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官)' 주도 틀 바꾸자는데 건보공단만 '딴소리'...의료계 "전형적 물타기" 발끈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뢰로, 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2015년도 유형별 환산지수 연구' 보고서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건정심 구조개편. 보고서는 "수가를 결정하는 건정심에 의약계 당사자들이 참여,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건정심에서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등 이익단체 대표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건정심 구조개편을 둘러싼 그간의 논의 결과들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 앞서 의료계와 학계는 정부가 정책결정을 주도하는 현재의 건정심 논의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공익위원의 구성을 우선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이는 지난 4월 의정협의에도 반영된 바 있다.

이 같은 흐름속에서 가입자를 대표하는 보험자이면서, '구조개편의 메인 타깃'으로 지목된 건정심 공익위원인 건보공단이 "문제는 이익단체"라며 물줄기를 돌리고 나선 것이다.

건강보험정책 최고의결기구 위상 '흔들'

일단 건정심 구조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는 관련 당사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의·병협으로 대표되는 공급자단체, 시민사회로 대표되는 가입자단체, 그리고 정부 역시 지금의 건정심 구조로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건정심,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달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회의. 현재의 건정심은 가입자와 공급자, 공익대표가 '8:8:8' 동수로 참여하는 구조다. 

건정심은 국민건강보험법에 그 설치 근거를 두고 있는 건강보험정책 관련 최고의결기구로, 건강보험 및 건강보험료에 관련된 사실상 모든 사항을 다룬다.

매년 의료수가(환산지수)를 정하는 일이나 국민이 부담해야 할 보험료율을 정하는 일, 건강보험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보험정책의 도입여부를 정하는 것도 최종적으로 이 건정심에서 결정한다.

건정심은 위원장을 맡는 복지부 차관을 필두로, 이해당사자인 가입자와 공급자, 그리고 정부 등 공익대표가 '8:8:8' 동수로 참여하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해당사자들의 민주적 토론과 합의를 거쳐 합리적인 건강보험제도를 만들어 나가자는 취지다.

그러나 현재의 건정심이 이 같은 취지대로 운영되는지에 대해선 적지 않은 문제제기가 있어 왔다.

의료계와 학계는 지금의 건정심 구조가 지나치게 정부 측에 유리한 구조라고 비판해왔다. 가입자와 공급자 사이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중재역할을 해야할 공익위원 몫의 절반을 정부가 차지하고 있는데다, 이해당사자들과 동일하게 의결권까지 가지면서 본래의 역할과는 다르게 오히려 정책결정을 좌우하는 '키(key)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정부기관인 감사원과 국책연구기관에서조차 문제 삼을 정도.

감사원은 2004년 '국민건강보험 운영실태' 보고서를 통해 "건정심의 주요 사항이 복지부의 의향대로 결정되도록 공익대표를 임명 또는 위촉하고 있고, 심의안건 자료와 설명이 충실하지 않아 형식적인 심의·의결절차로 전락될 염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KDI 윤희숙 연구위원은 2012년 보고서를 통해 "공익대표를 건정심에 포함시키고 의결권을 부여하다 보니, 계약관계에 기초한 보험자와 공급자간 협상이 아니라 정부의 입장에 도덕적 우위를 부여해 그대로 관철시키는 구조가 됐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이익단체" 건보공단의 반격

의협과 정부는 올해 4월 있었던 의정협의를 통해 건정심 구조개선의 실마리를 열었다.

당시 양측은 '정부는 공익위원을 정부가 추천하는 인사로 구성하고 있는 현행 건정심 구성의 개선 필요성을 인정하고, 공익위원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해 구성하는 등 건정심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구조로 개선하는 방안을 공동 마련해 정부가 건보법 개정안의 입법발의를 추진키로 한다'는 내용의 협의문을 작성했다.

원격의료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가중되면서 의정협의 이행이 전면 중단되긴 했지만, 공익위원을 중심으로 건정심 구조를 개편한다는 큰 방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듯 했다.

최근 나온 건보공단의 보고서는 이 같은 흐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건보공단의 의뢰를 받아 연구를 진행한 보사연은 보고서를 통해 "건정심 위원구성이 중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의약계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정심 구조개편의 핵심은 공익위원이 아닌, 이익단체라며 의·병협 등 의약단체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

보사연은 "건정심은 수가 뿐만 아니라 상대가치, 약가, 치료재료가격, 급여여부 등 건강보험의 보장성과 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의사결정을 하는 최고의결기구이나 여기에 이익단체의 대표가 3분의 1이나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결정하는 이해상충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며 "이익단체 대표가 정책결정기구에 참여해 이익을 대변하는 잘못된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건정심의 위원 구성은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조해 중립적인 위원 즉, 공익대표들로 구성해야 한다"면서 "보장성 및 가격을 결정하는 건정심 산하의 의약품 급여평가위원회, 치료재료전문평가위원회 등의 위원구성도 이익단체를 배제하고 가입자 대표를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전형적인 물타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의협과 병협은 공동성명서를 통해 “의료를 제공하는 의사나, 제공받는 국민, 의료정책을 관장하는 정부 모두 이해당사자”라며 “건정심 위원 중 유독 보건의료전문가 단체를 대표하는 공급자위원에게만 이익단체라는 낙인을 씌워 퇴출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건정심 위원구성, 다른 나라는 어떻게?

논란에 맞춰, 1년 넘게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박인숙 의원의 '건정심 개편안'도 재조명을 받는 분위기다.

박인숙 의원이 내놓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건정심 내 정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키고, 공익위원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정협의 내용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건정심 위원을 현행 가입자와 공급자·공익대표를 '8:8:8'에서 '5:5:3' 방식으로 변경하고, 공익대표는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 추천하며, 보건복지부 차관 당연직으로 규정된 건정심 위원장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공동으로 추천한 공익 위원으로 변경하자는 게 골자다.

이는 독일의 'G-BA'를 차용한 모델. 독일의 건정심이라 할 수 있는 G-BA는 공급자와 보험자, 공익 대표가 5:5:3으로 참여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공익대표로 공급자 추천 1인·보험자추천 1인·양측이 추천하는 1인이 참여하며, 양측이 추천하는 공익대표가 위원회의 장을 맡는다.

박 의원은 이 같은 독일식 구조가 우리 건정심을 둘러싼 객관성·중립성 논란을 해소하는 데도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사실상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건정심 운영권을 가입자와 공급자 등 이해당사자에 돌려주자는 취지다.

박인숙 의원은 "외국 사례의 경우 건정심에서 정부 및 가입자와 공급자 간의 원활한 협의를 위해 위원 수를 동수로 두고 있으며, 공익위원의 경우에도 의결권을 부여하지 않거나 각각 공급자와 가입자의 추천을 통해 임명하는 등의 구조를 갖고 있다"면서 "실질적 중재와 조정이 가능토록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위원 구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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