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시작되는 국가 안전 대진단 사업

16.  환자안전 대진단

이재호
환자안전연구회
홍보이사
울산의대
응급의학과
언론에 의하면 올 하반기부터 국가차원의 ‘안전 대진단’이 실시된다고 한다. 더욱이 국민이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된다고 하는데, 국민이 어느 정도 참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안전 대진단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의 동기부여와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안전 대진단이 관련분야의 이해당사자들을 추궁하고 궁지에 모는 방식으로 전개된다면, 이 사업은 진단보다는 문제점들을 나열하고 겉만 핥는 식으로 끝나고 이해당사자들은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수많은 새로운 규제들이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생겨날 수도 있다. 사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것은 그동안 정부에서 진행한 많은 일들이 비난받을 대상을 정하고 누군가에게 책무를 지우는 방식으로 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안전 대진단은 새로운 사건을 예방하려는 전향적인 관점을 견지해야 하고 이해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일회성이 아닌 주기적인 진단이 필요하고 단기 목표와 함께 중장기적인 계획이 동반돼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사업은 지속돼야 하고 막대한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안전 대진단에 대한 기사에서 환자안전 분야에 대한 기술을 찾아보기 힘든데, 당연히 들어가 있기 때문인지 환자안전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환자안전 문제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안전 사건으로 인한 사망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연구에 의하면, 사망원인의 10위권 안에 있다. 더욱이 '예방가능한 사건'은 많게는 50%가 넘는다. 환자안전 대진단의 머리말에는 ‘우리나라엔 국가차원의 환자안전 현황에 대한 연구가 아직 없다'는 글이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전향적인 안전 대진단 사업에 환자안전이 중요한 부분으로 차지하고 이 사업이 환자안전의 향상에 큰 전환점이 되었으면 한다.

정부는 안전 대진단과 함께 안전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한다. 선진국이 이전부터 안전산업을 양성하고, 안전이 세계적인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는 현 상황에선 조금 뒤늦은 감이 있다.
보다 안전한 기술을 제공하는 산업이 우리나라에서 육성되지 못한 것은 서비스의 제공자나 소비자가 안전보다는 비용을 의사결정의 앞에 두었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선 대체로 안전을 우선시한 제품들은 다른 제품들보다 비싸다. 그리고 대부분 외국제품이다.

많은 병원들은 절대적인 근거가 있지 않는 한 안전을 한 번 더 고려한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기 어렵다. 수가와 비용이 이런 의사결정을 가로막기 때문인데, 국내 의료기기 회사들도 이런 구조에 종속돼 보다 안전한 제품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을 수 없다. 환자안전 대진단과 함께 환자안전 대책이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안전한 도구가 필수적이고 이것은 상대적으로 저렴해야 한다.

환자안전이 의료의 질로서 그리고 경쟁력으로서 자리 잡고, 환자안전산업이 활성화돼야 진단과 함께 치료가 적절히 될 수 있다. 환자안전산업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린이보호용 마개를 사용한다고 해서 약물중독 사건이 발생하지 않거나 환경미화원이 안전띠가 새겨진 형광색 옷을 입는다고 사고를 당하지 않는 게 아니다.

'안전한 도구'를 이용하는 시스템을 안전하게 개선하지 않는다면, 환자안전은 담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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