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사 대리수술 등 불법행위 난무...공룡화된 성형산업 환자 안전 '위협'

10월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장.

성형외과 의사들이 국정감사 증언대에 섰다.이들은 성형수술 대중광고를 할 수 없도록, 또 환자들에게 명확하게 신분을 확인시켜 줄 수 있도록 자신들을 규제해 달라고 했다.

이는 성형산업의 폐해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도한, 그리고 괴물처럼 자라버린 성형산업을 더이상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달은 의사들의 절규였다.

이들의 손 끝이 가르킨 곳은 서울 강남. 의료한류의 메카인 그곳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공룡화된 성형산업…위협받는 환자 안전

강남은 뉴욕타임즈에서도 소개할 만큼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성형의 랜드마크다. 2014년 현재 1500여곳의 성형외과가 성업 중이며, 연간 수만건의 성형수술이 이뤄지고 있다.

비급여 의료행위이다보니 정확한 통계를 찾기 어렵지만, 지난해 성형수술을 위해 국내 의료기관을 찾은 외국인 환자만 모두 2만여 명, 이들 중 상당수가 서울 강남권에서 수술을 받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이 국내에서 지불한 성형수술비용은 모두 829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급속한 성장의 이면에는, 우리가 미쳐 헤아리지 못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환자가 몰려들고 의료기관 규모가 대형화되면서 성형의 산업화와 공장화가 진행된 탓이다.

의사들의 증언에 따르자면 마치 과거 생산직 노동자처럼 수십여명의 의사들에 부위별 수술시간과 일일 수술건수 할당을 정해주는 병원이 있는가 하면, 더 많은 환자를 받기 위해 수술실을 나눠쓰거나 아예 진료실에서 수술하는 사례도 있다.

'유명세'를 이용해 환자를 모은 뒤 상담은 스타의사와 하고, 실제 수술은 '얼굴 없는' 다른 의사가 하는 유령의사 대리수술도 만연해있다. 환자를 속이는 위험천만한 곡예를 위해서는 불필요한 전신마취수술이 필수적으로 따라붙는다.

의료광고 규제완화…성형산업화의 '시작'

▲거리에 내걸린 성형의료기관 광고물(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수술 전후 사진은 학술용으로, 의사들끼리 모여 수술방법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여기에 포토샵 처리를 해서 광고를 내는 식이다. 문제를 제기하면 그것이 환자를 현혹하는 광고인지 아닌지를 법원으로가서 판단을 받아보라고 한다. 대책이 없는 것이다."(10월 20일, 국정감사 증인신문, 성형외과의사회 김선웅 법제이사)

성형외과 의사들은 성형의료 왜곡현상 시작을, 의료광고 규제완화 조치가 이뤄진 2009년 쯤으로 보고 있다. 당시 정부는 의료관광 활성화라는 목표 아래 외국인 환자 유치를 적극 추진했고, 그에 발 맞춰 의료광고·외국인 환자 유치와 관련된 각종 규제완화 조치가 이뤄졌다.

성형광고는 의료기관간 경쟁이 과열되는 시장현상과 맞물려,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실제 인터넷 매체와 대중교통시설 광고가 추가로 허용된 2012년 이후, 성형광고는 전년도 600여건에서 다음해 3248건으로 크게 늘었다. 현재에는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시설 광고의 상당수를 성형광고가 잠식하고 있다.

환자들의 관심과 이용도가 높은 온라인 카페와 블로그 등의 후기성 광고, 인터넷 검색어 광고는 아예 광고 사전심의 대상도 아니다. 소비자 주목도가 높은 비포&애프터 광고 또한 마땅한 제재방법이 없다.

전문가들은 성형광고의 남발이 무분별한 성형수술, 성형산업화로, 또 성형사고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윤인순 의원은 "무문별한 성형광고가 실제수술로, 성형산업의 비대화로 이어지고 있다. 현행의 광고 심의로는 이 비정상적인 광풍을 제어할 수 없다. 성형의 직접적인 대중광고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령의사 대리수술 만연…도 넘은 비윤리

▲대한성형외과의사회 김선웅 법제이사와 박영진 기획이사(사진 오른쪽부터) 성형산업의 폐해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광고를 통해 '스타 의사'를 만든 뒤, 막상 해당 의사를 찾아몰려오는 환자를 모두 소화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결국 유령의사 대리수술을 할 수 밖에 없다. 초기에는 강남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하다가 별 문제가 없으니 중소병원쪽으로도 넘어오는 추세다. 현재 대략 200~300명의 유령의사들이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국감 증인신문, 성형외과의사회 박영진 기획이사/김선웅 법제이사).

광고를 통해 모인 환자를 수술하는 과정에서는, 이른바 유령의사 대리수술이라는 또 다른 위법행위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 의사들의 증언이다.

환자와 상담을 할 때는 광고를 통해 유명해진 이른바 스타의사가 나서 자신이 집도할 것처럼 이야기하고는, 실제 환자가 수술실로 들어가 마취상태에 들어간 이후에는 병원에 고용된 또 다른 의사, 이른바 유령의사가 수술을 진행한다는 얘기다.

유령의사 대리수술의 가장 큰 문제는, 환자와의 라뽀를 무시한 기망행위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김선웅 법제이사는 "환자가 집도의사를 선택한다는 것은, 집도의사에게 자신의 신체를 만질 권리를 다 위임하는 것"이라며 "미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환자가 허락하지 않은 경우에는 면허자가 의료행위를 한 것이라도, 의료행위가 아니라 폭행·상해·살인행위로 봐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리수술시에는 의료의 질은 물론,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 발생시 책임소재를 따지기도 힘들다.

의사회는 병원들이 유령의사를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를 값싼 인건비에서 찾고 있다. 유령의사의 대부분은 성형외과적 기술을 배우려는 비전문의일 것이며, 일부 병원들이 성형수술비용을 할인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유령의사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유령의사들의 존재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의무기록이나 수술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의료사고 발생시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분쟁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또한 환자를 속이려다보니, 향정약을 남용하는 등 위험한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김선웅 이사는 국감 증언대에서 "(프로포폴을 많이 쓰는 이유는) 환자를 속이기 위한 것이다. 유령수술을 하다 환자가 중간에 잠에서 깨서 고함을 치고 난동을 부리는 일이 꽤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재워버리는 것"이라고 폭로했다.

‘성형강국’ 부끄러운 민낯…돌이킬 방법은

"과다광고에 향정약 남용…이런 식이라면 성형외과가 조만간 붕괴할 것 같다. 성형이 국제적으로 유망하다고 했는데, 이런 식이라면 누가 우리나라에서 수술을 받겠나. 통제할 방법은 없는건가."(국감 증인신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용익 의원)

상황이 이런데도, 성형수술 자체가 '치외 법권'인 비급여 진료인데다 위법행위들이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어 단속이 쉽지 않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9월말부터 10월초까지 강남구와 서초구 소재 성형의료기관 18곳에 대해 환자에 대한 사전정보제공·진료기록부 관리실태·의약품 관리실태에 관한 조사를 벌였으나, 실적은 미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성형외과의사회 또한 대대적인 자정활동을 벌였지만, 이 또한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다. 비전문의들의 성형시장 진출이 활발해져, 의사회의 통제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실제 성형외과의사회에 따르면 강남 성형외과 1500여개 가운데, 성형외과 전문의가 대표로 있는 의료기관은 400여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때문에 의사회는 성형산업의 왜곡을 막고, 환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형과 관련된 각종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첫째는, 성형광고의 규제다. 박영진 성형외과의사회 기획이사는 "무분별한 광고는 국민 건강을 좀 먹는 독소같은 존재"라면서 "비급여 의료에 대해서는 의료법 내에서 특별한 규제가 없는 만큼, 룰을 만든다는 차원에서 허락된 광고 이외에는 모두 할 수 없도록 하는 '포지티브' 형태의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둘째는 의사신분 실명제의 실시다. 박 이사는 "대리수술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의료법 내에 시술 또는 수술을 하는 전문의의 자격증 유무, 자격증의 종류를 명시해 동의를 받는 강제조항을 넣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라며 "덧붙여 대리수술, 사무장병원 포상금제 등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외국인환자에 대해서는 미용성형 의료비 부가세 환급정책을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불법브로커에 의한 시장교란을 막기 위한 장치다.

국회, 성형산업 폐해 심각성 인식…해결책 모색 주력

이번 국정감사 증언을 계기로 국회에서도 성형산업의 폐해와 그 해결책 모색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성형광고 규제와 관련해서는 남윤인순 의원이 힘을 쏟고있는 상황. 남윤인순 의원은 지난 4월 학술지를 제외한 대중매체에 성형관련 의료광고 노출을 금지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남윤인순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 증인신문을 계기로 성형산업의 폐해에 대한 국회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광고규제 개정안과 관련해 추가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여론을 환기, 법 개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유령의사 대리수술 논란 등에 대해서도 대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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