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
의료윤리연구회 회장
연세이비인후과 원장

28. 응답하라 의료윤리
의사와 환자 사이의 윤리

“잘 알지 못 하고 잘 할 줄 모르면 
환자에게 정직하게 말하고

 환자를 위해 더 도움이 될 의사를 
권유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유능한 의사란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할 줄 아는 의사이다."
알렉산드리아에 최초의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고대 해부학의 효시라고 일컬어지며 현대에도 통용될 만한 건강의 정의를 밝힌 헤로필로스(Herophilus, 335-280 B.C.)의 경구다.

순수 과학자 한 분이 질문을 한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들어보면 의사에게 너무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면 겁이 나서 다시 그 병원에 가기 싫어진다고 하던데, 그런 경우도 있으신가요?" 후배 개원의들로부터도 '환자에게 과연 어디까지 설명을 해 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고민을 자주 듣는다. 이렇게 답한다. '이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환자가 병원에 온다, 위로 받기 위해서거나 혼나기 위해서'

아직 서투르던 개원 초기에 만성 중이염, 노인성 난청과 이명으로 내원한 어르신의 청력검사 결과에 대해 “상태, 연령 그리고 기간을 고려할 때 완치나 증상 호전(cure)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노화와 함께 청력기능의 저하와 증상 악화의 진행을 최대한 늦추고 줄이는 선에서 장기적 관리(care)만 가능하다”고 담백하게 설명했다. 얼마 후 '의사가 환자에게 일말의 희망을 줘야지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면 환자의 실망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당신한테 진료를 받고 며칠 동안 한잠도 못 잤다'는 비난조 편지에 당황했고 '그럼 완치나 증상 호전의 가능성이 매우 희박함에도 거짓말을 해달라는 말인가'라는 억울함과 섭섭함을 느꼈다. 이후 의학적 사실이 모두가 아님을 깨닫게 됐다.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본인이 불편이나 고통이라는 증상(symptom)을 겪고 느끼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인터넷의 의학 정보에서 환자 스스로 도움을 받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일단 의사에게 보였으니 무조건 다 좋아질 것이라 희망할 뿐이다. '환자인 나는 신경 안 쓰고 의사가 하라는 대로 약 먹으라면 약 먹고, 수술하라면 수술 받아 병이 낫겠지' 하는 마음이 왜 안 들겠는가?

예를 들어 장기적인 흡연과 음주의 결과로 후두암에 걸린 환자의 복잡미묘한 회한의 표정을 본 적이 있는가? 이미 수년 전에 진단을 받고 무작정 아무런 치료를 안 하고 버티거나, 경제적 사정으로 미루다가 상태가 악화됐을 때의 참담한 표정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게 될 줄 몰랐을까? 이미 다 알고 있었으나 어쩔 수 없는 사정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와 같은 환자의 불안과 머뭇거림과 덧없는 희망은 의학의 현실적인 한계와의 불일치만큼 후회와 좌절과 분노가 되어 애먼 의사에게 되돌아 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부정적이다.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등등 온갖 소소한 지시와 간섭이다. 예후(prognosis)라는 것도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르고 치료에 적극 협조를 하면 '조금' 좋아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이런저런 합병증이나 후유증에 '크게' 시달릴 것이란 내용이니 거의 협박으로 들릴 수 있다. 질병의 원인이나 진행 경과 설명 역시 환자가 본인의 증상에 주목하지 않았고 결정적 시점에 적절하고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결과로 현재의 증상이나 질병이 자리를 잡았다는 내용으로 '환자 당신이 그동안 제 몸을 잘 보살피지 않아 이리 되었다'는 책임추궁으로 받아들이는 환자도 많다.
 '환자-의사 관계'의 핵심은 '신뢰'이다. 신뢰는 성공적인 '공감과 소통'을 통해 쌓여가며 그 표현 방법은 의사의 태도와 표정과 말투가 전부다. 의사에게 공감이란 환자의 고통, 분노, 불안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자에게 표현하는 것이고, 소통이란 '진단과 치료와 관리 그리고 예후'라는 비대칭적인 의학 정보를 환자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는 것이다.

공감과 소통이 중요한 이유는 환자가 현재 본인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자기 결정(autonomy, informed consent)을 하고 동기유발(motivation)이 돼 치료에 자발적으로 동참(participation)해야 최선의 의료를 실현할 수 있고, 만에 하나 갈등이나 분쟁이 생기더라도 이를 최소화할 의사의 유일한 방어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직과 용기'가 최선의 방편이란 사실을 경험을 통해 확신하게 됐다. 다만 일방적이고 기계적인 최후통첩이 아니라, 측은지심으로 치료자의 안타까움과 일말의 희망을 담아 전달해야 할 것이다.

"치료란 지금 어떠냐가 아니라 앞으로 어찌 될 것이냐를 대비하는 일입니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 하신다면,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끝으로 맨 앞에 언급한 헤로필로스의 경구에 몇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최고로 유능한 의사란 본인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의사이다."

"내가 '잘 알지 못 하고 잘 할 줄 모르면' 환자에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정직, 환자를 위해 더 도움이 될 의사를 권유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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