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 도입 불 지피는데 한쪽선 리베이트 '찬물'

 

한국제약협회가 윤리헌장을 선포한 지 10월 30일자로 100일이 지났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이경호 제약협회장의 발언처럼 다수의 국내 제약사들은 윤리경영 참여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CP(Compliance Program, 공정경쟁규약) 시행에 나섰고 업계에는 리베이트 관행이 근절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일각에서 리베이트 이슈가 불거지며 결국 변하는 건 없지 않냐는 따가운 눈초리와 탄식이 이어졌다. 그러자 이 회장은 지난달 27일 "여러 상황에서 돌발적인 이슈들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적어도 전체의 분위기는 어떻게든 윤리경영으로 가고자 하는 상황"이라며 윤리경영 정착에 몰두하는 업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윤리헌장 선포 후 지난 100일 동안 리베이트를 근절시키고 CP를 정착시키기 위한 제약업계의 노력은 어떠했으며, 남은 숙제와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50여 곳 CP 가동…현장선 인식 부족

회원사들의 윤리경영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제약협회가 집계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약 50곳에 달하는 제약사들이 윤리경영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위제약사뿐만 아니라 중견제약사 등도 합심해 CP 전담부서를 가동하거나 감사실, 법률팀 등에 자율준수관리자를 두고 자체 정화에 나선 것. 이들 제약사는 CP 선포식을 열어 대내외적으로 윤리경영 시행을 알리고 임직원 교육을 실시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 같은 열기는 제약협회가 지난달 23일부터 24일까지 경기도 라비돌리조트에서 자율준수관리자 및 실무자를 대상으로 개최한 '제약산업 윤리경영 워크숍'에서도 나타났다. 워크숍에는 CP 운영팀, 감사팀, 영업기획팀 등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으며, CP 현황과 사례연구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이들은 요양기관 제품설명회 식사장소의 요건, 의사의 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 답례비를 지급하는 시장조사 등을 주제로 조별토의를 진행했다.

또 자율준수관리자가 영업사원에게 어떤 방식으로 CP 규정을 전달하고 응대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일부에선 자율준수관리자와 영업 현장 간 CP 규정에 온도차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CP 관련 부서에서 윤리경영에 저촉될 우려가 있는 직원을 징계했더니 현장을 모른다며 불만이 터져나오는 등 아직까지 영업 현장에서는 CP 규정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것. 이에 본사 CEO 및 임원뿐만 아니라, 현장의 모든 직원들의 윤리경영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심어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자율준수관리자의 CP 운영 방식에 대한 조언도 있었다. 조용훈 김&장 변호사는 "자율준수관리자가 회사의 윤리경영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지 고민이 많을 텐데, 의사 결정권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검토자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례를 리뷰하고 검토하는 사람으로서 리스크를 측정·판단하고, 현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부서와의 관계에서도 역할을 명확히 하며 위상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

아울러 법원에서 나온 구체적인 판단 기준에 맞춰 생각하는 연습을 하고, 법원이 결정하는 기준에 대한 코드를 파악하는 등 사례를 깊이 있게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크숍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내부에서 응대할 때 애매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이들에 대한 내용을 공유한 만큼 논리에 힘을 실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기업윤리 표준 내규를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이 있었는데,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이번 워크숍에서 윤리경영이 제약산업계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전했다.

업계 일각 리베이트 여전

이러한 노력에도 최근 불거진 일부 리베이트 사건에 업계 관계자는 "CP를 해보겠다는 제약사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아쉽다"고 털어놨다. 리베이트 투아웃제가 시행되고 회사 차원에서 윤리경영을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 한창인데 일부에서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

또 그동안 관행적인 리베이트가 지속됐던 만큼 제약협회가 윤리헌장을 선포하고 회사가 CP를 시행한다고 바로 바뀌기는 쉽지 않다는 주장도 있었다. 산업계가 정화에 나서려 해도 일부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는 한 제약산업 리베이트에 대한 인식 변화는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자율준수관리자를 두거나 전담부서를 구성할 여력이 없는 소형제약사는 CP 시행에 나서기가 버거우며, 오히려 당장 거래처를 놓치지 않기 위해 혹은 다른 제약사들이 하지 않는 틈을 타서 리베이트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도 나왔다.

소위 '빨대'라 불리는,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일부 의사들이 있어 제약사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리베이트 경쟁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윤리경영' 전 세계 화두…국회도 관심

한편 제약산업 윤리경영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큰 화두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11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에서는 제약분야 윤리환경 개선을 위한 자율규약과 실행계획이 제출되고, 전 회원국에 대한 윤리경영 강화를 촉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에서도 리베이트 근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김기선 의원(새누리당)은 지난달 16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에서 "의약품 실거래가상환제 도입 뒤 15년간 요양기관과 제약사 간의 불공정거래가 계속되고 있다"며 "공단에서는 리베이트 관련 소송 준비를 하고, 관련 입법을 위한 자료를 의원실에 제출하라"고 주문했다.

또 "미국에서는 법무부와 건보당국에서 리베이트 소송을 진행해 2조 6000억원의 보상금을 받아낸 사례가 있다"며 "공단에서는 의약품 선택권도 없는 일반 소비자에게 리베이트 비용이 전가돼 피해를 보고 있는 부분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양승조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리베이트 적발 시 수수한 의사뿐만 아니라 해당 의사가 몸담고 있는 의료기관까지 함께 처벌토록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최근 국회에 제출했다.

▲ 제약협회 이경호 회장

양 의원은 "약사와 제약사 모두를 처벌하는 약사법과 달리 현행 의료법은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사에 대해서만 자격정지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며 "부당한 경제적 이익 등을 제공받은 행위자인 의사를 벌하는 것 외에 소속된 기관 또는 개인도 함께 처벌함으로써 올바른 의약품 유통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호 제약협회장은 "윤리경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고 기업의 세계 경쟁력을 담보할 필수요소이자 글로벌 트렌드"라며 "한순간에 이뤄질 수 없고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앞으로 어떤 희생과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불법 리베이트 근절과 윤리경영 풍토가 정착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협회는 윤리강령과 표준내규의 구체적인 실행을 위해 윤리경영 진단 지표 개발, 윤리인증제도 도입 등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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