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갑상선암 상관관계 맞지만 원전 책임 여부는 따져봐야

"지역주민 갑상선암 발병 원자력발전소가 배상하라"

원자력발전소 근처에 사는 주민에게 발병한 갑상선암에 대해 원전 측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첫 판결이 최근 나왔다.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기장군 고리원전 인근 주민인 박 모씨(48세, 여성)가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갑상선암과 방사능 노출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논문 등에 미루어볼 때 한수원의 책임이 일부 인정된다"며 "박씨에게 위자료 1500만 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원전 6기가 있는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으로부터 7.6㎞ 가량 떨어진 곳에 20년 가량 살아온 박 씨 가족이 갑상선암, 직장암, 위암, 자폐증 등 온 가족에 걸쳐 발생한 여러 질병에 대해 고리원전에서 발생하는 방사선 때문이라며 지난 2012년 7월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

이에 재판부는 2011년 4월에 서울대 의학연구원 원자력영향·역학연구소가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했던 보고서를 근거로 들어 "갑상선암의 경우 원전 주변의 발병률이 높다"고 결론을 지었다. 또한 "고리원전에서 방출한 방사선이 기준치(연간 0.25∼1mSv) 이하지만 국민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최소한으로 정한 이 기준이 절대적인 안전을 담보한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는데, 직장암에 걸린 박 씨의 남편이나 선천성 자폐증인 아들에 대해서는 관련 연구가 없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비록 1심인데다 갑상선암이라는 특정 질환군에 한정된 판결이긴 하지만 이번 사태는 부산 기장군 이외에도 월성, 영광, 울진 등 원전지역 주민들의 집단소송으로까지 확산될 조짐도 보이는 등 파급 효과가 상당히 커질 전망이다. 원전 피해지역인 후쿠시마 현 아동들에서 갑상선암 발생이 급증한 데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진행 중인 일본에서도 이번 결과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는 않다. 한수원 측은 이번 판결에 대해 "원전 때문에 방사능에 피폭됐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선량이 인체에 해가 없는 수준"이라며 세부적인 사항을 검토한 뒤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현에서 발생한 제1원전 사고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방사능의 암 발생 위협에 대해 재조명 해보기로 한다.   

 

△ 고선량 방사선, 암 발생률 높여
-아동에서 더 취약, 저선량 피폭 영향은 여전히 논란

 

방사선 노출이 건강에 미치게 되는 해악은 전 세계적인 관심사로 상당히 오랜 기간 인류를 위협 해왔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방사선을 I등급에 해당하는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으며, 일본 원자폭탄 노출자를 대상으로 한 코호트연구에서는 고형암과 혈액암 모두에서 암 발생빈도가 증가됐다는 결과를 보고했다(Radiat Res. 2007;168:1-64).

1986년 발생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진압 및 방사능물질 격리과정에서 매우 높은 수준의 방사능에 노출됐던 20만명 가운데 2만 5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공식집계 됐고, 사고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에서만 1800건 이상의 소아 갑상선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체르노빌 주변 지역 0~17세 사이의 소아 중 5000여 건에 달하는 갑상선암 발생이 보고됐고, 앞으로도 50년 동안은 5000~4만 5000건 정도의 추가 발생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갑상선암 이외에도 노출 주변 지역의 주민들에서 백혈병, 유방암 등의 증상 발생이 빈번하게 보고되고 있는 가운데 국제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는 지난 2006년 체르노빌 사건의 직·간접적인 영향에 의해 27만 명의 암 발생과 함께 이들 중 9만 명 정도는 치명적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렇듯 많은 연구 및 보고서들을 통해 고선량 방사선 피폭에 의한 발암 유발 가능성이 지지되고 있는 가운데 100mSv 이하의 저선량 방사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컨센서스가 없는 실정이다.

이에 UN과학위원회(UNSCEAR) 등 방사선 관련 국제기관에서는 저선량 방사선이 암을 비롯한 이외 질환에 의한 사망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인데, 최근에는 임상현장에서 증가하고 있는 의료용 방사선 피폭이 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001년 Brenner 등은 1세 소아에서 복부 CT 촬영 1회에 따른 암 사망 위험도가 0.18%이고 따라서 1년간 60만 건의 복부 및 두부 CT를 시행할 때 발생되는 암 사망건수는 500례에 달한다고 추정했다(AJR Am J Roentgenol. 2001;176:289-296). 특히 소아 환자의 경우 성인과 같은 프로토콜을 적용하게 되면 과다피폭에 해당되고 상대적으로 기대수명이 길기 때문에 암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Radiology 2009;251:13-22), 미국물리의학자협회(AAPM)에서도 관련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갑상선암 특히 관련성 높아…체르노빌·후쿠시마 발병률 급증

특별히 이번 소송과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갑상선암은 방사능과 매우 관련성이 높다는 것이 학계에서는 기정사실화 돼 있다.

미국암학회(ACS)와 대한갑상선학회, 국립암센터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는 방사선 노출을 갑상선암의 주요한 원인인자라고 지목하면서 노출된 방사선량이 증가하거나 노출연령이 어릴수록 발병 위험도가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국립암센터가 운영하는 국가암정보센터 홈페이지에서는 방사선량이 0.1Gy를 넘는 경우에 갑상선암 발생이 증가하며 그 이하에서는 영향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갑상선이 유독 방사선에 취약한 원인은 요오드를 섭취해 갑상선호르몬을 생성하는 기관 자체의 생리적 기능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갑상선이 안정된 형태의 일반 요오드와 방사성 요오드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갑상선암의 발병 원인임과 동시에 방사성요오드의 형태로 치료에 사용되는 비결이기도 하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던 20세기 초에는 방사선치료가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면서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남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여드름, 두피의 진균류 감염이나 확대된 흉선 등을 치료하는 데 방사선을 사용하거나 확대된 편도선 또는 아데노이드를 줄이기 위해 방사선치료가 시행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몇 년 후 이런 치료를 받았던 어린이들에서 갑상선암을 비롯 림프종, 윌름스종양(Wilms' tumor), 신경모세포종과 같은 일부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특별히 1986년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했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지역의 어린이들에서 4~5년 뒤 다른 지역 아동들에 비해 갑상선암 발생률이 5~8배 증가했다는 보고는 어린 시기의 방사선 노출이 갑상선암의 명백한 위험요인임을 입증한 대표적 사례다.

참사가 일어나기 전인 1981~1985년에 체르노빌 주변 국가인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러시아의 갑상선암 발병률은 인구 100만명당 4~6건에 불과했으나 참사를 겪은 뒤 1986~1987년도 통계에선 45명으로 훌쩍 뛰었고, 갑상선암으로 진단된 15살 이하의 환자들 가운데 64%가 인근 지역 출신인 것으로 보고됐다. 1992년 세계보건기구(WHO)도 사고 지역 인근에 사는 어린이들에게서 다른 지역에 비해 80배가 넘는 갑상선암이 발병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해 충격을 안겨줬고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 갑상선암에 대한 방사능의 위협이 밝혀지게 됐다(Cancer 1994;74:748-66).

▲ 연세의대 박정수 교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서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만 18세 이하였던 후쿠시마현 어린이들 중 갑상선암으로 확진된 환자수는 57명으로 지난 5월 발표 때보다 7명 늘었고, 같은 기간 갑상선암으로 의심되는 인원도 39명에서 46명으로 증가했다고 전해진다.

연세의대 박정수 교수(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는 "방사선은 갑상선암의 명백한 원인인자로서 갑상선세포가 방사선에 노출되면 DNA 구조가 파괴되면서 유전자 이상이 유도돼 갑상선암을 일으킨다"며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 과거 경험에 비춰봤을 때 소아가 방사선 노출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만큼 어린 나이에 CT 촬영을 비롯한 여러 방사선검진 및 치료를 지나치게 자주 받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원전 주변지역에 거주한다는 것만으로 갑상선암 발병과의 연관성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며 "방사선이 외부로 노출됐는지 여부가 관건인 만큼 이번 부산 고리원전 소송건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확인이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 원전지역 거주 여성에서 갑상선암 발생 위험 2.5배 높아
-2011년 서울대 의학연구원 역학연구서 '통계적 유의성' 입증

방사능 노출이 갑상선암 발병 위험도를 높인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이번 판결에서처럼 원전 주변지역 주민을 갑상선암 고위험군으로 봐야 하는지 여부는 원전의 안전관리와도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별도로 따져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이에 부산지법이 판결의 결정적 근거로 제시했던 서울대 의학연구원 원자력영향·역학연구소의 '원전 종사자 및 주변지역 주민 역학조사 연구'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봤다(J Korean Med Sci 2012;27:999-1008).

이 연구는 지난 1989년 이슈가 됐던 영광원전 주변 주민의 무뇌아 유산 사건을 계기로 과학기술처가 역학조사를 추진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서울대 의대를 중심으로 전남대, 경북대, 인제대, 동국대, 한양대, 건국대, 국립암센터, 방사선보건연구원, 서울대보건대학원 등이 연구에 참여했다.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장장 20여 년에 걸쳐 시행됐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오랜 기간 원전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암 발병 위험도를 연구한 사례로 손 꼽힌다.

연구팀은 20세 이상 주민 3만 6176명을 원전에서 5㎞ 이내 주변지역, 5∼30㎞의 근거리 대조지역, 원전에서 30㎞ 이상 멀리 떨어진 원거리 대조지역으로 나눠 매년 암 발병 여부를 추적조사했다.

그 결과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총 2298명의 암 환자가 발생했고, 그 중 위암, 간암, 폐암, 골암, 유방암, 갑상선암, 다발골수종, 백혈병에 해당하는 방사선과 관련된 암은 1372명이었다.

 

원전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분석했을 때 원전 주변지역 주민 1만 1367명 중 705명(남성 393명, 여성 312명)에서 암이 발병했고, 그 중 429명(남성 250명, 여성 279명)이 방사선 관련 암이었다. 근거리 대조지역에서는 1만323명 중 721명(남성 421명, 여성 300명)의 암 환자가 발생했고 그 중 420명(남성 248명, 여성 172명)이 방사선 관련 암이었으며, 원거리 대조지역 1만 4486명 중에서는 872명(남성 520명, 여성 352명)이 암에 걸렸고, 그 중 523명(남성 330명, 여성 193명)이 방사선 관련 암인 것으로 확인돼 원전으로부터의 근접성에 따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갑상선암의 경우 원전 주변지역에 거주하는 여성에서 발병률이 10만명당 61.4명으로 대조지역에 비해 2.5배 높게 나타났고, 이 결과는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또한 근거리 대조지역에 사는 경우에도 발병 위험도가 원거리 대조지역에 비해 1.8배 증가했다.

이밖에 부산 기장군민의 암 진단율이 3.1%로 수도권 평균치보다 2~3배 높았다는 점도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이 공개한 '기장군민 건강증진사업' 결과에 따르면 2010년 7월부터 약 3년 6개월 동안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건강증진센터에서 암 종합검진을 받은 3031명 중 97건의 암이 발견돼 암 진단율이 3%를 훌쩍 넘었다.

이는 비슷한 시기 서울대병원 강남센터(1.06%)와 삼성서울병원(1.04%)이 공개한 수치와 비교해서도 2배가 넘는 수준이다. 암종별로는 역시 갑상선암이 41건으로 가장 많았고, 위암 31건, 대장암 6건, 폐암 4건, 전립선암 3건 등의 순서를 차지했다.  

 

"원전-갑상선암 발병 인과관계 단정은 곤란"
-안윤옥 서울의대 명예교수 인터뷰

▲ 안윤옥 서울의대 명예교수

'원전 종사지 및 주변지역 주민 역학조사' 역학연구를 주도했던 서울의대 안윤옥 명예교수(대한암연구재단 이사장)는 "해당 연구는 통계적인 유의성을 밝힌 것일 뿐 원전의 방사선 노출과 갑상선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까지 입증한 것은 아니다"라며 법원이 보고서의 내용을 충분히 해석하지 못한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판결에 인용된 것처럼 "원전 주변 거주자들과 원전으로부터 5㎞ 이상 떨어진 대조지역을 거리상 두 지역으로 나눠 갑상선암 발생률을 비교했을 때 주변지역에 거주하는 여성에서 대조지역 대비 2.5배, 근거리 대조지역에서 원거리 대조지역 대비 1.8배 높았다"는 소견 자체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만, 이같은 사실이 인과관계로까지 연결되느냐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라는 것.

안 교수는 역학연구를 해석할 때 흔히 발생하는 오류라면서 "통계적 유의성이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필요조건임은 맞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통계적으로는 유의한 것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낮이 가면 밤이 오고 밤이 가면 낮이 온다는 사실은 통계적으로는 100% 가까이 유의하지만 인과관계는 아니지 않냐고 예를 들면서 마찬가지로 통계적 유의성과 인과관계의 차별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통계적 유의성을 인과관계의 증거로 해석해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노출이 원전 지역 거주자에게 갑상선암 발병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면 5㎞ 이내 지역에 사는 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분석 결과에서 거주기간에 따른 차이를 보인다거나 위암, 유방암 등 기타 방사선 관련 암에서도 동일한 경향성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실제 원전 주변지역에 거주하면서 갑상선암이 발생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인과관계 분석을 시행했을 때 10~15년 산 사람이나 15~20년 또는 20년 이상 산 사람들 간에 갑상선암 발생률 차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안 교수는 "이러한 분석 내용에 기반해 갑상선암 발생과 원전의 방사능 노출 사이에 통계적 유의성은 있지만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이들 지역에서 갑상선암 발생률이 2.5배 높게 나타난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해서는 갑상선암의 다른 원인인자 등을 고려한 추가 연구가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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