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사와의 윤리

홍성수
의료윤리연구회 회장
연세이비인후과 원장

35. 응답하라 의료윤리
동료의사와의 윤리

의사간의 윤리 ‘뜨거운 감자’
원본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전반부는 스승과 동료 및 제자에 관한 언급으로 이뤄져 있다. 의사(doctor라는 용어는 정규 교육을 받은 의사를 지칭하기 시작한 18세기부터 사용, physician은 특히 내과의사, healer는 병든 자가 의존하던 고대 주술사, 무당, 중세 이후 종교인 그리고 민간요법에 정통한 동네 할머니 등을 망라한 치유자라는 의미)라는 전문직업인 집단 내에서 지식을 전수해 준 스승과 학맥에 대한 무한한 고마움과 그에 따른 의무와 헌신이 포함돼 있다. 그 시대를 상상해 본다면 일대일 전수의 독점적, 전인격적인 도제제도(Apprenticeship)로 인한 배타적 상황이 떠오르는데,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도덕과 윤리란 각자 수양의 몫이며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 유교 문화권에서의 서열과 계급은 또 그렇게 많이 바뀌지도 않은 듯하다.
 
23년 전, 개원 초기에 인근의 연로한 원장님이 반말로 전화를 하셨다.
"아직 개업 초보라 현실을 잘 모르나 본데, 아이들이란 것이 감기도 앓고, 축농증도 앓고, 중이염도 앓으면서 크는 것이지 뭘 그 정도 가지고 환자 보호자에게 겁을 잔뜩 주면 되는가? 그리고 그동안 그 아이들을 진료한 같은 동네 개원 선배 의사들은 뭐가 되는가? 그런 식으로 모나게 하다가는 조만간 역풍을 맞을 테니 말 조심하게."

가족력도 있는 완연한 알러지에 구조적으로는 편도와 아데노이드 비대 환아 보호자에게 소아 연령 시기의 적극적인 치료· 관리와 예방이 중요한 이유로 평생 만성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성장발육, 인지능력, 학습 능률 그리고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을 마치 환자 보호자들에게 겁을 주며 자신들을 비난하고 환자를 뺏어 간다고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잠시 위축이 되고 혹시 내가 주변에 진짜 피해를 입힌 일인가 고민도 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의 후유증이나 합병증을 최소화하려면 의사가 주도적으로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자주 봐야' 할 것이고, '심해지면 오는 것이 아니라, 심해지기 전에' 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일단 의사의 진단과 치료 계획을 들어 보고 어느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지는 오직 환자의 판단과 선택이라 믿는다. 이 소신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동네 주치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몇 달에 한 번, 3분 진료하는 상급종합병원이 할 수 있겠는가? 대신 내 전문 영역을 벗어난 하기도 호흡기 질환이 의심될 경우, 주저 없이 그 분야 개원의에게 확진과 치료를 받으라고 권한다. 분명 그분들이 나보다는 전문가이고 더 잘 하실 테니까.
기원 전 300년 즈음, 알렉산드리아에 최초의 의학 학교를 설립한 헤로필로스는 '네가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치료만 해야지, 네가 잘 모르고 해서는 안 되는 치료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단다. 의료윤리의 제2 원칙인 악행금지이다.

동료 검증의 딜레마
"누가 감히 나의 진단과 치료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가타부타 참견을 하는 너는 얼마나 완벽하게 진단과 치료를 하는지 두고 보자."

우리나라에서 동료검증(Peer Review)은 응급실 인턴 선생님만 할 수 있다는 서글픈 농담도 있듯이, 서로 민감하고 서로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서로 침묵하는 관행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문가 집단 내에서의 자율적 검토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외부의 개입을 자초해 의학적으로 불가항력적인 사안에 대한 완충 영역이 사라져 버렸다. 결국 검증은 오로지 '재정적 관점'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자의적으로 대행(?)하고 있고, 이를 확인한다는 빌미로 건강보험공단이 일선의료 현장을 휘젓고 다니며, 최종적으로는 사실 관계 여부나 정의와는 상관없이 '사회적 약자인 환자에 대한 일방적인 보호자'라는 자부심(!)으로 사법부가 판단한다.

서구 의료선진국에서는 왜 자체적으로 동료 검증을 하는가? 제 식구 감싸기를 위해서? 왜 국가와 사회는 이를 전문가 집단에게 위임을 했겠는가? 의사들이 예뻐서? 아니다. 전문가 집단으로서는 전반적인 의료 질 관리 차원에서 개별 사례들을 검토, 축적해 보다 진전된 진료 지침을 개발하기 위해서이고, 국가와 사회는 타율로써 간섭하기보다는 전문가 집단의 권위와 역할과 책임을 존중해야 그들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율과 간섭의 피해는 결국 국민과 환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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