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과 잠식률 높은데도 수수방관 ... 진료 환경 변화 못 읽어 무대응

최근 마감된 2015년 전공의 모집에서 전국 83개 수련병원 기준으로 비뇨기과는 79명 정원에 28명 모집이라는 초라한 결과를 얻었다. 비뇨기과의 경쟁률은 지난 2010년 0.8대 1, 2011년 0.54대 1로, 2012년 0.47대 1로, 2013년 0.44대 1, 2014년 0.25대 1, 2015년 0.35대 1로 하락세를 거듭해 이제는 대표적인 기피과라는 이미지까지 갖게 됐다.

 

이 같은 비뇨기과 추락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전립선비대증이나 비뇨기계의 만성질환들도 증가하고 있고, 노인요양병원이 성업하는 상황에서 비뇨기과가 위축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비뇨기과 의사들의 대처가 안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로는 비뇨기과 약품의 약 60%가 다른 진료과에서 처방된다. 타과 잠식률이 높음에도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고 지금까지 왔다는 것이다.

어홍선 대한비뇨기과학회 개원발전이사는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앓는 환자가 배뇨장애를 호소하면 내과에서 약을 처방하고 있고, 전립선비대증도 내과에서 약물치료를 하는 상황"이라며 "요실금이나 과민성방광염도 다른 진료과에서 약물만 처방해 병을 키우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또 "비뇨기과 고유의 영역이 다른 과에 잠식돼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비뇨기과학회나 개원의사회가 반성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타과 잠식률이 높은 이유로 중소병원 등에 비뇨기과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중소병원에서 비뇨기과 의사를 채용하지 않고, 내과나 가정의학과 의사를 뽑아 이들이 비뇨기과 약물을 처방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비뇨기 약물 타과 처방 60%…수술 기회도 줄어들어
혼자하는 내시경 수술 늘면서 수련 중에도 배울 기회 없어

비뇨기과의 주요 질환인 전립선비대증, 방광암, 방광결석 등을 대부분 내시경으로 치료하게 되면서 이후의 파장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부분의 비뇨기과 수술을 내시경으로 하게 된 것은 좋은 방향이지만 이것이 전공의들의 비뇨기과 지원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될 것이란 예상은 하지 못했다는 것.

어 이사는 "복강경 및 내시경 수술을 하는 비뇨기과는 수술을 하는 의사의 역할을 잃어버렸다"며 "내시경 수술은 주치의 한명이 하기 때문에 전공의는 정작 일은 많이 하지만 배우는 건 없고, 서울대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 등 대부분의 대학병원은 전공의들이 수술에 손도 댈 수 없는 상황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대학에서 배운 것이 없어 개원하기 어렵고 수술 장비 등이 고가라 개원 비용도 많이 들어 비뇨기과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개원가에서는 대학교수 등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의 상황인식에 대해 섭섭함도 내비친다. 비뇨기과 분야에서 로봇수술이 확대되면서 병원 수익에 기여하게 되자 비뇨기과 의사들이 우쭐해졌고, 로봇수술을 더 많이 시행하게 됐다는 것.

▲ 올해 초 열린 비뇨기과 위기 극복 관련 국회 토론회 장면

한 개원의는 "대학에 있는 교수들은 로봇수술을 하면서 안전성에만 관심을 두고 이 때문에 개원의들이 고사하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원내 위상이 올라가면서 대학교수들이 자아도취에 빠져 비뇨기과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로봇수술 등 고가수술만 해서는 비뇨기과 자체가 생존할 수 없다고 여러 번 건의해도 듣지 않아 왔다. 물론 지금도 대학병원 교수들의 현실 인식은 떨어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대학병원 교수들의 생각은 개원의들과는 또 달랐다. 모 대학병원의 교수는 로봇수술과 개원가의 영향을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학병원에서 로봇수술을 활성화한 것이 개원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다. 로봇수술은 비보험진료다. 개원가의 주장은 객관성이 떨어지는 말"이라고 잘라 말했다.

비뇨기과 의사들이 시대의 흐름을 예민하게 읽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가 등장한지 10년이 흘렀다. 발기부전으로 병원을 찾던 환자들이 약물의 도움으로 더 이상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되게 됐다. 제약사도 이를 유도하는 쪽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 심지어 내과 등에서도 많은 사람이 발기부전 치료제를 처방받고 있음에도 비뇨기과 의사들은 무심했다.

전립선비대증도 마찬가지다. 블록버스터급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들이 출시된 지 10~15년 흐르면서 굳이 수술을 하지 않아도 전립선비대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잡혀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비뇨기과 의사들은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결국 이런 무관심과 무대응이 2015년 79명 정원에 28명 모집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다.

비뇨기과학회는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결국 전공의 축소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현재 79명의 전공의 정원을 오는 2017년 50명으로 줄이는 것을 정부와 합의했다. 전문의 수를 줄여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다.

바닥까지 떨어진 비뇨기과의 인기를 다시 끌어올릴 방법은 없을까? 비뇨기과 의사들은 정부의 관심이 우선 돼야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비뇨기과학회 이상돈 수련이사는 수가는 낮고, 진료영역도 침해당한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이를 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신경과나 가정의학회 등이 끊임없이 요구하는 항우울제 SSRI의 처방권을 정부가 정신건강의학과에만 주는 것처럼 발기부전치료제나 전립선약물 등 비뇨기과 고유의 약물에 관한 처방권이나 장기처방권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비뇨기과학회 어홍선 개원발전이사도 "최근 정부가 불안장애에 처방하는 바륨도 정신건강의학과에서만 처방할 수 있도록 했다. 비뇨기과가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거부만 하지 말고 응답을 해야 한다"며 "요역동학검사 등 비뇨기과에 꼭 필요한 검사에 대해서는 수가도 더 올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뇨기과학회는 정부에 가산금제도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가 효과에 관해 부정적인 입장이라 쉽지 않은 상황인 듯했다.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학회가 추진하는 또 다른 일은 비뇨기과를 요양병원의 필수진료과로 등록하는 것이다. 이상돈 이사는 "노인요양병원에 비뇨기질환을 앓는 환자가 70% 이상이지만 비뇨기과가 필수 진료과가 아니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앞으로 비뇨기과만의 영역을 확보하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뾰족한 돌파구가 없자 개원의들은 전립선비대증 수술을 개원가에서 할 수 있도록 모임을 만들어 교육과 연구를 시작했다. 또 협동조합이라는 색다른 대안을 만들어 움직이고 있기도 하다.

지난 11월 비뇨기과의사회는 '비뇨기과의사회협동조합 발기인 대회'를 열고 조합 설립을 선언했다. 발기인 목록에는 19명의 회원이 참여했다. 협동조합은 12월 중으로 설립등기를 마치고, 내년 1월 홈페이지를 통해 사업한다는 계획이다.

신명식 대한비뇨기과의사회장은 개원의들이 협동조합을 생각하게 된 것은 공급자와 직접적인 가격협상을 통해 유통마진을 절감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신 회장은 "점점 어려워지는데 의약품, 의료기기, 진료 소모품 등의 거품이 너무 심하다"며 "소비자로서 합리적이고 공평한 정보를 얻고 또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설립은 대한비뇨기과의사회에서 총 출자금의 30%를 부담하고 비뇨기과의사회 정회원 중 가입의사를 밝힌 조합원에게 1좌 당 출자금 5만원을 받아 이뤄질 예정이다. 운영은 홈페이지에서 입점형 쇼핑몰 방식으로 구현하고, 발주 결재 발송 등의 모든 거래가 홈페이지에서 이뤄진다.

학회와 개원가 의사들의 몸부림이 비뇨기과에 희망의 배를 다시 띄울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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