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28.7%에서 47.2%로

 

지난 2012년 미국질병관리본부(CDC)는 과거 10년간 자국민의 혈압 조절률(혈압 140/90mmHg 미만 달성 및 유지)이 크게 향상됐다는 희소식을 전했다. 국민건강영양조사(NHANES)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고혈압 환자의 혈압 조절률이 2001~2002년 28.7%에서 2009~2010년 47.2%로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특히 고혈압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의 혈압 조절률은 44.6%에서 60.3%로 증가, 2010년 현재 절반 이상이 목표치를 달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고혈압의 병폐인 절반의 법칙을 깬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CDC 연구팀이 이 같은 혈압 조절률 개선의 주된 원인으로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확대를 꼽았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항고혈압제의 사용률은 63.5%에서 77.3%로 증가했는데, 변화는 병용요법이 주도했다. 다제병용요법의 적용률은 2001년 36.8%에서 2010년 47.7%로 증가해 항고혈압제 치료 환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두 가지 이상의 약제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하나의 약제만을 사용하는 것과 비교해 변동용량 병용요법(약물 별도로 다중투여)의 혈압 조절률이 26%, 고정용량 병용요법(단일 복합제)은 55%나 높았다.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혈압조절률의 개선이 다제병용요법의 보다 확대된 적용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고혈압 환자에서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조기적용은 이미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외 가이드라인들은 고혈압 환자에서 병용 약물치료의 일상적인 적용과 함께, 혈압이 160/110mmHg 이상이거나 20/10mmHg의 강압이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처음부터 병용요법을 시작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또 단독약제로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경우, 더블도즈 용량조절이나 다른 약제로의 전환보다는 신속하게 추가적인 약물을 더하도록 패러다임 자체를 병용요법 쪽으로 가져가고 있다.

 

유효성 - 혈압강하력
이 처럼 고혈압 환자의 치료에서 병용요법이 핵심으로 부상한 데는 그 만큼의 이유가 있다. 이를 통해 고혈압 약물치료의 유효성, 안전성에서 순응도까지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고혈압제 병용의 적용은 단일요법을 통한 강압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데 근거한다. “항고혈압제 단일요법으로는 혈압을 정상화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고혈압학회(ASH)의 설명에 따르면, 354개의 무작위·대조군 임상시험(RCT)을 분석한 결과 단일성분 항고혈압제의 평균 강압효과는 9.1/5.5mmHg에 불과했다. 베타차단제(BB), 이뇨제,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CEI),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 칼슘길항제(CCB) 모두를 놓고 봐도 큰 차이가 없었다(BMJ 2003;326:1427-1435).

개별적인 임상연구를 봐도 단일약제로 혈압 목표치에 도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ALLHAT 연구는 당뇨병 환자의 혈압 목표치를 140/90mmHg 미만으로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일 항고혈압제 적용 시에 목표치 도달률이 26%에 그쳤다. HOT 연구에서는 33%의 환자만이 단독요법으로 목표치(이완기혈압)를 달성했다. 반면 혈압강하 개선을 위해 2제병용을 실시한 경우는 45%, 3제병용은 22%에 달했다. 특히 LIFE 연구에서는 혈압조절을 위해 두 가지 이상의 항고혈압제로 치료를 받아야 했던 환자의 비율이 90% 이상이었다. ASH는 현재까지 보고된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 볼 때, 고혈압 환자의 75% 이상에서 혈압 목표치 달성을 위해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이 필요하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단일표적, 단독요법의 한계
“항고혈압제 단일요법으로는 혈압을 정상화시키기 어렵다”는 말에는 “한 가지 루트만 표적으로 공략하는 항고혈압제 단일요법”이라는 단서조항이 따라 붙는다. 최근까지 병태생리학적 측면에서 고혈압 발생의 다양한 경로(physiological pathways)들이 밝혀져 왔다. 이를 기반으로 각각의 루트를 공략하는 새로운 계열의 항고혈압제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방팔방에서 밀려오는 적을 맞아 한 곳에만 전력을 집중시킬 경우, 수성(守城)에 성공하기 힘들다. 때문에 차별화된 기전을 통해 혈압상승의 원인이 되는 여러 표적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는 병용요법은 고혈압을 막는데 필수적인 전략이다. 실제로 ACCELERATE, TEAMSTA 연구 등은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조기적용을 통해 각각의 단일요법보다 우수한 혈압강하 효과를 끌어낼 수 있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처음부터 저용량 병용요법을 적용한 환자군과 단독으로 시작해 다른 약물로 전환한 경우를 비교한 결과, 병용 초치료군의 혈압강하력이 유의하게 높았다(J Hypertens 2004;22:2379-2386).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은 단독 적용 시에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역조절반응(counterregulatory response)을 완화 또는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여러 곳에 균열조짐이 있는 둑을 가정했을 때, 이미 뚫린 곳을 강하게 막아도 다른 취약지점에 부하가 걸려 결국 새로운 균열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이를 역조절반응에 비유해볼 수 있겠다.

ASH는 항고혈압제 병용요법 관련 가이드라인에서 RAAS억제제와 이뇨제의 병용을 통해 역조절반응을 설명하고 있다. “이뇨제의 경우 초기치료 단계에서 RAAS(레닌-안지오텐신-알도스테론계)를 활성화시켜 혈관수축과 염분 및 수분저류(salt & water retention)를 야기하는데, RAAS억제제를 추가하면 이러한 이뇨제의 역조절반응을 상쇄시킨 상태에서 강압효과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ACEI와 이뇨제 조합의 혈압강하 및 심혈관사건 예방효과는 ADVANCE 연구를 통해 검증된 바 있다. ASH는 이에 근거해 “상호보완 작용이 있는 계열의 약물을 병용할 경우 단일약제의 용량을 증가시키는 것에 비해 5배 정도의 강압효과를 거둘 수 있다(Am J Med 2009;122:290-300)”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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