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록 연구 63%가 제약사 후원 진행...인위적 과장 가능성 우려 일부는 부작용 발표 안해

정부가 공익적 임상연구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구자주도 임상연구(Investigator Initiated Trial: IIT)의 하나인 공익적 임상연구는 특정 산업계나 산업체와 이해관계 없이 학술목적이나 개선된 치료법, 진단법 등을 확인하기 위해 의약품, 의료기기, 의료기술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분석하는 임상연구를 뜻한다.

공익적 임상연구가 중요해지는 이유는 제약사 지원으로 진행되는 임상연구(Sponsor Initiated Trials: SIT)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캐나다 일부 연구자들의 발표에 따르면 ClinicalTrials.gov에 등록된 546개의 의약품 관련 임상연구 중 약 63%인 344개의 연구가 SIT이고, 나머지 202개의 연구가 비영리 단체나 정부 주도 임상연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임상연구가 제약사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점은 SIT가 결과값을 과장해 제품의 부작용에 눈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미국과 캐나다 연구진의 발표에 의하면 SIT가 다른 연구보다 시험대상 의약품의 효과가 비교군에 비해 4배 이상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부정적인 임상결과의 대부분은 출판하지 않고, 인허가를 위해 비교군을 위약(placebo)으로만 설정하거나 통계방법을 다양하게 시도해 효과의 크기를 인위적으로 과장해 표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8월 보건의료연구원 신채민 팀장은 '공익적임상연구의 역할과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발행했다. 신 팀장은 "SIT는 비교군 또는 시험군의 용량을 조절해 가면서 시험군의 독성은 최소화 하고 효과는 극대화하는 시험 결과값만 사용할 수 있다"며 "다기관 임상연구를 수행하되 결과값이 좋은 기관의 임상연구값만 채택해 연구논문으로 출판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양한 임상연구 종료점을 설정해 놓고 가장 이상적인 결과값이 나오는 종료점을 선택해 임상연구 결과를 공개하는 경우도 있다"며 "우호적인 결과값이 나오는 하위그룹을 선택해 해당 결과값이 전체의 값인 것처럼 포장해 논문을 출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다국적제약사인 G사의 항우울제 파록세틴은 임상시험 중 청소년 자살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나머지 결과만을 발표했고, M사의 진통제인 로페콕시브도 심장발작 위험이 4배나 증가했음에도 심장 보호기능이라고 발표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공익적 임상연구 꼭 필요"

기업들이 제품을 출시하기 위한 SIT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보완하려면 공익적 임상연구가 지금보다는 훨씬 많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보건의료연구원 신채민 팀장은 SIT와 공익적 임상연구의 차이는 이해관계가 없는 연구진이 특정 업계의 이익이 아닌 최적의 진료법을 찾기 위해 하는 연구라는 점이라고 밝혔다.

신 팀장은 "SIT는 인허가를 얻기 위한 것으로 그 결과가 산업체의 이익과 결부돼 있어 객관적인 값을 얻는 데 한계가 있다"며 "공익적 임상연구는 의료현장에 도입할 최적의 기술을 찾고 또 이를 토대로 관련 진료지침을 개발하는 데 꼭 필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또 "희귀질환 치료법이나 의약품 등은 제약사들이 개발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공익적 임상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연구가 아니면 임상적 근거를 생성할 계기조차 마련하기 어렵다"며 "공익적 임상연구를 정부가 반드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익적 임상연구가 중요함에도 정부의 지원은 미미한 상황이다. 올해 예산은 약 84억원으로 건강보험급여 총액의 0.02% 수준이다. 지난 7월에 열린 '국민건강 임상연구사업' 발전 방향 모색 토론회에서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은 현재 공익적 임상연구사업을 위한 관심과 정부의 지원은 저조하다고 비판했다.

문 의원은 "국민 한명이 일년에 약 165원을 부담하는 수준"이라며 "미국은 지난 2011년 독립연구수행기관인 환자중심결과연구소(PCORI)를 설립해 연간 약 65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임상근거를 생산하고 있고, 영국도 연간 약1조7000억원의 예산을 임상연구와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공익적 임상연구를 하는 곳은 지난 2010년 사업단체제로 전환한 근거창출임상연구국가사업단(NSCR)이 유일하다. NSCR은 5월 현재 1864건의 논문과 950건의 학술발표와 함께 41건의 임상진료지침을 성과물로 발표했다. 또 11개 질환군 93개 DB 구축과 SCI 논문 1425편을 게재하기도 했다.

NSCR 양훈식 단장은 "2015년부터 국민건강 임상연구사업으로 발전 강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임상연구 자원을 활용한 근거창출 선진의료기술 개발, 비교 임상 효과연구, 공공보건 임상연구 등을 통해 한국인 특성에 맞는 임상근거 창출 및 정책수립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NSCR은 내일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정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내년 3월 사업단이 종료될 운명을 맞고 있는 것이다.

외국은 정부가 나서서 지원

우리나라가 미미한 금액만을 공익적 임상연구에 지원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이나 영국 등은 공공조직을 통해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PCORI(Patient-Centered Outcomes Research Institute)라는 공공조직을 통해 약 6500억원을 공익적 임상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 7월 열린 '국민건강 임상연구사업 발전방향 모색 토론회'에서 테크노베이션파트너스 김효정 부사장은 "PCORI는 국가 우선 연구과제에 기반해 환자, 의료진, 정책입안자 등의 의료적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높은 수준의 임상효과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며 "예방, 진단 및 치료의 비교효과평가를 비롯한 의료 시스템 개선, 커뮤니케이션 보급 연구, 건강격차 고찰 등의 임상효과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영국도 약 1조7000억원의 재원을 투입해 NETSCC(NIHR Evaluation, Trials and Studies Coordinating Centre)라는 조직의 지원 하에 공익적 임상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국가 공익임상연구기관 살려야

국내에서 공익적 임상연구가 정부의 지원도 미약하고 조직마저 흔들리는 상황에 처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의 대응책이 분분하다.

NECA 신채민 팀장은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을 확인하거나 공적인 지원이 불가피한 희귀질환에 대한 치료법 등에 대한 임상연구를 포함해 신개발 유망의료기술에 대한 임상연구 지원과 함께 임상진료지침 개발의 근거생성을 위한 연구수행이 미미했다고 말했다.

신 팀장은 "NSCR이 살아 있어야 공익적 임상연구 분야인 의료기술의 비교효과와 비용효과성 평가를 위한 공익성 임상연구 인프라 구축과 제한적 의료기술에 대한 임상연구 지원, 비교효과 평가 결과를 토대로 한 진료지침 개발 등의 사업을 할 수 있다"며 "정부가 이 분야에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내과)는 공익적 임상연구라는 용어 자체에 오해와 혼선이 존재하므로 이를 먼저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허 교수는 "SIT의 반대 개념인 IIT를 공익적 임상연구라 생각하기도 하는데, IIT는 개인적으로 생기는 연구욕심으로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공익적 임상연구라 부르는 것은 무리"라며 "공익적 임상연구를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지원 임상연구라 바꿔 부르는 것이 현실적이다. 지금까지 국가지원 임상연구라 부르지 못했던 것은 거의 모든 국가의 지원이 신약개발에 집중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국가지원 임상연구는 제약사들이 만든 데이터를 검증하거나 희귀질환에 필요한 연구를 하고, 환자 입장에서 최선의 치료법인지, 국가의 재정규모 등을 고려해 비용효과적인지를 연구하는 것"이라며 "NSCR의 활동을 국민건강 임상연구사업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약개발은 제약사의 몫임에도 국내 공익적 임상연구 재정은 신약개발에 쏠려 있어 공공의료자원의 합리적 분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허 교수의 지적이다.

공익적 임상연구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정부연구개발의 목표가 신약개발, 의료기기개발 등 개발에 집중돼 있으면 안 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질병관리본부 박현영 심혈관·희귀질환과장은 국민에게 더 나은 의료서비스, 경제성분석 등을 하지 않으면 투자확대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박 과장은 의료계가 지금처럼 공익적 임상연구가 중요하다는 주장만으로 투자를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필요한 임상연구 주제를 어떻게 발굴할 것인지, 그 성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등의 임상연구에 대한 체계적인 전략 수립이 필요한데 지금은 공익적 임상연구가 중요하다고만 한다"며 "임상연구 성과물이 국민건강증진이나 의료서비스 현장에 적용되는 우수한 사례 등을 발굴, 공유해 이해 당사자들의 인식 개선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