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학회들이 공식적으로 우울증과 심혈관질환, 당뇨병 등 신체질환 간 연관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임상현장에서는 이런 내용들이 크게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는 국내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EPA·EASD·ESC는 성명서에서 “중증 정신건강질환과 심혈관질환·당뇨병 간 위험도가 부각되고 있는 것에 비해 정신건강질환 환자들이 의료기관에서 심혈관질환·당뇨병 위험도를 평가받는 일은 드물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도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높다는 평이다.

대한우울조울병학회 민경준 이사장(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은 “OECD 국가들에서 정신건강질환으로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비율이 평균 30% 초반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절반인 15%다. 실질적으로 관리받고 있는 환자들이 많지 않다”며 현실에 대해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들이 비교적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만성질환의 관리 측면에서 우울증 동반 환자를 선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심장협회(AHA)는 올해 초 ‘급성관상동맥증후군(ACS) 환자의 예후악화 위험요소로서의 우울증: 통합적 근거검토 및 권고안’ 성명서를 통해 유럽의 성명서와 같은 내용에 무게를 두며 1차 의료기관 의사들이 우울증에 관심을 가져야하고 나아가서는 치료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역으로 정신건강 질환이 있는 환자들에 대해 △이전 심혈관질환, 당뇨병 및 다른 관련질환의 병력 △심혈관질환, 당뇨병, 관련 질환에의 가족력 △흡연 △BMI 및 허리둘래 △공복혈당 △공복지질, 총콜레스테롤, 중성지방, LDL-C, HDL-C △혈압, 심박, 심장과 폐에의 청진검사 △심전도 등을 평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울증 관리의 시작, 1차 의료기관에 달렸다

호주국립심장재단은 한 발 더 나아가 만성질환 환자의 우울증 관리 혜택에 무게를 두며 1차 의료기관에서 우울증 선별검사를 시행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재단은 “관상동맥심질환 환자에서 우울증은 높은 비율로 동반되고, 우울증 관리를 통해 삶의 질 개선, 심혈관질환 치료약물의 순응도 개선, 나아가서 질환의 예후향상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1차 의료기관에서 △심질환 환자가 최초로 외래에 방문했을 때 △최초 외래 후 다음 외래 일정을 예약할 때 △심장관련 사건 2~3개월 후 △정기적으로는 1년 1회 선별검사를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민 이사장도 “우울증이 동반된 신체질환 환자의 경우 우울증이 관리되지 않으면 신체질환 관리 역시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당장 우울증으로 인해 병원방문, 약물복용 등 치료전략의 순응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

이에 호주국립심장재단에서는 1차 의료기관에서 PHQ-2와 PHQ-9를 활용한 선별검사를 권고했다. 특히 PHQ-2의 경우 우울감, 흥미상실을 확인하는 간단한 문항으로 구성돼 있어 1차 의료기관에서 활용하기에 어렵지 않다는 평이다.

한편 1차 의료기관에서의 적극적인 관리에 대해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AHA는 ACS 환자에 국한된 내용이지만, 우울증의 선별검사도구 및 절차, 선별검사의 비용대비 효과, ACS 후 우울증 치료의 안전성과 효과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아직 ACS 환자에서의 우울증 치료를 통한 사망률 및 경색 재발률에 대한 유의한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는 것.

민 이사장은 1차 의료기관에서 정신건강질환을 관리할 경우 통합적인 관리의 필요성이 간과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국내 의료환경을 고려하면 짧은 시간에 약물치료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의 발생 원인이 다양한만큼 사회정신적인 측면의 치료가 함께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PA·EASD·ESC도 성명서에서 1차 의료기관 의사들과 정신건강질환 전문의들이 함께 우울증을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내 자살예방 및 심혈관질환·당뇨병 등 신체질환의 적정 관리를 위해 정신건강질환 환자들의 조기 진단과 집중적인 협진전략의 핵심으로 1차 의료기관이 나설 시기다. 여기에 더해 우울증과 함께 중증 정신건강질환으로 꼽히고 있는 양극성장애, 사회적으로 노인인구 증가로 폭발적인 유병률 증가가 전망되는 치매도 자살, 신체질환과의 연관성을 보고한 근거들이 축적되고 있어 이에 대한 관리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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