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진료행태로 수술기회 제한, 28일 관상동맥외과연구회서 지적

"2013년 한 해동안 우리나라의 경피적관상동맥중재술(PCI) 시행건수는 약 6만9000건. 이에 반해 같은 기간 행해진 관상동맥우회로술(CABG)은 약 3000건에 불과하다."

▲ 서울대병원 김기봉 교수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28일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이사장 선 경) 산하의 관상동맥외과연구회 주최로 열린 2014 Year-End Conference에서 아주의대 임상현 교수(아주대병원 흉부외과)가 공개한 수치다.

임 교수는 "보건복지부 주도로 내, 외과 관계자들이 모여 스텐트 고시안을 논의한 회의석상에서 심사평가원이 공개한 데이터"라며, "PCI는 심평원에서 청구된 시술건수만 집계한 것이고, CABG는 모든 예가 포함돼 있음에도 최소 23:1 이상의 비율을 보인다"고 말했다.

국제 평균(PCI:CABG 시행건수=약 3.7:1)과 비교했을 때 국내에서 거의 6~7배 높은 비율로 PCI가 시행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비급여 행위로 집계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30:1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재정 4000억원 중 스텐트 재료비로만 지출되는 비용이 1500억원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이 주장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이러한 불평등한 비율이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단도, 시술도 심장내과 의사가 일방적으로 결정"

이 날 모인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회원들은 Heart Team 협진이 아닌 내과의사 단독에 의해 관상동맥질환자의 치료방침이 정해지는 현 진료체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심장내과 안에서 진단을 하는 의사와 중재술을 시행하는 의사가 분리돼 있는 북미나 유럽 국가들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에서는 두 주체가 동일하다보니 PCI 건수가 많아질 수 밖에 없지 않냐는 것.

이번 고시 개정안이 그대로 발효되면 환자 불편과 위험이 가중되고 치료결정권이 저해된다는 대한심장학회의 주장에 대한 반론인 셈이다. 심장학회 측은 앞서 환자들에게 스텐트 시술과 우회술 중 어떤 시술을 받기 원하는지를 물으면 대부분 스텐트 시술을 선택한다며 그 이유가 개흉수술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 컨퍼런스에서는 향후 흉부외과의 대응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자유토론 및 패널 디스커션이 진행됐다.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이에 서울의대 김기봉 교수(서울대병원 흉부외과)는 최근 발표됐던 Syntax 연구와 Freedom 연구 결과를 들면서, "외과의와 상의 없이 PCI를 결정하는 현 시스템은 매우 부적절하다. 수술적 치료가 중재시술 대비 5년 생존율을 5% 이상 낮춰주고, 1년 이내 재시술률을 3분의 1 수준으로 줄인다는 사실을 알게 돼도 과연 환자들이 PCI를 선택하겠냐"고  반박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2013년 발표됐던 SYNTAX 연구의 5년 추적 결과(Lancet 2013;381:629-38) CABG군에서 PCI군 대비 심장사망률과 재시술률이 눈에 띄게 줄었고, 시술 후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심근경색 발생률이 유의하게 개선됐으며 뇌졸중 발생률은 시술 후 1년 이내까지는 CABG군에서 더 높지만 2~3년 이후부터는 차이가 없었다.

연구팀은 SYNTAX 스코어가 중등도 이상인 다혈관질환자에서 CABG를 표준치료로, SYNTAX 스코어가 낮은 덜 복잡한 혈관질환 또는 좌주관상동맥질환자에서는 차선으로 PCI를 고려할 수 있으며 이러한 병변을 가진 환자는 외과의와 내과의가 상의해 최적의 치료에 대한 합의점에 도달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당뇨병을 동반한 다혈관질환자에 대해 PCI와 CABG를 비교평가한 Freedom 연구(NEJM 2012;367:2375-2384)에서도 뇌졸중을 제외한 전체 사망, 심근경색 발생률이 PCI군에 비해 CABG군에서 유의하게 감소했다.

좌장을 맡은 학회 강경훈 보험위원장(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흉부외과)은 "우리나라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침습률이 가장 낮다고 평가받고 있는 off-pump CABG가 60%에 가까운 비율로 시행되고 있고(미국 평균 약 20%, 유럽 약 15%), 수술적 치료를 받는 환자들 중 상대적으로 고위험군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보다 임상 결과가 좋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한 수술 당시 초기 비용은 더 많이 들지만 재시술과 재입원, 추적관찰을 위한 혈관조영술 등의 비용과 삶의 질적인 부분까지 고려한다면 비용대비 효과 측면에서도 CABG가 PCI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연구 결과(Circulation 2014;130:1146-57, Circulation 2013;127:820-31)를 인용하면서 고비용 부담에 대한 논란도 일축했다.

수술 시 비용이 비싸고 회복기간이 길다는 심장학회 측의 주장과는 달리, PCI 시행 후 1년 이내 재시술률이 통상적으로 15%인 데 반해 CABG는 5% 이하이고, 입원기간도 7~8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번 모임을 추진한 관상동맥외과연구회 이재원 회장(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역시 "현 시스템 상에서는 진단하는 내과의사가 시술을 결정하고 수술에 대해서는 환자가 장단점을 들을 수 있는 기회조차 없다"면서 "두 가지 방법이 모두 가능한 환자들에게는 내, 외과 양측 의사들로부터 공평하게 치료의 득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선택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진은 환자 알권리, 의료진 설명· 주의의무 위한 것"

협진이 여러 가이드라인에서도 강조하는 국제적 추세인만큼 혈관조영술 결과를 보고 내, 외과의사가 환자에게 최선이 되는 방법을 논의하되 다학제팀 내에서 의견이 충돌할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환자의 선택에 맡기는 게 옳다는 게 이 날의 핵심이다.

▲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선 경 이사장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선 경 이사장(고대안암병원)은 "흉부외과 허락 없이 스텐트 시술을 못한다거나 반드시 수술해야 한다는 내용은 고시안 어디에도 없다. 대한민국의 PCI, CABG 성적은 이미 세계 최고수준이기 때문에 의료진이 장단점을 자세히 설명한 후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환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 고시안이 그대로 통과되더라도 실제 수술건수나 흉부외과 월급이 얼마나 오르겠냐"며, "밥그릇 싸움에 흉부외과 입장을 알아달라는 것 아니다. 협진은 언제라도 생길지 모르는 의료사고에 대비해 심장내과 의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호소했다.

이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환자에게 모든 치료방법에 관해 '설명'해야 하고, 발생 가능한 합병증이나 부작용에 대해 '대비'하자는 의료진의 의무다.

다만 "기존 고시안에는 약간 애매한 내용도 포함돼 있는데 그 부분을 대비하지 못했던 것은 의사들의 잘못이고, 최근 언론을 통해 잘못된 정보가 여과없이 보도되는 것도 전문가 집단으로서 입장표명을 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반성한다"며, "복지부와 심평원 주재 하에 공개토론회를 열어달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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