 의사' 이야기는 가장 많이 본 뉴스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故 신해철 씨의 사건을 둘러싼 의료 현장의 문제는 지금도 끊임없이 뉴스로 공급되고 있다. 최근 '음주 수술'이 사람들의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의사들에게 이런 뉴스는 사실 그리 새롭고 충격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간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는 탓일 수도 있겠지만, 매우 특이한 누군가의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사실 대부분 의사 사회 내부에서도 한 번쯤 들어보거나, 혹은 직접 보거나 경험한 것들이 그저 최신 뉴스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사실 대다수의 의사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충분히 경험하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되풀이되고 있다. 단순히 개인이 스스로의 윤리에 의존해 올바른 판단과 행위, 그리고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억울함이 의사들 내부에서는 오히려 설득력을 얻는다. 그것을 끄집어 내어 비판하는 것에 조심스러운 것은 일종의 동정이 작용한다. 반면 과중한 업무뿐만 아니라 폭력, 성범죄와 같은 범죄에 준하는 상황에까지 쉽게 노출되고 있는 전공의들의 고통에 대해서 많은 의사들이 공감하지만 정작 근본적 해결을 위한 의지와 노력보다는 연민에 그친다. 현실적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합리화를 통해 슬그머니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문화는 다양한 문제를 떠안으면서 정작 해결하지 못하는 의사들의 고질이 되고 있다.

많은 문제를 그저 개인의 수준에서 책임지고 감당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소신과 양심에 따라 동료 의사의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과 생각을 소통할 수 있는 집단 윤리가 작동해야 한다.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판단 기준의 부재 또한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되지만,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이 지금 의사들에게 더 필요하다. 금세 정보가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세상 속에서 적당히 덮어두고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문제를 외면하는 식은 더 이상 해결책이 아니다.

그 시작을 위해 과도하게 경직돼 있고 소극적인 의료계 내부의 문화적 환경을 바꿀 필요가 있다. 많은 국민들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는 문제적 상황에 처해 있는 전공의들을 비롯한 젊은 의사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의료계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은 위에서 언급한 문화적 한계일 것이다. 물론 이를 극복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 또한 젊은 의사들에 주어진 과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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