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 "신해철 사건으로 발목 잡혀선 안돼"

단순한 체중감량 수준을 넘어 당뇨병 치료 효과로까지 각광받고 있는 비만대사수술.

전 세계적으로 비만의 해악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고도비만 환자에 대한 적극적인 수술적 치료가 강조되고 있지만 국내서는 여전히 비용수술이라는 인식탈피부터 보험적용에 이르기까지 가야 할 길이 멀다.

위소매절제술, 위우회술 등 위암수술과 술식이 거의 동일한 비만대사수술이 정작 위암수술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뭘까? 비만대사수술이 갑작스럽게 급여화 제동 위기에 놓이게 된 연유를 들여다 봤다.

비만대사수술, 고도비만 환자에게 유일한 '생명줄'
최고 몸무게 444.5kg.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으로 알려졌던 영국의 Keith Martin이 이달 초 44세 나이로 사망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하루 평균 2만kcal에 달하는 열량을 섭취했던 그는 한 때 위절제술과 식이요법으로 체중의 절반 가량을 감량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지만, 본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작년 10월 패혈성 쇼크와 탈수 증세로 입원한 뒤 폐렴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번 사망을 계기로 영국에서는 Keith와 같은 고도비만 환자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주범인 패스트푸드 등에 비만세를 적용하고, 비만대사수술을 위한 건강보험(NHS) 재정으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해 Keith의 수술을 집도했던 Kesava Mannur 교수(호머튼대학병원)는 "Keith는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음에도 폐렴에 걸려 사망하게 된 안타까운 케이스"라면서 "다년간 300~400kg이 넘는 환자들을 치료해온 경험상 이러한 환자들에게 최선의 치료는 비만대사수술"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환자들의 체질량지수(BMI)가 30~35kg/㎡를 초과하게 되면 본인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체중을 감량하기란 극히 어렵고, 필수적으로 시행돼야 하는 수술적 치료는 매우 고비용"이라고 지적하며 "정부는 건강에 해로운 패스트푸드 가격을 크게 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Keith와 같은 사례들을 점점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위밴드술, 루와이 위우회술, 위소매절제술로 대표되는 비만대사수술은 고도비만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대사질환 개선을 넘어 당뇨병 완치 가능성까지도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상황.

▲ SOS 연구: 비만대사수술의 체중감량 효과(출처: NEJM. 2007;357:741-52)

비만대사수술의 혈당조절 효과를 평가한 STAMPEDE 연구의 3년 관찰 결과(NEJM 2014;370:2002-2013)와 15년이라는 최장 추적기간을 자랑하는 SOS 연구 결과(JAMA 2014;311:2297-2304), 고위험군에 대한 당뇨병 예방 효과(Lancet Diabetes Endocrinol 2014년 11월 3일자 온라인판) 등 올해만도 수많은 데이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당뇨병학회(ADA)를 비롯 국제비만대사수술연맹(IFSO) 등 각종 가이드라인에서는 서양인을 기준으로 BMI 40㎏/㎡ 이상이거나 35~40㎏/㎡에 해당하면서 동반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들을 수술 적응증으로 권고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원(NICE)은 11월 말 발표한 최신의 비만치료가이드라인을 통해 "BMI 30~35kg/㎡라도 당뇨병을 동반한 경우라면 수술적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10년도 더 전인 2000년도부터 저소득층 고도비만 환자의 비만대사수술에 의료보험이 적용되고 있으며, 각종 수술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는 영국은 물론, 비만율이 현저히 낮은 일본에서조차 올해 3월부터 급여화가 성사됐다.

한노총 반대에 밀려 건정심 소위에서 제외

▲ 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 박성수 총무이사

이와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시행을 목전에 뒀던 비만대사수술의 급여화가 제동이 걸릴 위기에 봉착했다.

가뜩이나 비만대사수술을 지방흡입술과 진배없는 미용성형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팽배했던 사회 분위기 가운데 갑작스럽게 신해철 씨 사망사건과 관련 위밴드수술이 안전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설마했던 보험적용 문제에까지 불똥이 튀게 된 것이다.

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 박성수 총무이사(고대안암병원 위장관외과)는 "비만대사수술 급여화는 본래 보건복지부가 제시했던 중기보장성 강화계획으로 포함돼 2016년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는데,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반대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논의항목에서 빠지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25일 마지막으로 열렸던 건정심 소위 회의에서 가입자 대표인 한노총의 반대가 너무 심해 건정심 소위에서 더이상 논의하지 않기로 했고, 당초 복지부 원안보다순위가 밀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당시 한노총에서는 고도비만수술 급여화의 가이드라인과 질관리 부분에 대한 학회측 입장을 정리해달라고 요구했고, 학회는 대한외과학회통합학술대회(KOSIS) 기간 중인 29일 토론회를 열고 회원들과 정도관리 등 급여화 이후 대책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박 이사는 "비만대사수술의 보험적용 필요성과 함께 적응증, 이후 관리방안 등 세부적인 안을 놓고 학회 내부적으로 입장을 정리한 후에 조만간 다시 논의하자고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비만대사수술이 국내에서 비급여수술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수술대상을 제한할 만한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고, 환자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수술을 받을 수 있다"면서 "급여화를 통해 제도권으로 끌어들여야 근본적으로 비만대사수술의 음성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아울러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되면 신해철 사건이 잊혀질 때쯤 다시 위밴드수술이 성행하고 환자안전에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라며, "비만이 흡연 만큼이나 해롭다는 최근 논문과 같이 국내에서도 고도비만 환자들에 대한 심각성이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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