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상 불법시술 파문 한달

의사 재교육 프로그램 재정비 시급
의료기기 개발-유통 의사 참여해야

 지난달 초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는 의사 면허가 없는 비의료인이 특정 시술방법을 환자를 대상으로 의사에게 시연해주는 내용의 `환자는 마루타`를 2회 연속 방송했다.
 방송 직후, 의료계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서울 은평구의 한 개원의는 "진단용 의료기기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 치료용 의료기기의 경우 그 제품을 잘 아는 동료 의사 또는 봉직의한테 부족한 제품 사용법 및 시술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나, 시간적 제약 등으로 쉽지 않다"며 "현실적으로 판매상에게 상당부분
배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원칙적으로 의사가 비의료인에게 시술법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분명 윤리적으로 불편한 일"이라고 털어놨다. 반면, 또다른 개원의는 "의사 책임하에 진행된 테크니션의 시술은 위법으로 볼 수 없다"며 "의료기기 장비 도입 시 기계적인 작동법과 일부 시술 방법을
판매상에게 배우는 건 지금까지 통상적인 관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의료기기상 불법 시술파문이 방송사와 의료계 사이의 취재보도 방법과 개인 인권 침해에 대한 잘잘못을 떠나 의사·환자간 신뢰관계에 치명적인 와해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결코 적지 않다.
 방송 보도 한달이 지난 시점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현실적인 해결책 마련에 고심해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의료 장비와 그 시술방법은 사전에 충분한 의학적 이론과 임상경험을 갖춘 의사, 또는 각종 관련 학회 연수강좌 및 워크숍, 3차병원과 연계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사전에 숙지해야 의료사고와 같은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국민들이 이번 사건에서 분노한 이유는 의사가 아닌 비의료인이 환자에게 시술했다는 것과, 더욱이 의사가 비의료인인 의료기기 판매상으로부터 데모시술을 배웠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통해 국내 의료기기 관련 제도, 의사 재교육, 개원가와 3차병원간 교류 등에 대한 전반적인 시스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선, 의료기기 회사 및 유통과정에 대한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외국의 경우 의료기기 회사에 고문 또는 자문의사가 있어 신규 의료기기의 개발에서부터 런칭, 데모시술까지 관여하고 있어 비의료인에 의한 데모시술 문제는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다.
 한 다국적 의료기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본사의 경우 제품개발부터 생산, 시연까지 자문의사가 직접 참여하고 있다"며 "제품 출시 때에는 2, 3차병원에서 충분한 임상을 실시한 후 관련 학회, 세미나, 임상사례 발표회 등을 통해 의사들에게 충분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2년전까지 지방흡입기를 수입해 판매하던 국내 대규모 의료기기업체 한 관계자도 "수입 의료기기의 경우 국내 도입을 위해 식약청 허가에서부터 자문의사를 두고 관련 업무를 진행한다"며 "지방흡입기 수입 당시, 현지 제조업체 기술진과 제품개발에 참여했던 임상의사를 직접 초빙해 국내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교육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 의료기기를 수입 판매하는 국내 군소 의료기기업체나 개인 판매상에게 다국적, 또는 비교적 규모가 큰 의료기기회사 처럼, 의사가 기기 유통과정에 참여하는 경로를 기대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의료기기의 인허가 및 유통과정에서 의사가 참여하도록 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한다.
 더불어 장비 판매 목적으로 불법 데모시술을 하는 판매업자에 대한 정부의 사전·사후 관리 감독도 함께 선행돼야 하고 의사 재교육를 위한 학회, 대학병원, 연구회 등의 세부적이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도 절실하다.
 가정의학과 한 개원의는 "전에 IMS 시술, 보톡스 주사 등의 교육에 참여한 적이 있지만, 일부 분야의 경우 고액을 내고 들어도 시술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아, 잘 아는 동료의사에게 다시 물어봐야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특히 "약물 정보에 대한 교육은 넘쳐나는 반면 신의료기술, 신규 의료기기 및 그 시술방법에 대한 연수 프로그램을 찾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개원의도 "의원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비보험 진료 및 시술이 증가하고 있으나, 이를 연수강좌 프로그램이 못 따라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개원가와 3차병원간 이루어지는 연수교육도 그 실효성이 크지 못한 현실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장은 최근 의료기기상 불법 수술 파문과 관련 "대학병원에서 개원의들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는 있지만, 과별로도 세분화가 심화되면서 실제적인 교육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 봉직의도 "전에 지방흡입술 개원의 연수강좌를 실시한 적이 있지만, 개원의들의 참여가 높지는 않았다"며 "많은 개원의들이 시간적 제약과 교육 내용의 미비점 때문에 3차병원에서 실시하는 교육에 참여도가 높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의료기기상 불법 시술 파문은 근본적으로 많은 의사들이 비현실적인 저수가체계로 인해 심각한 경영악화에 시달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로 인해 많은 개원의들이 수익을 내기 위한 비보험진료 및 시술에 뛰어들면서, 그에 따른 예고된 부작용이 발생한 셈이다.
 사건 발생 한달이 지나면서, 의료기기상 불법시술 파문에 대한 의료계 안팎의 여론은 잠잠해졌다. 하지만 이번 파문이 `의료법 위반`과 `방송의 선정성 및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일회성 논란으로 끝나서는 결코 안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 의료계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정부의 진지한 고민과, 또 의료계의 자정노력이 수반되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의료기기상 불법 수술 파문을 정부와 의료계 모두 피할 수 없다. 더이상 정부와 의료계 모두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는 `공공의 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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