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인구 고령화에 유병률도 가파른 상승

자녀가 취업이나 결혼으로 분가해 노부부만 남는 일명 '빈둥지 가구'가 늘고 있다. 특히 자녀와 떨어져 사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외로움·상실감을 쉽게 느끼는 등 결국 우울증에 무방비로 노출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3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빈둥지 가구는 1990년 21.3%에서 2010년에는 32.1%로 10% 가까이 증가했다. 또 홀몸노인이 104만명, 1인가구가 454만명으로 집계됐고, 2명 이하 가구수가 절반에 이르고 있어 20년 뒤에는 70%를 훌쩍 넘을 것이라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모든 정황만 따져봐도,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노인 우울증 발병률과 노인자살률 1위라는 오명은 이미 예견된 것은 아닐까!

이에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의 급격한 노령화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 노인 우울증 현주소를 점검해보고 다양한 치료전략을 살펴봤다.

 

내원환자 매년 9%씩 증가

노인우울증 치료를 살펴보기 전에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인우울증 환자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65세 이상 200만 명이 우울증을 동반하고 있고, 자살률도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다.

우리나라는 2013년 질병관리본부가 9월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발표한 '한국 성인 우울 증상 경험' 보고서를 보면 2012년을 기준으로 우울증을 동반한 환자가 70세 이상이 17.9%로 가장 높았고, 60대가 15.1%, 50대가 15%, 40대가 12.9% 순이었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의 15~25%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의 우울 증상을 동반하고 있었고, 주로 은퇴 후에 따르는 외로움, 허탈감, 무기력감 등이 우울증의 주요 원인이었다.

 

이로 인해 치료환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목희 의원이 9월 1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병원에서 치료받는 우울증 환자는 2009년 49만 5619명, 2010년 51만 7142명, 2011년 53만 4854명, 2012년 59만 1276명, 2013년 59만 1148명으로 연평균 증가율이 약 5%였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에서 그 증가폭이 컸는데, 전체 연평균 증가율이 5%인데 반해 60세 이상 노인의 연평균 증가율은 9%였기 때문이다.

우울증으로 인한 노인자살문제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2012년 발표된 연령별 자살률에 관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만 명당 10대가 5.1명, 20대는 19.5명인 반면, 70대는 73.1명, 80대 104.5명으로 조사됐다.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경제적인 어려움, 정신적·육체적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증가하면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목희 의원은 "사회활동에서 소외되고 해결되지 않는 빈곤문제가 노인 우울증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서 "노인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노인빈곤해소 노력은 물론 노인정신건강을 위한 예방책 마련 및 치료 지원 시스템이 조속히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물치료는 필수…확인할 게 많다
기존 복용 약물 확인하고 부작용 염두에 둬야

노인우울증은 진단하기 매우 어려운 질환 중 하나다. 우울증을 동반한 노인 대부분이 우울하다는 감정적 표현보다 통증이 있다거나 기운이 없다 등의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주요 증상에는 △일시적인 기억력 감퇴 및 지적 기능의 저하 △미래에 대한 희망 저하 △성기능 감퇴 △외출 거부 △외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 △음주·흡연량의 증가 △비정상적인 성격·성향의 강화(강한 분노, 의기소침, 대인관계 회피)등이 있다.

이 밖에도 설사나 변비, 피로감, 발한, 건강 상태에 대한 과도한 걱정을 비롯해 망상·초조함도 하나의 증상으로 치매와 혼동되기도 해 진단 시 주의가 필요하다.

이처럼 노인우울증은 성인우울증과는 호소하는 증상부터 큰 차이를 보여 전문의들은 충분한 상담을 통한 장기적인 치료계획을 짠다.

먼저 약물치료에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삼환계 항우울제(TCA) 등의 항우울제가 주로 쓰인다. 일부에선 노인환자의 신체적 증상(통증이 있다거나 기운이 없다 등)만으로 검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여기서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안정제 정도만 처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정제는 우울증 치료제가 아니다.

이에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김태석 교수는 약물 남용·의존을 막고 노인우울증에 있어서의 '똑똑한 항우울제 사용 원칙'을 강조했다.

김 교수가 제시한 약물 사용에 있어 잊지 말아야 할 4가지 원칙에는 △최소 용량으로 시작해 천천히 증량 △약물 농도 문제를 염두해 한꺼번에 복용하는 것보다 분복 △순응도 문제를 고려한 복용 방법이나 횟수 단순화 △개개인의 특성에 따른 적절한 처방이 있다.

즉, 공존 신체 질환과 그에 따른 많은 약물 복용 상황을 고려하고, 전형적 우울증상과 신체 증상의 빈번한 호소 및 인지 기능의 문제를 항상 염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항우울제 사용에 있어 부작용 역시 필히 고려해야 한다. 약력학과 약동학의 변화·공존 신체질환 빈도 및 복용 약물 증가·치료 순응도 문제 등으로 인해 항정신성 약물 부작용 빈도가 많기 때문이다.

우울감 발생과 관련 있는 약물에는 베타 차단제, 벤조디아제핀계, 스타틴 계열(지질 저하제), 항콜린제제 (위장 질환 치료 사용)가 있다. 이 밖에 우울감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약물에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 파킨슨병 치료제, 호르몬 조절제, 정신자극제, 항경련제, 프로톤 폄프 저해제와 H2 차단제 등이 있다.

이와 함께 환자가 뇌졸중, 심혈관 질환, 당뇨병 등의 공존 신체질환으로 인해 약물을 과다로 복용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눈여겨봐야 한다. 실례로 김 교수가 제시한 75세 남성환자의 증례를 보면 고혈압, 만성 기관지염을 포함한 36종류의 약물, 82개의 알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 이외의 다른 임상과에서 신경성 가능성을 염두한 항불안제 처방은 물론 항우울제, 통증조절 약물 특히 TCA 등의 사용이 빈번하다"면서 "환자 가운데는 신체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약을 복용 중이거나 건강보조식품을 남용하는 경우도 많아, 약물 치료에 앞서 이를 명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약물요법 시행 전에
비약물요법 병용하며  환자 정서 먼저 파악

노인우울증은 약물치료도 중요하지만 비약물요법과 병용치료하는 것이 질환을 치료하는데 더 효과적이다. 비약물요법에는 정신치료, 전기경련요법, 가족치료가 가장 대표적인데, 정신치료는 인지행동치료, 단기정신역동적 치료, 지지적정신치료 등으로 나뉜다.

특히 정신역동적 치료는 환자와 치료자 관계를 바탕으로 내부의 심리적 갈등들이 개인의 우울증에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기초로 두고 치료를 시작한다. 이를 통해 치료자는 환자가 갈등에 대해 마음을 열도록 도와주고 거기서 치료자의 통찰과 함께 환자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층 수월해질 수 있다.

지지적정신치료는 적응장애나 상황에 불쾌 기분 등의 우울 증상을 동반한 환자에서 적합한 치료로 상실이나 스트레스에 적응하도록 하는데 시행된다. 치료방법으로는 자유연상이나 증상의 발생원인에 대한 해석은 피하고 치료자가 능동적으로 관심을 갖고 동정적이면서 지지해주는 태도를 기본으로 암시, 충고 등을 사용한다. 

그다음으로 관자놀이에 붙인 전극을 통해 70~150볼트 전류를 0.1~1초간 흐르게 해 발작을 유도하는 정신경련요법(ECT)이 있다. 주로 △항우울제 복용을 거부하거나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 △심각한 정신적 증상을 동반하거나 자살 위험도가 높은 환자 △이전에도 정신경련요법으로 효과를 본 환자들이 치료 대상이다.

ECT는 다른 치료에 비해 효과가 빠르고 합병증이 발생할 확률이 적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치료 전후 짦은 기간에 대한 기억상실이 생겨 환자를 종종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존재해 ECT 시행에 앞서 환자의 상태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가족의 지지를 기반으로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도 행해지고 있다. 자원봉사, 종교생활, 평생교육, 재취업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통해 환자가 삶에 대한 이유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연구결과를 통해 약물치료 만큼의 효과가 입증된 우울증 개선 프로그램 등이 소개되고 있다. 노년층 우울증환자에서 인터넷 게임이 항우울제를 복용했을 때와 유사한 효과가 나타났다는 연구결과가 하나의 예다.

미국 코넬대학 소속 웨일 코넬 메디컬 칼리지 Sarah Shizuko Morimoto 교수팀은 Nature Communications 8월 5일자에 게재한 연구결과를 통해 "컴퓨터 게임을 한 환자의 72%가 우울증을 완전히 극복했고, 주의력과 기획 등을 담당하는 뇌의 집행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게임이 약물치료보다 혜택이 더 많았다"고 밝혔다.

 

"노인우울증은 맞춤 치료가 정답"
■대한노인정신의학회 홍보이사 이동우 교수

▲ 인제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이동우 교수

60대 노인이 전 재산을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독거노인에게 써달라고 기탁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외로움과 우울증을 견디기 힘들어 이 길을 선택하게 됐다. 동네 주민들에게 피해를 줘서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노인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치료율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방치된 환자 수도 만만치 않다.
대한노인정신의학회 홍보이사 이동우 교수(인제의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만나 노인우울증의 실태와 대책방안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들어봤다.

- 급증하고 있는 노인우울증,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우울증은 생물학적 요인과 사회심리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때 나타나는데, 이 중 사별, 고독, 경제적 어려움, 각종 질환들로 인한 고통, 빈곤 등이 포함된 사회심리적인 요인의 비중이 커졌다.

노후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도 노인우울증 환자 증가의 원인이다. 자녀세대부터가 노후부양은 국가 및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확립돼 있는데 어떻게 진정한 무병장수를 맞이할 수 있겠는가?

장수하는 노인도 실상은 건강 장수가 아닌 생애 마지막 10년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살고 있는 실정이다. 병고가 깊어지면서 우울증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채로 암울한 노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알아둘 점은 대부분의 기관들이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통해 "노인우울증이 증가한다"고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노인우울증 발생 자체가 증가했다기보다는 우울증으로 인해 치료받는 환자 수가 증가했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 즉 치료율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거다. 하지만 여전히 미치료율도 높아 이 부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 우울증인데 치매와 혼돈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진단적 어려움이 크다고 보면 되나?

노인우울증 환자 대부분이 신체 증상에 대한 호소가 많고 정서적 증상에 대한 환자 보고가 부족해 동반 내과질환이 많은 특성으로 인해 진단의 어려움이 있다. 이는 자칫 우울증상이 간과된 채 인지기능의 저하만이 치료의 관심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노인정신의학에서 충분한 훈련이 되지 않은 전문의들이 간단한 평가 도구만을 이용해 점수가 23점 이하가 나오는 환자를 단순히 치매로 진단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충분한 상담과 진찰 없이 검사도구만을 이용한 진단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병력청취나 환자와의 인터뷰, 각종 검사를 통해 현재의 정신 상태를 세밀히 분석해야만 비로소 정확한 진단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노인우울증 치료에서 비약물요법에는 어떤 것이 시행되고, 치료 시 주의해야 할 점은?

정신치료가 가장 대표적이다. 특히 깊은 무의식 속에서 다루기 힘든 부분은 대인관계 정서치료나 지지적인 치료기법을 많이 시행한다. 

대인관계 치료는 우울증의 발병 소인에 관해 유전학적, 생화학적, 발달학적 그리고 인격상의 문제들을 인정하면서도 특히, 우울증 환자가 현재 겪고 있는 갈등과 대인관계 문제에 초점을 두는 단기 집중치료이다. 대인관계 내의 다양한 문제를 다뤄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하고 대인관계 상황에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정신치료는 환자와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노인환자의 치료에 앞서 치료자가 본인의 개인적인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치료자 스스로가 해결되지 못한 문제거리 등을 가지고 치료에 임한다면 오히려 정신치료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분석이라는 과정을 통해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이 연수교육 과정을 밟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 최근 벤조디아제핀이 알츠하이머 발병위험도를 높인다는 연구결과로 논란이 있다.

논문 한 편으로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데이터 대부분은 캐나다의 GP 즉 1차 의료인들의 진단 및 처방내역을 참조했다. 여기에는 분명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의료진이 항우울제 치료가 적절하지 못한 상태에서 벤조디아제핀을 처방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단연 부적절한 치료가 행해진 것으로 알츠하이머 발병위험도가 높아진다는 게 맞다. 다시 말해 이러한 사례들도 함께 명백히 분석해서 나온 연구결과인지 의문이 드는 게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또 벤조디아제핀은 초기 불안증상을 빨리 완화시키기 위해 부분적으로 처방하는 약물로 일반적으로는 장기투여가 금지된 약물이다. 이번 연구결과만으로 환자가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 항우울제 처방에 앞서 환자의 특성과 약물특성 중 무엇이 가장 먼저 고려돼야 하나?

노인환자들은 특히 다약제 처방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항우울제를 처방할 때 약의 효과, 특유의 부작용, 약물 상호작용을 고려해서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최근에는 부작용이 덜하면서도 효과는 좋아진 새로운 약물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고, 특히 성기능 장애를 동반하지 않는 SSRI도 나와 부작용이 나날이 개선되고 있다.

전문의는 약물의 부작용적 특성과 장점을 함께 고려해 그때그때 환자의 특성에 맞춰 약물 처방 및 치료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 환자의 행복한 삶을 이끌어주는 가장 현실적인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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