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기
서울지방병무청
징병전담의사
29. 응답하라 의료윤리
의사와 환자 사이의 윤리

오늘도 신문에는 '의사 A씨'로 시작하는 기사가 올라 있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의사들의 좁은 세계에서 '의사 A씨'의 이야기는 언제나 눈길이 간다. 물론 사회지도층이라고 주목하는 의사 이야기에 사람들의 관심도 뜨겁다. 드물게 미담도 있지만 보통 이목을 끌기 쉬운 건 보다 자극적인 이야기인지라 보통 '의사 A씨'는 파렴치한 의사가 많다. 모 포털사이트에서 '의사성…'으로 검색어를 입력하면 지역별, 전공별로 '성추행', '성폭행'으로 붙어서 자동 완성된다. 작년 모 국회의원은 '파렴치한 의사의 강간죄'라는 보도자료를 돌리며 의사들의 윤리성을 비난하기도 했다. 언론의 이야기만 보면 의사들은 이미 잠재적 성범죄자라고 하기에 무리가 없는 듯하다.

분통 터질 노릇이다. 사적 영역에서 벌어진 사건도 그 주인공의 직업이 의사라는 이유로 굳이 '의사 A씨'로 시작하는 제목을 붙여서 사람들을 자극하기도 한다. 일반 대중들의 의사들의 성윤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강화함으로써, 결국 의사들의 윤리성이 더 의심받도록 하는 결과를 빚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료 현장에서 벌어진 일련의 충격적인 비윤리적 사건들과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의 부재를 되짚어봤을 때, 사람들의 인식과 우려가 마냥 잘못됐다고 항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2012년 발표된 일명 '도가니법'은 그러한 사회의 인식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소중한 아이들을 해칠 수 있는 성범죄만큼이나 진료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성범죄에 대한 위협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다소 과하다고 할 여지는 있지만 의료의 특성상 내 몸을 온전히 맡겨야 하는 입장에서 성적 침해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컸다고 반성해볼 문제이다.

그동안 의료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기능, 행위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수혜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생사를 오갈 수 있는 급박한 의료 현장에서도 성적 침해에 대한 안전 보장은 결코 후순위로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외에도 진단, 치료를 비롯한 의료 전반에 있어서 환자의 권리는 더 이상 의사의 설명과 지시를 일방적으로 듣고 따르는 수준에서 벗어나 광범위하게 확장되고 있다. 이에 대한 의사들의 대응이 앞으로 의사-환자 관계를 결정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의료계는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의사 중심의 고루한 의료체계에 대한 관념에 머물러 있으며 환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했고, 열악한 환경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모두 충실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식의 변명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그 한계에 봉착해 만난 것이 '도가니법'이라는 점을 돌이켜보면, 앞으로도 의사들이 환자를 위한 노력에 소홀할 경우 사회가 취하는 대응은 처벌과 격리의 채찍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많은 이들이 현재 의료계의 난맥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로서 의사가 환자의 편에 바로 서는 것을 말한다. 가장 빠른 길은 환자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권리를 철저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다. 환자의 결정권에 대한 존중, 비밀유지, 철저한 설명과 동의 절차, 의료 서비스 제공에 대한 공정하고 안전한 보장과 같이 다양한 환자의 권리를 존중할 수 있는 윤리적 역할을 강조하며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나간다면 '의사 A씨'라고 새긴 주홍글씨의 굴레는 먼 과거의 이야기로 기억될 날이 오지 않을까.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