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내 주사로 일부서 시도, 유효성·안전성 검증 안돼

 

흔히 '보톡스'라고 불리우는 '보툴리눔 독소(botulinum toxin)' 시술법은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C. botulinum)이란 혐기성 박테리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A부터 G까지 총 7종이 있으며 이 중 A형과 B형이 정제돼 의학적으로 사용된다.

198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사시나 통제할 수 없는 눈꺼풀 경련에 대한 치료제로 최초 승인을 받은 이래 경부근긴장이상(2000년), 미간주름 적응증(2002년), 다한증(2004년), 만성편두통(2010년)과 지난해 항콜린제에 반응하지 않는 과민성 방광의 치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적응증을 획득했다.

그런데 최근 한 유명연예인의 사망과 관련해 송파구 S병원에 대한 의료사고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가 생전에 받았다는 비만치료에 대해서도 덩달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해당 병원은 고도비만 환자에 대한 위밴드수술이나 위축소수술 등 외과적 수술 외에도 내시경을 통한 위장내 보톡스 주입으로 체중감량이 가능하다고 홍보해 왔는데, 일부 개원가들을 중심으로 이 같이 보툴리눔 독소를 이용한 비만치료가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툴리눔 독소가 과연 비만 환자에까지 치료 범위를 확대할 수 있을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외 사례와 전문가들의 견해를 살펴봤다.

 

보톨리눔 독소, 해외서 일부 체중감소 혜택 입증

보톨리눔 독소를 이용한 비만치료가 근거가 전혀없는 얘기는 아니다.

비록 피험자수가 많진 않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외국에서 보고된 연구논문은 20~30여 건에 달하고 노르웨이 등 일부 국가에서는 현재도 연구가 진행 중이다.

보툴리눔 독소가 평활근과 수의근 모두에서 강력하게 근육수축을 억제하는 작용을 나타내기 때문에 위 근육에 주사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위장 근육이 덜 움직여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 포만감을 느끼게 돼 음식물 섭취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게 비만치료 효과를 지지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원리다.

이러한 가능성이 처음 제기된 것은 2000년도 초반으로, 이탈리아 Gui D. 교수팀(가톨릭의대)이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동물실험을 시행했다(Aliment Pharmacol Ther. 2000;14:829-34). 연구팀은 무작위 배정을 통해 실험군을 총 세 그룹으로 나눈 뒤 각 군에서 위 전정부에 보툴리눔 독소 A(n=14) 또는 생리식염수(n=14)를 주사하거나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은 채 총 10주동안 섭취량과 체중을 측정했다.

그 결과 보톨리눔 독소를 주사받은 그룹에서 체중과 섭취량이 감소했는데, 연구팀은 위 배출을 느리게 함으로써 조기 포만감이 유도된 것으로 보고 "병적 비만이 있는 사람에서도 내시경을 통한 보톨리눔 독소 주사가 치료혜택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냈다.

임상시험으로는 당뇨병 합병증으로 위마비가 발생한 환자(diabetic gastroparesis)에서 유문저항성을 약화시켜 위 배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치료 목적으로 시행된 것이 시초인데(Gastrointest Endosc. 2002;55:920-3), 이후 2003년부터 독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체중감량 목적의 보툴리눔 독소 주사가 시도되기 시작했다.

밀라노의대 Topazian M. 교수팀(산시로임상연구소)은 비만 환자 24명(평균체중 116.1±4.89kg, 평균 BMI 43.6±1.09kg/㎡)에게 내시경으로 보툴리눔 독소 A  200IU을 주사했을 때 음식 섭취량과 체중이 위약군 대비 유의하게 감소했다고 발표했다(Int J Obes (Lond). 2007;31:707-12).   

아시아권에서는 중국 육국병원의 Li L. 박사팀(간경화치료센터)이 비만 환자 20명(BMI>28kg/㎡)에게 보톨리눔 독소 A를 200IU 또는 300IU을 주사하고 추적한 결과, 두 그룹 모두에서 체중, BMI, TG 수치가 의미있게 감소했고, 심각한 합병증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Hepatogastroenterology 2012;59:2003-7).

또한 위장내 보톨리눔 독소 A 주입이 위 배출시간을 지연시킴으로써 체중과 BMI를 감소시킬 뿐 아니라, 식욕호르몬으로 알려진 그렐린(ghrelin) 수치에도 영향을 미쳐 식욕감소로 인한 부수적 효과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국내에서는 데이터가 전무한 상황인데 비에비스 나무병원 홍성수 부원장이 지난 4월 대한비만학회 제40차 춘계학술대회에서 '위장내 보톡스 주사를 통한 체중감량 효과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것이 유일하다.

홍 원장은 BMI 25kg/㎡ 이상인 비만 환자 6명을 대상으로 위장 내 보톨리눔 독소 A를 주사한 결과, 1개월 후 환자들의 평균 체중이 3.7kg 감량됐고 위 내용물의 배출시간이 길어졌다는 보고로 우수연구상(Research Excellence Award)을 수상했다.

홍 원장은 "스스로의 의지로 체중감량이 어려운 비만 환자들에게는 위내 보톨리눔 독소 시술이 음식물을 적게 섭취하는 습관을 유도함으로써 건강하게 체중을 감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외과적 수술에 비해 비침습적이고 전신마취 없이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또한 안전성에 대해서는 "시술 후 일시적으로 복부 불편감이나 설사 증상이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 일주일 이내에 좋아진다"며 "시술부위가 상부식도 괄약근에 국한되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치명적인 사고 위험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2~3개월 후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에 재시술을 받아야 할 수 있다는 점은 단점이지만 가역성 측면에서 봤을 땐 그만큼 안전하다고도 볼 수 있다는 것.

정식으로 승인을 받진 않았지만 외국에서도 지금까지 사망이나 중증 이상반응이 발견됐던 사례는 없었던 만큼 일부 시술을 원하는 환자들에 한해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인 근거 마련돼야…유효성·안전성 여전히 '논란'

그러나 반대측 주장도 만만치는 않다.

보톨리눔 독소를 위내 주사해도 체중감량 효과가 전혀 없다는 주장도 있고, 아직까지는 일부에서 소수에 대한 사례보고가 주를 이루는 만큼 보다 많은 피험자군을 대상으로 장기간 추적결과가 필요하다는 게 학계의 전반적인 입장이다.

호주 Mittermair R. 교수팀(인스브루크의과대학)은 BMI 30~35kg/㎡에 해당하는 비만 여성 10명을 보톨리눔 독소 A군과 생리식염수군으로 나눠 위 전정부와 체부에 주사한 후 6개월 동안 체중과 포만감을 기록하도록 했다(Obes Surg. 2007;17:732-6).

그 결과 두 군 모두 유의한 체중감량을 보이지 않았고(P>0.05), 보톨리눔 독소 A군 가운데 1명, 생리식염수군에 포함된 2명이 조기 포만감을 보고했으며 위내 주사와 관련된 이상반응은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비만치료 목적의 위내 보툴리눔 독소 A 주사가 체중을 줄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가장 최근에 나온 데이터는 메이요클리닉의 Topazian M.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다(Clin Gastroenterol Hepatol. 2013;11:145-50.e1).   

비만 환자 60명을 대상으로 했고, 이중맹검 무작위 위약대조 방식으로 24주동안 추적 관찰을 진행해 기존 연구들에 비해 비교적 질적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연구팀은 피험자들을 보툴리눔 독소 A 또는 생리식염수군으로 나누고 보툴리눔 독소 A군에서는 투여용량을 100U, 300U, 500U의 3가지로 나눠 연구를 진행했다. 신티그램촬영법(scintigraphy)을 통해 위 배출시간을 측정했고, 체중, 포만감, 섭취량, 위장관계 증상과 함께 평가척도를 이용해 섭식행동의 심리학적 측면도 평가했다.

주사 2주 후 위 배출에 대한 평균 반감기를 측정한 결과 생리식염수군에서 0.8분 증가했고, 보툴리눔 독소 A군의 경우 100U일 때 14분, 300U일 때 24분, 500U일 때 14분 증가해 배출속도를 지연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평균 체중은 16주 후 생리식염수군에서 2.2㎏, 보툴리눔 독소 A군에서 각각 0.2㎏, 2.3㎏, 3.0kg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차이가 없었고, 포만감이나 섭취량, 위장관증상 및 심리행동도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미국소화기학회(AGA)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위내 보툴리눔 독소 A를 300U 주사하면 위 배출속도를 지연시킬 수 있지만 포만감이나 섭식행동, 체중감소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안전성에 대한 의혹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인데, 주사 부위가 다르긴 하지만 지난 2007년 미국에서 뇌성마비에 따른 근육경련을 완화할 목적으로 보톡스를 주입받았던 7세 소녀가 발작 및 연하곤란 증상을 호소하다 폐렴으로 사망해 소송까지 번졌던 사태는 전 세계적으로 보툴리눔 독소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2008년 미국 FDA는 보툴리눔 독소가 주사 부위가 아닌 체내 다른 부위에도 퍼져 호흡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심할 경우 목숨을 잃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대한비만학회 오상우 정책위원회 이사(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는 "보툴리눔 독소를 비만치료에 이용한다는 시도 자체가 재미있는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학술대회를 통해 소개됐던 적은 있지만 학회에서 인정하는 치료법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오 이사는 "국내 일부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식약처에서 공식적으로 승인된 치료법이 아니기 때문에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대한비만학회 가이드라인에서 권고하는 공인된 치료법으로 먼저 비만치료가 시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