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의대 전진학 교수, 울산의대 이상일 교수 등 강력히 주장

"매년 환자안전사고로 세월호 5척이 침몰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병원 내 보고체계가 잘 갖춰져야 하며, 법과 제도 개선은 물론 의료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의사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이상일 교수는 17일 '환자안전'을 주제로 열린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토론회에서 "환자안전사고는 소리없는 살인자"라며 "정부-병원-전문가-환자가 같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병원에서 예방 가능한 사망자 수는 지난해 1만8000여명으로 추산된다"며 "세월호사건 희생자 304명으로, 환자안전사고로 인해 매년 세월호가 5척씩 침몰하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 같은 추산치에 대해 혹자는 너무 과장됐다고 하는데, 외국 학술지 등에서 우리나라 병원 몇곳을 토대로 보고된 결과에서 비슷한 수치가 나왔다"며 "전혀 과장된 수치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환자안전사고 대책으로 '보고체계 의무화', '인증제', '환자안전법 제정' 등이 대두되고 있지만, 제대로 이뤄지는 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우선 병원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사망, 수혈 오류, 영구적 상해, 환자 오인, 방향이나 부위가 틀린 수술, 수술 도중 신체 내 이물질 미제거, 인공호흡기 사고, 치료지연, 수수실 화재, 병원 내 감염, 낙상 등 다양한 환자안전 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이같은 환자안전 사고나 의료 오류 등에 대해 보고하고 이를 바로 시정, 사후조치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하는데, 대부분 보고체계가 없거나, 있더라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가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병원 관계자 대부분은 비밀보장의 문제, 병원 피해 우려, 처벌의 두려움 등을 꼽았다.


보고체계 미흡은 물론 인증제 참여 저조, 환자안전법 표류 등 '환자안전 사각지대'

보고체계를 비롯한 다양한 환자안전 관리에 대해 확인, 점검하는 '인증제' 역시 잘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인증제가 의무화된 요양병원, 상급종합병원, 정신병원 등을 제외하면 인증제 자율참여에 동참한 병원은 15% 가량. 이 교수는 "대략 80~90% 병원이 인증 범위 밖에 있다. 아직 환자안전법이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일한 환자안전사고 해결책인데, 결국 대다수의 병원들이 환자안전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인증제 참여 저조에 대해 병원들의 미참여도 문제지만, 더욱 문제는 인증 준비 과정의 복잡성과 인증에 따른 인센티브 미지급 등을 꼽았다. 허가기준에 대한 허술함 역시 인증제가 환자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증명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인증 준비에 대한 병원들의 불만도 크다허가 기준 비현실적이다. 요양병원 중 인증받은 곳은 상당히 보증하는 수준이어야 하는데, 허가 기준 부실하다. 실제로 믿을 만한 기관과 그렇지 않은 기관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보고체계를 의무화하고, 법적으로 보고한 직원을 보호하는 한편, 감염 등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한 '환자안전법'의 통과 지연도 환자안전 문화 정착을 더디게 한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논란이 되는 부분을 일단 빼고서라도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며 "일단 통과돼서 예산이 투입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안이 있어야만 환자안전에 대한 환경이 조속히 마련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보고가 가장 중요..의사들 참여가 우선시돼야 다른 의료인들도 참여한다"
 

 

또한 '환자안전의 국제적 현황' 주제발표를 맡은 보스턴의대 임상내과 전진학 교수(MetroWest MedicalCenter 감염내과장)는 환자안전문화 정착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고, 여기에서 '의사'가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의료계에서는 '의사'들이 가장 핵심 인물이다. 때문에 의사들이 먼저 솔선수범해 보고를 하면, 자연스럽게 간호사, 영상기사 등 의료진들도 보고하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의료계에서 의사들의 의견을 중시해주는만큼, 권한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며 "보고와 환자안전은 인과관계인 것을 인지하고, 보고를 생활화하자"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병원 내 보고를 자율로 내버려두면 실천율이 지나치게 저조할 것"이라며 "보고, 인증 등에 대해 수가 등과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차트가 뒤바뀐 사건, CT촬영 방향이 바뀐 사건, 장성요양병원 화재, 종현이 사건 등 환자안전 대두되는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이제라도 표류돼 있는 환자안전법을 당장 추진해 환자안전 문화를 정착시키자"고 제안했다.

정부 "환자안전 위해 병원계, 환자단체, 언론계, 정부 다같이 동맹맺자"

정부에서도 "병원, 의사의 협조 없이는 보고체계도, 환자안전법 통과도 이뤄질 수 없다"며 "환자안전을 위해 함께해달라"고 당부했다.

 

보건복지부 곽순헌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인증 참여를 높여야 하는데, 현재 2주기 인증기준을 발표한 뒤 병원들의 반발이 더욱 극심해졌다"며 "이에 대해 복지부도 많이 고민하고 있고, 현실성 있게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상급종합병원 인증기준 중 '수술 전 모든 기록 완료'라는 지표가 논란이 된 바 있고, 이에 대해 복지부는 전문가들과 병원계 입장을 고려해 삭제했다. 이처럼 2주기 인증에서 병원 현장을 고려치 못한 부분은 수정, 보완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병원의 의료사고 자발적 보고를 위해 '인센티브' 등과 연계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환자안전법에 대해서는 병원계의 우려가 많지만, 과태료 부과부분이나 벌칙 부분을 완화하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곽 과장은 "복지부에서도 병원의 입장을 듣고 문제를 잘 해결하고 싶다"며 "인증, 보고체계, 환자안전법 모두 병원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 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과 환자, 정부, 언론이 함께 정책동맹을 맺고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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