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
안산단원보건소 공중보건의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고문

30. 응답하라 의료윤리

의사의 공감적 행동이
환자의 신뢰·희망 신경기제 활성화
의사-환자간 상호작용 증진시켜야

의사와 환자 사이의 윤리란 최상의 진료역량을 가지고 효율적인 의사소통과 정확한 의학적 판단을 하고 이를 통해 적절한 임상적 결정함으로써 최선의 진료를 하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의사는 지식만 갖춘다고 충분한 것이 아니라 환자에 공감적 동정적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들이 의사에게 갖는 감정에 따라 치료의 효과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뇌과학에 바탕을 두고 의사 환자 사이를 분석한 파브리치오 베네데티의 이야기를 빌어 의사와 환자 사이의 윤리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환자가 느끼는 통증이나 불편감은 말초신경에서 전해지는 손상의 감각과 심리사회적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그래서 의사들이 환자의 통증만을 살피게 되면 통증이 뇌에 전달되는 상향식 프로세싱만을 고려한 것이고 환자의 정서에 따라 뇌에서 다르게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인한 증상의 변화, 즉 하향식 조절을 고려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향식 통증조절 네트워크는 오피오이드, 도파민, 세로토닌과 같은 여러 신경화학적 경로들이 얽혀 있는 대뇌피질과 피질하 구조들의 복잡한 연결망이며 이들 신경전달물질들은 통증의 전달을 억제하기도 하고 촉진하기도 한다. 환자가 놓여진 사회적인 여건과 기분, 믿음에 따라 매우 다양한 반응이 일어날 수 있어 의사는 증상을 그 자체만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환자의 심리적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

신경과학적 측면에서 환자의 뇌를 연구하여 치료의 과정을 과학적으로 접근한 파브리티오 베네데티는 환자의 뇌에서 벌어지는 네 단계의 행동학적, 생물학적 단계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다. 첫째, 사람은 상향식 및 하향식 프로세싱을 통해 아프다고 느낀다. 둘째, 동기회로 및 보상신경회로가 활성화되며,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셋째, 환자가 의사와 상호작용을 하는 동안 뇌에서는 신뢰와 희망에 관한 기제가 작동한다. 동시에 의사의 뇌에서는 공감과 동정심에 관련되는 뇌 기제가 작동한다. 넷째, 바로 그 치료적인 행위가 환자의 뇌 속에서 기대감과 최근에 밝혀지기 시작한 위약효과에 대한 기제를 촉진시킨다.

우리가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은 셋째와 넷째 단계인데, 의료진과 환자와의 관계설정이 향후 치료의 효과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왜, 어떻게 고통 경감의 추구를 시작하는지 행위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중뇌변연계 도파민 시스템이 활성화 되면서 동기화된 행동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동기화된 행동은 치료자를 찾아가는 것이다. 아픈 사람은 그가 병의 진전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데 아픈 사람의 증상은 상향식 프로세싱과 하향식 프로세싱의 총합이기 때문에 치료자에 대한 환자의 신뢰와 존경, 의사의 공감행동 및 동정행동이 하향식 프로세스에 작용하여 크게 영향을 미친다.

사회신경과학적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로 믿음과 신뢰, 희망, 절망과 무력감 등이 있는데 이런 중요한 정서적 정보들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 제스처나 자세와 관련된 시각, 신체검진을 할 때 느껴지는 촉각자극 등 신체감각정보를 통해 형성된다. 또한 청각과 관련되어 의사가 가지는 동정심과 공감적인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언어적 의사소통의 미묘한 차이는 오피오이드 뉴로펩타이드, 도파민, 콜레시스토키닌 등 수많은 신경전달물질들을 활성화시켜 정서형성에 매우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믿음에 관한 판단은 여러 환경자극에 근거하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얼굴 표정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얼굴이 믿을만 한지 아닌지는 뇌의 편도가 판단한다. 또한 시상하부에서 생성되어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신뢰를 증가시킨다. 절망과 무력감에 관한 연구 결과들은 세로토닌과 노르아드레날린 시스템이 관여함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의료종사자들은 공감적이면서도 동정하는 행동을 취해야만 한다. 이 행동들은 환자에게 신뢰와 희망의 신경기제를 활성화시킴으로써 환자의 뇌를 조절할 것이다. 환자의 내적 심리상태, 즉 기대와 믿음이 치료효과에 기여하기 때문에 치료행위 그 자체는 의학적 치료의 고유한 효과를 의미한다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맥락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마지막으로 환자가 치료의 모든 과정에 대해 아는 것은 치료 결과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데 공개적인 치료집행의 효과가 몰래 제공되는 치료의 효과보다 높다는 실험 결과가 이를 증명해 준다. 환자들이 가지는 기대효과 때문인데 위약효과가 일종의 기대효과를 반영하는 한 예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임상진료 시에는 환자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왜 이 시술을 하는지,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지에 대해 알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환자를 위하는 일이 의사와 환자 사이의 윤리라면 의료종사자들이 환자와의 상호 작용을 더욱 증진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 모든 이야기의 결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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