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계, 실질적 도움 없어... 큰 틀에서 제도 정비 논의 있어야

 
공단이 '사용량 약가 연동제'의 애매했던 부분을 명확히하고 절차를 투명하게 만들겠다며 지난달 29일 '사용량 약가 연동 협상 세부운영지침'을 발표했지만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많이 팔릴수록 약가를 인하하는 제도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하기 때문일까.

구체적인 항목 설정으로 협상 유형별 청구액 분석 기준 등 애매한 부분은 줄었다는데 공감했지만 결국 약가가 깎인다는 점에서 불만은 여전했다. 법률전문가는 세부지침에 입법상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부담을 덜었다는 공단의 주장이 무색한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세부지침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고 이에 대한 업계의 반응과 공단의 입장 등을 들어봤다.

 
공단 "제도 이해 도움될 것"

이번 세부지침은  지난해 말 협상대상 기준 변경과 유형 간소화 등 제도개선으로 인한 혼선을 방지하고 협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제정됐다.

주요 내용은 △협상 유형 △유형별 청구액 분석 기준 △협상제외 약제 △협상참고가격의 산정 △협상 결렬 시 재협상 절차 등을 상세하고 명확하게 규정한 것이다.

먼저 제4조 '협상 유형'에서는 사용량 약가 연동 협상의 유형을 가·나·다로 분류하고, 각각 협상대상 약제의 기준을 제시했다.

또 제5조 '청구액 분석'은 각 유형별로 청구액의 분석 기간과 시점, 세부기준 등을 명시했다.

제6조 '협상대상 제외약제'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협상에서 제외한 연간 청구액 합계가 15억원 미만 동일제품군과 저가의약품 및 퇴장방지의약품 등을 기술했다.

제9조 '협상참고가격의 산정'은 각 유형별 협상가를 산출할 수 있도록 산식을 제공했으며, 약제급여목록표 개정에 따라 상한금액의 변경이 예정된 경우 변경될 상한가에서 인하한다고 규정했다.

또 12조 '협상 결렬 시 조치'에서 사용량 협상이 결렬된 약제에 대한 재협상 절차를 업체에 통지하고, 환급액 환수에 대한 계약을 업체와 체결키로 했다.

환급액은 납부기한까지 공단이 정한 계좌로 납부하되, 이를 지키지 못하면 연 20%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공단 보험급여실 이종혁 차장은 "운영지침 자체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큰 그림은 작년에 개정된 내용이고 이번 세부지침은 제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것"이라며 "협상 테이블에 와서 무엇을 해야할 지 전혀 모르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존에 요양급여기준과 약제조정기준 등에 의존해 협상을 했다면 이제 사용량 연동 협상에서 혼선이 있을 수 있는 부분(청구액, 분석대상기간 등)을 확실히 했다"고 설명했다.

제약계 "실질 도움 없어…수정 필요"

이번 세부지침과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공단은 제약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지만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사항은 별로 없어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부운영 지침대로 협상을 진행하며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업체와 충분한 의논을 거쳐 수정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단 산식의 구체화와 유형별 기간 명시 등은 사용량 약가 연동제에 대한 예측성을 높일 것으로 보이며, 특히 세부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에 대해 업계의 이해를 돕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제약사 의견을 반영해 세부운영지침이라는 게 나오긴 했지만, 제도 자체가 약가 인하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고 전했다.

제도 자체에 대한 불만도 제기됐다. 한 제약사 임원은 "정부는 신약을 개발하라고 독려하는데 잘 팔리는 신약을 만들어도 더욱 힘들어지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연구비용을 투자해 약을 개발하고 더 잘 팔기 위해 추가 임상을 통해 적응증을 추가하려고 하면, 적응증이 추가될 때 잘 팔릴 거라고 협상에서 약가를 인하하고 실제로 확대된 적응증을 통해 판매가 잘되면 또 인하하는 등 규제가 지나치다는 것.

추가 임상에 대한 혁신적 가치는 인정해줘야 하는데 이마저도 약가인하의 근거로 만들어 신약개발 의욕을 꺾는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해외에 진출하려면 국내 약가가 반영되기 때문에 약가를 깎을수록 수출에도 불리해진다고 덧붙였다.

또 일본은 적응증이 추가되면 오히려 약가를 인상하는 경우가 있고, 올해 100억원을 팔면 내년에 더 잘해서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한데 이를 막는 것은 부당하다고 부연했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측은 "사용량 약가 연동제도의 과도기에 이 같은 세부지침 및 규정에 대한 정비가 이뤄진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필요성을 공감하며 앞으로 협상에 있어 공정성과 합리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세부지침과 관련된 내용 외에도 커다란 측면의 제도 정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추가적인 논의를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세부지침에 담지 못한 예외사항, 불합리한 내용에 대해서는 향후 협상에서 충분히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제약협회 측은 "사용량 약가 연동제는 본질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번 세부지침은 내부적인 운영지침을 구체화 한 것에 불과하다"며 "협회는 근원적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건의서를 제출한 상황이고 향후에도 업계의 의견을 모아 지속적으로 의견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조건 환급계약은 입법상 오류"

세부지침이 법리적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법무법인 태평양 이경철 변호사는 "약제의 결정 및 조정기준(보건복지부고시 제2013-209호)' 제8조 2항 4호에서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재협상 타결 시 협상이 지연된 만큼의 재정 지출분을 건보공단에 환급하는 것을 조건'으로 합의토록 했는데, 이는 '할 수 있다'는 재량행위지만 이번 세부지침의 12조 2항은 '계약을 업체와 체결한다'고 명시한 강제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재협상을 해야 하는 원인이 업체 측에 있을 때도 있지만 관련 법의 해석을 놓고 의견이 달라 어느 쪽이 원인인지 불분명한 경우(판단을 법에 맡겨야 하는 경우 등)가 있는데 계약을 강제하면 상위법에 맞지 않는 '입법상 오류'로 볼 수 있다는 것.

물론 운영에 있어 재협상의 원인이 불분명한 경우 공단이 이를 감안해 예외적으로 환급계약을 안해도 된다는 방식으로 운영한다면 제약사에 불이익은 없겠지만 법리상으로 문제가 될 수는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단 이종혁 차장은 "상위 규정에도 재정지출분에 대한 환급을 조건으로 제약사와 계약을 할 수 있게 돼있다. 공단 입장에서는 계약을 하지 않고 협상했는데 나중에 업체가 환급을 안한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며 "담보를 받으려면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변호사는 세부운영지침의 제9조 협상참고가격의 산정에서 '약제급여목록표 개정에 따라 상한금액 변경이 예정된 경우 변경될 상한금액으로 한다'는 부분은 약가 변경 시점에 따른 인하율 적용이 문제된 보령제약 스토가 사례를 의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스토가는 보령제약과 공단이 합의한 내용을 복지부가 수용하지 않고 복제약 가산기간이 끝난 금액에 사용량에 따른 인하율을 적용해 법정 다툼이 일어난 사례다.

이 부분에 공단 이 차장은 "스토가 때문에 넣은 것이 아니다. 예전부터 기등재목록 약가가 변경될 예정이 있는 경우 이렇게 해왔으며, 이번에 명확히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제10조, 제11조의 경우 협상 약제가 보험재정에 미친 영향 등을 분석해 협상 참고 가격을 보정할 수 있고, 보험재정에 순기능인지 역기능인지 협상테이블에서 확인하던 부분을 명문화한 것은 제도의 취지를 살린, 필요하고 타당한 입법이라고 덧붙였다.

단 전체적인 통계를 볼 때 보험재정에 악영향을 미친 품목이 아니라 오히려 순기능을 한 품목은 협상 참고가격을 보전하는 정도가 아니라 협상 약제에서 제외하는 등 혜택을 명시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사용량 약가 연동제와 관련해 공단 이 차장은 "회사 측면에서 보면 약가를 인하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감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공단은 보험재정을 관리하는 보험자 입장에서 제도를 운영하는 측면이 있기에 이런 부분에 대한 배려가 서로 있어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또 "무조건 제도 자체가 없어져야 하고 과도한 규제라고 하면 안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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