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환자 식대 8년째 3390원...적자누적에 3대 비급여 개선까지 병원계 "못 버텨"

"식대 부당청구로 고초를 겪는 병원장들을 보면서 내 일인 것처럼 안타까웠다. 해서는 안될 일인줄 알면서도, 병원 운영을 위해 위험한 줄타기라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병원계의 현실이다."

식대수가 장기 동결로 병원들이  '벼랑 끝'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현재 병원들이 밥과 국, 그리고 3~4개의 찬으로 구성되는 환자식 1끼를 제공하고 받는 돈은 환자 부담금과 건강보험 급여를 합해 기본 3390원에서 최대 5680원. 이는 지난 2006년 식대 급여화 결정 당시 책정된 금액으로, 지난 8년간 단 한 차례의 인상도 없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병원들은 지난 8년간 비용 손실과 구조조정까지 감내하면서 환자들의 밥상을 지켜냈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수가 동결이 수년째 이어지면서 위탁업체들마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둘 병원을 떠나고 있는데다, 최근 이뤄진 상급병실료와 선택진료비 급여화로 그나마 적자를 돌려 메꾸던 숨통마저 완전히 끊어져 버린 탓이다.

비의료 보장성-포퓰리즘 정책...첫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환자 식사에 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 6월부터다.

이전에는 각 병원들이 각자의 원가에 맞춰 입원환자 식사 가격을 정하는 방식이었는데,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입원 진료비 가운데 식대 부담액이 너무 높아 환자들의 부담이 크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급여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식대 급여화는 '비의료적 보장성 강화'의 첫 사례이자 '포퓰리즘 의료정책'의 시초격으로 꼽힌다.

당시 전문가들은 암 등 중증질환자의 치료비와 약값 등 의료서비스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건강보험재정을 투입해 환자의 밥값을 지원하는 것이 타당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 우려도 있었지만 정부는 정책시행을 강행했다가, 제도 시행 1년반 만인 2008년 1월 식대 본인부담금을 기존 20%에서 50%로 인상했다. 본인부담금 인상의 이유는 전문가들이 이미 경고했던 건강보험 재정의 악화였다.    

 

식대 수가의 적정성을 놓고도 갑론을박이 일었다.

당시 병원들은 종별에 따라 환자식사 1끼당 일반식의 경우 7000원, 치료식은 9000원가량의 식대를 받고 있지만, 식대 수가는 관행수가의 절반 수준인 일반식 3390원, 치료식 4030원에 영양사와 조리사 등 일부 가산을 주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기본식대에 모든 가산이 붙어도 일반식 수가는 최고 5680원, 치료식 수가는 6370원이다.

병원계는 정부 안대로 수가를 정할 경우 병원별로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대에 이르는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맞섰지만, 정부의 뜻을 꺾지 못했다.

수가 재조정을 위한 시스템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다. 식대 급여화는 상대가치점수와 환산지수 조정을 통해 가격 변동요인을 반영해 나가도록 한 다른 의료수가와는 달리, 고정가격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 때문에 매년 진행되는 수가협상(환산지수 결정) 결과도 식대 수가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잘못된 제도설계 한계…병원에만 "참아라"

이 같은 제도상의 한계들은 입원환자 식대 인상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됐다.

첫째는 비의료적 서비스,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태생적 한계다.

한해 식대 급여에 들어가는 건강보험재정은 1조원을 넘는다. 2007년 7053억원 수준이었던 식대 급여는 2009년 9941억원, 2010년 1조 1292억원 등으로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2012년을 기준으로 식대에 투입된 건강보험 재정은 1조 2084억원으로 전체 건보재정의 3.3%를 차지했다.

볼륨이 크다 보니 정부가 정책적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데다, 의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도 아니라서 번번이 재정투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환경 변화요인을 반영할 기전이 전혀 고려되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다.

일반 의료행위의 경우, 매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공급자가 수가협상을 통해 미흡하나마 물가나 인건비 상승률 등을 반영해 해마다 수가를 조정하지만, 식대는 이와 달리 고정가격으로 급여화가 진행돼, 수가 상승이나 물가 상승률 등이 가격조정에 반영되지 않는다.

가격조정기전이 없다 보니 식대수가를 올리려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쳐, 복지부가 식대 수가를 재고시하는 방법 밖에 없다. 병원계가 답답한 상황에서도 정부의 입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낮은 수가는 병원들에 직접적인 부담을 줬다. 식대급여화 이후 상당수 병원들은 큰 부침을 겪었다. 가장 흔한 사례는 식대 급여화가 병원 경영악화와 구조조정으로까지 이어진 경우다.

모 지방소재 A병원이 환자식을 담당해온 영양실 직원 20여명을 대거 해고했던 사건은, 이 같은 병원의 경영 압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당시 병원은 낮아진 식대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는 직영식당 운영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환자식을 위탁으로 전환하기 위해 이 같은 결단을 단행했다. 3390원의 수가로는 인건비와 재료비, 식당 운영비 등을 감당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당시 적지 않은 병원들이 A병원과 같은 선택을 했다. 식당을 직영할 경우, 입원환자가 줄어도 인건비 등 고정비를 줄일 수 없는 구조이다 보니 특히 중소형 의료기관들에서 이 같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적자 누적에 3대 비급여 개선까지...병원들 '넉다운'

그러나 최근에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워낙 장기간 수가가 묶여 있다 보니 위탁업체들 마저 병원들을 떠나고 있는 것.

중소병원계 한 관계자는 "수익악화가 계속되면서 위탁업체들마저도 병원과의 기존 위탁계약을 해지하거나, 신규 계약을 꺼리는 상황"이라며 "병원이 수도와 광열비 등 운영비 일부를 부담한다고 해도, 위탁을 맡아줄 업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간 턱없이 낮은 식대수가를 받으면서도 환자에게 양질의 식사를 적기에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수가 동결이 장기화되면서 더 이상 질 높은 식사를 제공하기 어려운 한계에 놓였다"며 "그렇다고 병상을 접을 수도 없어 답답할 따름"이라고 호소했다.

직영기관들의 어려움도 적지 않다. 식당을 직영 기관에만 제공되는 각종 가산을 받기 위해 식당을 직접 운영하는 형태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단가를 맞추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메뉴를 조정하는 등 자구책을 찾고 있다.

지방 중소병원 관계자는 "입원환자에게 영양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가를 맞추려다 보니 음식 제공량을 줄이거나, 고가의 재료는 메뉴에서 아예 제외하는 등의 선택을 하고 있다"면서 "현실적으로 예전과 같은 식사의 질은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부당청구로 적발된 동료의사를 향해 병원계가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는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병원계 관계자는 "낮은 수가로 환자식을 꾸려나가려다 보니, 일부 병원이 위탁업체와 인력을 돌려쓰거나 하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면서 "부도덕하다기보다는 '어떻게든 해보려다 보니 그랬겠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식대 수가 장기 동결,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식대 급여가 동결되었던 지난 8년간 물가는 22%, 임금은 20%가량 인상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정된 수입 안에서 지출요인만 커지는 모양새로, 결국 환자식 제공에 따른 손실액이 해마다 이같이 누적되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 나쁘다. 지난 8월 시작된 3대 비급여 개선으로 재정 운용 상황이 더욱 여의치 않아진 탓이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 정책위원장은 "그동안은 식대의 적자를 비급여 등 다른 영역으로 보전해 왔지만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경기불황으로 의료기관의 경영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여기에 지난 8월 시작된 3대 비급여 제도개편으로  식대 적자를 감수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식대 급여화는 국민에 대한 보장성 강화 차원에서 접근되어 온 것이나, 건강보험 재정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적정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는 오히려 환자의 치료효과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식대 수가 재조정을 검토한다는 입장이지만 속도가 더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식대 급여화가 시작된 지 4년 만인 지난 2010년 대규모 실태조사를 통해 '건강보험 식대 재평가 및 개선방안' 연구보고서를 냈는데, 이후 이렇다할 후속조치가 진행되지 않은 채 또 다시 4년의 세월이 흘렀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공단 연구가 이뤄진 지 시일이 꽤나 지난 상황이어서, 식대 재평가를 위한 연구용역을 다시 진행 중"이라며 "8월 환자 식대 관련 연구용역에 착수, 12월 마무리될 예정이며, 이를 토대로 식대 수가뿐 아니라 제도 전반에 대해 재검토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식대 수가 현실화에 덧붙여, 매년 물가와 인건비 인상률 등을 반영해 식대 수가를 조정해 나갈 수 있는 가격조정기전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용균 병원경영연구원 연구실장은 "병원환자식에 대해서도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해 그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정책적 기전이 필요하다"며 "식대금액을 상대가치점수로 환산해 물가와 인건비 지표와 연동하는 환산지수를 적용하거나, 건강보험 수가협상시 입원환자 식대를 별도로 협상해 결정토록 하는 등 제도적 기전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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