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3주년특집 -상] 건강불평등 이슈 대두...영국·미국 등 정책적으로 앞서

 
사는 동네에 따라 건강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됐을 때 사람들은 "그럴 수 있지"라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같은 맥락을 가진 연구결과가 지속적으로 발표되자 "뭔가 문제가 있구나"로 서서히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학력에 따라 건강의 격차가 벌어지고, 사는 동네에 따라 수명이 차이나는 등 원인들이 밝혀지면서 '건강불평등(health inequality)'이 이슈로 대두됐다. 
 
건강불평등이란 건강에서 나타나는 개인들이나 집단들 사이의 차이(difference), 변이(variations), 격차(disparities)를 말한다. 사회적 건강 결정 요인에 따라 질병 이환율이나 사망률의 차이가 생기는 것을 건강불평등이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동근 연구원은 "건강불평등은 건강불형평(health inequity)과는 구분된다. 건강불평등이 측정 가능한 양적 차이를 나타내는 수량적 개념이라면 건강불형평은 가치판단을 내포한 윤리적, 도덕적 개념"이라며 "건강불평등은 인구 집단의 사망 내지 질병상태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을 통해 밝혀져 왔다"고 말했다. 
 
 
의료사회학자들은 건강은 가치 있는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이고 따라서 건강 불평등은 곧 정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건강불평등 논란이 대두되기 전까지는 건강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책임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건강은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요인이 한꺼번에 작용해 개인의 책임으로 묶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가톨릭의대 맹광호 명예교수는 건강과 질병은 신체적 병리현상 이상의 여러 가지 다양한 요인들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말한다. 맹 교수는 "1974년 캐나다 정부가 발표한 캐나다 국민의 건강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일명 Lalonde 보고서에서 건강결정요인을 생물학적요인, 환경, 생활양식, 보건의료로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정부가 개인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개인과 집단의 건강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경제적 환경요인인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social determinants of health)'이 2008년 발표됐다. 
 
WHO가 발표한 사회적 결정요인은 10가지인데 △수입 및 사회적 수준 △교육수준 △물리적 환경 △취업 및 작업조건 △사회적지지 체계 △문화 △유전적 요인 △개인 생활행태 및 극복기술 △의료서비스 △남녀 성별차이이다.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 중 의료서비스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 같지만 사실은 극히 제한적이어서 또 한 번 논란이 되기도 했다. 맹 교수는 "지난 2004년 미국 위스콘신주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개인의 생활행태 요인과 사회·경제적 요인이 각각 40%였는데 물리적 환경과 의료접근성 요인은 각각 10%였다"며 "건강에는 사회문화적 환경요인이 의료서비스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WHO도 건강결정요인의 개선 없이 사회 
 
계층 간 건강불평등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고 나섰다. 특히 이런 일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나섰는데 이것이 바로 '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다. 
 
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란 낮은 소득과 교육수준 등을 개인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개선하거나 해결할 수 없어 정부가 개입해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1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WHO는 회원 125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관한 리오 정치적 선언(Rio Political Declaration on Social Determinants of Health)'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국민건강 문제를 더 이상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보다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의료사회학자들을 중심으로 건강불평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외국의 연구를 소개하는 등 논의의 불을 지피고 있다. 또 보건복지부도 지난해 '한국의 건강불평등 지표와 정책과제'를 정하고 건강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뿐 아니라 지난 2003년 5월에는 한국건강형평성학회가 창립돼 건강불평등을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키기 위한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고학력자 많은 대도시 기대여명 농촌보다 길어
서울·전남 7.8년 차이…암·뇌혈관질환 사망률도 이미 격차
 
'건강불평등'이란 키워드가 생기기 전까지는 학력 수준과 자살, 사는 곳에 따른 건강상태 등의 상관관계는 그저 단일변수였다. 하지만 건강불평등이 하나의 원인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건강과 얽힌 복합변수를 살피는 움직임이 바빠졌다. 
 
정부도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통해 '한국형 불평등 주요 지표 현황'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올해도 건강불평등을 의미하는 지표 선정과 해결책 등을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보사연 김동근 연구원은 "건강결과의 주요 지표로 건강 및 유병상태, 기대여명, 건강수명, 총 사망 불평등, 주요 사망원인별 사망 불평등, 자살생각, 자살시도 등을 선정했다"며 "주관적 건강에 대해서는 자가평가 건강수준 조사를 통해 나쁜 자가평가 건강(poor self rated health) 경험률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보사연이 발표한 건강결과 주요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건강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가늠할 수 있다. 기대여명은 지역별로 불평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16개 시도별로 남성의 출생시 기대여명은 2000년에 서울이 71.3세로 가장 길고, 전남이 63.5세로 가장 짧았다. 7.8년이라는 격차가 났다. 
 
2000~2010년 사이 모든 지역의 기대여명이 증가했고 특히 기존에 저조했던 지역에서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하지만 여전히 2010년에도 서울의 기대여명이 76.2세로 가장 길었으며, 전남이 71.2세로 가장 짧았다. 건강수명도 서울이 길고 지방이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서울이 가장 길었고 전남지역이 가장 짧은 것으로 조사됐다. 
 
암이나 뇌혈관질환 등으로 인한 사망률에서도 건강불평등은 이미 문제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30~44세, 45~64세 남녀 모두에서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암 사망률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 2010년 45~64세 남성중 교육수준이 중졸 이하인 집단의 십만 명당 암 사망률은 338명, 고졸인 집단은 209명, 대졸 이상인 집단은 162명이었다. 여성도 각각 127명, 92명, 94명이었다. 
 
김 연구원은 "65세 이상 남녀 모두 2000년까지는 교육수준이 높은 계층에서 암 사망률이 높았으나, 2010년에는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의 암 사망률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며 "45~64세 남성에서 암 사망에서의 절대적 불평등은 감소했지만 상대적 불평등이 감소하는 경향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남성에서 대졸 이상인 집단에 비해 중졸 이하인 집단이 암으로 사망할 위험은 1995년에 약 1.8배 높았으나, 2005년에는 2.1배 높았고, 여성에서는 1.2배에서 1.4배로 증가했다"며 "65세 이상에서도 남성과 여성 모두에서 상대적 불평등은 증가하는 경향이 관찰됐다"고 우려했다. 
 
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도 30~44세, 45~64세, 65세 이상 남녀 모두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뇌혈관질환 사망률이 높아지는 뚜렷한 경향을 보였다. 
 
2010년 45~64세 남성에서 교육수준이 중졸 이하인 집단의 십만 명당 뇌혈관질환 사망률은 72명, 고졸인 집단은 35명, 대졸 이상인 집단은 21명이었다. 여성에서는 각각 27명, 16명, 9명이었다. 65세 이상에서도 초졸 이하 집단이 중졸 이상 집단에 비해 사망률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건강불평등 연구에서 정부가 지표로 선정한 자살사망 발생률은 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44세 집단에서 교육수준에 따른 자살사망률은 남·여 모두에서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확연히 높았다.
 
1995년부터 2010년 사이 학력이 대졸 이상 그룹에 비해 중졸 이하인 그룹의 자살률 비율을 검토했을 때, 여성에서는 2.70→ 5.27 → 6.90 → 8.09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으며 남성에서는 9.67 → 10.05 → 9.48→ 7.12로 증가했다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45~64세 집단에서 교육수준에 따른 자살사망률은 남여 모두에서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확연히 높았다. 1995년부터 2010년에 걸친, 학력이 대졸이상 그룹에 비해 중졸 이하인 그룹의 자살률 비율을 검토했을 때, 여성에서는 2.00→3.00 →2.05→1.79로, 남성에서는 3.14→ 3.64 →3.76→3.28로, 남/여 모두에서 증가했다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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