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국가 기대 수준 높아... 유창한 영어 실력과 명문의대 교수급 원해

▲ 아랍에미리트 쉐이크 칼리파병원 조감도

개원을 해도 예전처럼 환자가 많지 않아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하고, 봉직의도 흡족하게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 어려운 것이 요즘 의사들의 현실이다. 언제 교수자리가 날지 알 수 없어 막막한 나날을 지내야 하는 대학병원의 펠로우들도 개원의와 봉직의들과 비교해 상황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라는 평가다.

그래서일까 최근 국내 의료계를 벗어나 외국으로 눈을 돌리는 의사들이 부쩍 많아졌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국가에 관심을 보이는 의사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눈에 띄게 좋은 근무조건들이 의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4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메디컬시티에서 근무할 의사를 모집하는 광고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한 헤드헌팅 회사에서 발표한 이 공고에 의사들은 흥분했다. 한국에서의 월급보다 1.5~3배 월급에 비해 낮은 업무 강도, 연 60일 유급휴가, 재계약시 1달분의 보너스, 연간 2회 한국행 왕복 항공권 지원과 저금리 대출, 사택 및 출퇴근 제공 등 조건이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공고를 접한 의사들은 "우리나라에서 낮은 수가로 고생하고, 심평원으로부터 쪼임을 받느니 나가는 게 훨씬 낫다"라는 반응에서부터 "당장이라도 지원하고 싶다. 사우디아라비아뿐 아니라 아랍권 국가들도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라는 등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당시 모집 공고를 냈던 헤드헌팅 관계자는 "많은 의사들이 관심을 갖고 문의를 해 왔는데, 대부분 조건에 만족하는 모양새였다"며 "현재 모집이 완료된 상태"라고 전했다.

좋은 조건에 맞는 수준 높은 사람 원한다

그렇다면 지난 4월의 모집 공고에서처럼 모든 중동지역 국가의 근무조건이 월등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국내에 비해 확실히 조건이 좋은 것은 맞지만 장밋빛 환상을 갖고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는다. 의사전문 헤드헌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초빙닷컴 조철흔 대표이사는 중동국가의 병원 근무가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는 않다고 지적한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생각하면 낭패를 겪기 십상이라는 것.

조 대표는 "의사들은 월급에 가장 관심이 많은데 국내 월급 기준으로 1.5~2배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세금이 소득의 3% 정도만 내면 되니까 실제 월급은 국내랑 비교하면 3배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녀 학비 지원이나 가족 사택 지원, 왕복 항공권 제공 등 복리후생도 굉장히 좋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중동지역 국가들이 원하는 우리나라 의사의 조건은 꽤 까다로운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실력을 요구하고, 서울의대, 연세의대, 가톨릭의대 등 명문의대 출신을 선호한다. 또 Fellow 과정을 마쳤거나 대학병원 교수 출신 또는 해외학술대회 등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준다고 한다.

조 대표는 "실제 외국에 나가고 싶어 하는 의사들이 꽤 많다. 하지만 낭만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며 "중동은 한 여름에도 기온이 40℃ 이상 올라가고, 또 술을 갖고 있다가 걸려도 그대로 추방되는 등 우리나라에서 생각할 수 없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 만일 가족이 함께 움직인다면 이 또한 고려할 부분에 넣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동지역에 병원이 진출했던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중동 국가에서는 서울의대, 연세의대 출신의 교수급 의사를 원하고, 그런 수준의 스펙을 갖춘 국내 의사들은 중동에 와야 할 이유가 없고, 중동에 오려 하는 의사들은 중동 국가에서 원하는 스펙이 안 되는 것이 현재 국내 헤드헌팅 시장의 딜레마"라고 말했다. 

대체로 국내 의사들은 중동국가들을 우리나라보다 한단계 낮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의사면허가 있고 영어만 조금 구사할 줄 알면 별다른 조건 없이 진출할 수 있을 것이란 착각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바이에 진출해 있는 한 관계자는 "중동국가를 낮게 보고 지금 받는 월급보다 적어도 4~5배 이상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거들먹거리는 의사도 종종 있다"며 "사우디아라비아등 몇몇 국가는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국가가 절대 아니다. 두바이도 미국, 유럽 의사들이 많이 있어 국민들 눈높이가 상당하다.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해외 진출 관련 업무를 하는 컨설턴트들은 국내 의사들의 영어실력을 좀 더 끌어올려야 한다고 꼬집는다. 의사들 스스로는 영어를 잘한다 생각하지만 실제 현지 인터뷰에서 많이 떨어진다고. 실제 중동에 있는 병원에는 미국이나 유럽, 인도 의사들이 많아 이들과도 의사소통이 자유롭게 될 수 있는 정도가 돼야 하는데 국내 의사들 실력은 한참 부족하다고 한다. 만일 진료과가 상담을 많이 하는 정신건강의학 등이면 영어는 그야말로 유창해야 실력을 갖춰야 한다.

진실을 알면 아픈 것처럼 중동 국가에 우리나라 의사들이 진출하게 되는 배경을 알게 되면 한껏 높았던 콧대가 조금 부끄러워진다. 중동국가에서 선호하는 사람은 미국의사라고 한다. 대부분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들여왔기 때문에 미국의사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사들은 중동에 있는 병원에 가려 하지 않는다고. 미국 다음으로 좋아하는 국가는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의사들인데 이들도 미국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중동국가 병원에서 근무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미국, 유럽을 거쳐 아시아권인 우리나라에 기회가 온 것이란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할 상황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류 덕분으로 우리나라 의료의 우수성을 검증받았다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라는 얘기다.

상호 의사면허 인정이 필요...먼 얘기

국내를 벗어나 외국으로 진출하려는 것은 한번의 유행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질 것 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개원가가 어려운 것은 물론 의사수도 많아져 과거처럼 좋은 시절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제 의사들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공식적으로 상호 의사면허를 인정하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아시아권에서 싱가포르는 세계 최고 160개 의과대학 졸업생에 한해서로 면허를 개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서울의대, 연세의대, 고려의대 등 3곳만이인정된다. 중국, 몽골, 러시아 등 아시아권에서는 병원 대 병원 간 MOU를 체결해 우회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택하고 있으며, 1년 단위로 갱신하거나 일정 기간의 계약기간을 설정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많은 의사가 미국의사시험(USMLE)에 응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근무 여건이 좋은 것이 중요한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전공의 수련을 마친 한국의사들의 연봉은 약 10만 달러(1억원) 정도며 미국 의사들의 경우 12만 달러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몇 년 전부터는 중국에서 진료하는 의사가 많아졌다. 대부분 피부·미용성형 분야의 병원들이 진출해 자신들이 근무하거나, 혹은 중국에서 성형을 주로 하는 병원들이 한국 의사들을 채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체로 월급은 800~2500만원 사이, 주 6일 근무, 매월 2개월마다 7일간 휴가에 왕복 항공권 제공, 거주 아파트 제공 등이 조건이다.

해외로 진출하는 병원 따라 해외 근무

최근에는 병원이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아져 병원에 근무하다 외국병원에서 근무하는 기회를 얻게 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지난 13일 서울대병원은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실과 왕립 쉐이크 칼리파 전문병원(SKSH: Sheikh Khalifa Specialist Hospital)과 5년간 위탁운영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 서울대병원과 쉐이크칼리파병원 위탁경영 협약식 장면

라스 알 카이마에 있는 쉐이크 칼리파 전문병원은 248병상 규모의 비영리 공공병원인데 서울대병원 의료진들이 참여하기로 했다. 이 병원은 암, 심장질환, 어린이질환, 응급의학, 재활의학, 신경계질환 등에 중점을 둔 3차 전문병원으로 알려졌다.

오는 11월 암 및 심장질환 진료 등 1차 개원에 이어 내년 4월 모든 진료과에서 진료를 시작할 예정이다. 서울대병원측은 "1420명 규모의 병원 인력 중 약 15~20%를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내에서 선발하며, 나머지는 현지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쉐이크 칼리파 전문병원 위탁 경영 발표가 나자 서울대병원의 많은 의사가 호기심을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병원 내과 한 교수는 "다들 '나도 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분위기도 있고, 그래도 서울대인데 우리나라가 낫겠지 하는 의사도 있다"며 "들리는 얘기에는 모집 인원의 50% 이상이 채워졌다고 하니까 관심이 많은 것은 많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고 전했다.

또 "근무조건에 모두 관심이 많은데 병원에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헤드헌터회사에 전화를 해 자신의 몸값을 시뮬레이션 해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대체로 2.5~3배 정도 되는 것 같다"며 "쉐이크 칼리파병원에서는 진료만 하는 게 아니고 위탁경영이라 관리자급 의사는 신참의사들을 관리해야 하니까 일반의사와는 몸 값 차이가 꽤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몇몇 교수는 5년 동안 파견 나가는 것은 좋지만 돌아왔을 때 보장이 마련된 것이 없어 꺼리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의 연구하던 일들이 다 끊기게 되고 또 5년 후 돌아왔을 때 포지션에 대한 확신이 없어 꺼리는 사람도 꽤 있다"며 "병원측에서 이 부분에 대한 논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서울성모병원도 아랍에미레트의 수도 아부다비에 건강검진센터를 건립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13일 승기배 원장 등을 비롯한 고위관계자들이 아부다비를 다녀왔고 곧 운영계획과 의료 인력 파견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