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 몰린 제약계 정면승부 택했다"…'계란으로 바위 치기' 옛말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 최근 상대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제약업계의 대정부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에만 정제 출시에 따른 움카민 시럽제의 급여 제한 소송, 조건부 급여의 조건 시기를 맞추지 못한 스티렌의 급여제한 및 환수 소송, 사용량 약가연동제로 인한 스토가 소송 등이 제기됐다. 정부는 굳이 소송으로 이어질 것이 아닌데 법정다툼까지 간다며 적잖이 당황하는 형국이다.

특히 제약업계의 소송이 여러 차례 제약사 측 승소로 귀결되면서 "제약산업에 대한 무리한 정책 전개가 정부에 부메랑으로 돌아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많은 시간과 비용, 정부를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음에도 이처럼 소송이 이어지는 이유가 무엇이며, 이에 대한 업계와 정부측의 의견은 어떤지 모아봤다.

 

"정부 협상 가능성 기대 못해…법에 묻자"

한 로펌 변호사는 최근 이어지는 제약업계의 소송 행보에 대해 "약가 일괄인하가 되고 산업환경이 많이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약가인하 외에 다른 이유로 추가 인하가 계속되면서 설 자리가 없어지다 보니 예민해진 것 같다"고 풀이했다.

또 제약사 자체 법무팀이 예전에 비해 활성화됐고, 소송을 통해 경험도 쌓았기 때문에 과거에는 일부 불합리하다 싶은 일은 그냥 묻어뒀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제약사 대표들의 인식이 갑자기 바뀌진 않았지만 예전에는 제네릭만 생산해도 회사 운영에 어려움이 없었다면, 현재는 기업환경 자체가 많이 어려워졌고 절박한 분위기가 됐다는 것.

한 제약사 관련 업무 담당자는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제약산업이기에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큰 부담이지만, 그럼에도 불합리한 점들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받을 수 있는 다른 절차가 제대로 가동하지 않기에 객관적 제3자인 법원의 판단을 받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최근 소송에서 제약사가 승소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은 그만큼 과거 불합리한 정부의 결정이 많았다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불어 제약사가 소송을 통해 시비를 가리면, 제도 폐지나 개정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법령에 대한 공무원의 자의적인 해석은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협상을 통해 해결하지 않고 소송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어차피 협상과정은 동등한 관계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며 "판결문을 통해 시시비비가 정확히 가려지기 전에는 공무원이 일선에서 협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지 자체가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협상으로 해결하지 않고 소송을 걸어 당혹스럽다는 것은 정부의 일방적인 얘기"라며 "제도의 목적과 운영 부분은 회사가 협상할 길이 없고, 제도에 대한 이해만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협상 방안을 정부에서 제안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근 약가소송의 경우 소송 전 정부와 대화를 시도했으나 제도의 대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과 제도를 개선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역부족이라는 입장만 내세웠기 때문에 제도 개선을 기다리다 제도가 적용되고 나면 나중에 손쓸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며, 이를 방지하고자 필요한 시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고 소송 제기 전 정부의 적극적인 대안이나 개선에 대한 방향성은 없었다고 질타했다.

제약사 소송 행보에 정부 당혹

반면 정부 측 관계자는 협상을 통해 해결하지 않고 소송을 제기하는 제약사의 행보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이선영 과장은 "어느 때보다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제도개선을 하려 하는데 왜 소송까지 이어지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고시가 문제면 고시 개정 여부나 개선사항에 대해 충분히 협의할 수 있는 부분도 소송으로 가면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굳이 소송을 하면서 변호사들 좋은 일만 시킬 것은 없지 않나.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소송 자체를 나쁘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하나의 구제절차로 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행정부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사법부의 구제절차로 가는 것이기에 아쉽다고 전했다.

또한 분명 안타까운 사연으로 생각되는 건이 있지만 어떤 건은 왜 굳이 사법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지 이해 안 되는 건도 있으며, 소송으로 가기보다 그 전에 서로 얘기가 잘 이뤄지고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이 진행되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발적인 소송에 따른 업무부담으로 일이 지연되는 점은 어려움으로 토로하며 "일단 지더라도 해보자면서 과도하게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 밖에도 복지부는 최근 진해거담제 움카민 시럽을 판매하는 9개의 제약사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서도 "법적대응에 대한 말 한마디 없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서운함을 드러낸 바 있다.

"소송 이겨도 가시방석"

그렇다면 이 같은 갈등을 해소할 방안은 무엇일까. 한 로펌 변호사는 "약가인하 제도의 경우 본질과 다르게 운영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정책 당국이 추진하는 것이 현실이니 정부는 인식을 제고하고 산업계의 충격을 최소화해 선순환적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제약사가 리스크 큰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정부의 무리한 정책에 손실이 막대하기 때문"이라며 "법원 판결이 제약사 측으로 기우는 것은 규제가 과하다는 반증인데, 이 부분을 정부가 인지해 정책 개선에 나섰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송으로 정부와 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제도의 취지와 운영방식, 제도 간의 중복 적용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요구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의견 표현 방법의 하나"라며 "긴밀한 이해와 합리적인 제도를 구축하기 위해 이해관계자들끼리의 생산적인 의견 조율 통로가 필요하다. 또 소송 결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도 있는 제도 검토와 의견 통로 방식에 대해 모색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승소해도 가시방석에 앉아야 하는 제약사의 불안도 없어야 한다는 의견 또한 제기됐다. 소송 이후 이뤄지는 약가 협상은 물론, 특별한 원인 없이 이뤄지는 감사나 암묵적인 압박이 부담이라는 것.

업계 관계자는 "소송을 하면 기본적으로 대관업무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 제약산업부문은 특히 약가부분에서 특례를 적용받거나 협상을 하거나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묵시적으로 불이익을 입지 않을까, 지원금을 받는 데 있어서도 불이익을 받거나 후순위로 밀리지 않을까 불안감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실제 불이익 사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정부 혜택에서 배제된다거나 감점사유로 작용할 수 있고, 정부 허가가 필요한 사항에 대한 처리기간이 길어진다거나 불허되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소송이 계속 이어지는 이유로는 "회사의 생존과 연결돼 있으며, 한 번의 승소가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동일한 사안에 대한 피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한 모 제약사는 재판에 승소해 소송비용을 정부 측이 부담하게 됐지만, 자진해서 각자 부담키로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에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소송은 소송이고 협상은 협상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소송 후 특정 업체에 대한 불이익은 시대에 안 맞는 이야기"라며 "있을 수도 없고 법률적으로 다툴 수 있는 권리도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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