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사와의 윤리

최주현
전 대한전공의협의회
사무총장
34. 응답하라 의료윤리
동료의사와의 윤리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세계화 이후 더욱 격화되고 있는 시장경쟁은 의사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한 법조단체 수장을 만난 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그분은 법조계도 그렇지만 의사들의 몰락은 정도가 더 심한 것 같다고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냐고 물으니 각종 포털 사이트와 언론 및 옥외 광고 등 의사들이 진료 외적으로 들이는 홍보 비용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처럼 보인다며 과다경쟁의 결과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의사 간 내부경쟁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신규 의원에 대한 기존 개원가의 각종 텃세를 토로하는 글들이 의사들의 게시판에 오르내리는 것도 십여 년 이상 된 일이고 요양기관 폐업률 및 의사 신용 불량자 수 증가가 여타 업종 중 상위권에 속한다는 것도 비밀이 아니다.

비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폴 스타에 따르면 70~80년대를 거치며 미국에서 기업 의료의 성장이 두드러졌고, 의사가 단독 개원을 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젊은 의과대학 졸업생들은 집단지향적 공동 개원 형태를 선호하게 되었다. 젊은 의사들은 '직업 안에서의 자유’보다 '직업으로부터의 자유' 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집단 개원은 규칙적인 업무시간을 제공함으로써 독립적 진료에서 생길 수 있는 사생활 침범을 방지할 수 있다. 한편으로 단독 개원 형태 이외의 조직에서 근무하는 것이 의사들의 자율권을 크게 감소시킬 것으로 전망한다. 의사들을 이제 소유주, 경영인, 고용인, 독자적인 의사들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관찰이다. 한국 의사 업무 형태 중 월급을 받는 봉직 의사 비율은 개원 의사의 비율을 넘어섰으며 증가 추세이다. 개원 의사들 또한 1인 의원 형태가 아닌 공동 개원의 형태를 갖춰나가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히포크라테스 시대와 같지 않다. 전통적 의사 간 윤리는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 동업자 의식과 치료자 양심을 조화롭게 분별하는 것에 방점을 두었다. 대한의사협회의 '의사 윤리 강령'에는 "의사는 동료 보건 의료인들이 의학적, 윤리적 오류를 범하는 경우 그것을 알리고 바로잡아야 한다" 고 되어 있다. 1983년 '의료 윤리에 관한 국제 협약'에는 "의사는 인격이나 자격에 결함이 있거나 허위, 기만을 자행하는 의사들을 폭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윤리적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하거나 혹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면 그것은 현재 의사들이 빠른 속도로 이질적인 집단이 되어가고 있으며, 심화되는 시장경쟁 속에서 의사 개개인의 자율성을 잃고 의료계 내부적으로 소집단의 이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는 데 기인한다.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준칙을 어기면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신설되는 각종 처벌 조항들이 이러한 생각을 대변한다. 그런데 제제 수위가 높아지면 의사 간 윤리의 전통적인 문제들, 예컨대 과별 진료 우선권, 동료 의사 규제, 의뢰 환자의 비밀 누설 문제 등이 해결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소집단의 이익 앞에서 내부 고발을 감행하기에는 일부 의사들은 자본의 문제와 관련해 자율성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태에 있다. 치열한 경쟁 이면에는 철저한 수익 중심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고민해봐야 할 것은 전통적인 윤리가 지금 통용될 수 있는지 현재의 구조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계 내부적으로는 의사들 스스로 자율성과 전문성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무한경쟁의 전장에서 쓸 만하다고 생각하는지의 문제일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경쟁을 완화시킬 새로운 합의점을 찾는 것이 현재의 의사간 윤리 모색에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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