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의사가 운영하는 산후조리원, 운영 미숙으로 경영난
사립 업체와의 경쟁에 밀리고, 이제는 '공공' 산후조리원까지 방해
열악한 산부인과 경영 상태에 유일한 수익 수단인데, 규제만 자꾸 늘어


예전에는 아기를 낳으면 친정엄마가 봐주는 풍토가 있었지만, 이제는 산후조리원에서 2~3주간 머물며 전문적인 산후관리를 받는 산모들이 많아지고 있다. 수요가 늘면서 공급 역시 늘어가고 있다.

특히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의원은 적자를 면치 못하는 반면, 2주 이용료가 평균 200~300만원을 호가하는 산후조리원의 경우 남는 장사라는 후문. 이때문에 산부인과의원은 개원을 하지 않고 점점 폐업률이 높아지고 있지만, 산후조리원은 우후죽순으로 늘어가고 있는 상태다.

 

▲ 산후조리원 내부 모습.(위 기사내용과 관계 없음)

실제 메디칼건물을 세우면 가장 먼저 산후조리원이 입주하고, 이들은 분만시설을 갖춘 산부인과가 들어서길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

기다리다 못한 몇몇 산후조리원들은 임대료를 2~3년 대납해주는 조건으로 바로 밑에 층에 산부인과의원을 입주시키는 사례도 있다.

뿐만 아니라 적자에 시달리는 산부인과들이 타개책으로 산후조리원을 개업하기도 한다.

산부인과의사가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산모들에게 신뢰와 인기를 받아 승승장구하는 곳도 있으나, 많은 병원 내 산후조리원들은 '운영 미숙'으로 수십억원대 빚더미에 앉기 일쑤다.


현재 산부인과를 운영 중인 A원장은 분만 등으로 인한 저수가 보전을 위해 산후조리원을 바로 윗층에 개설했다. 시설, 인테리어, 간호사 고용 등 막대한 비용 투자를 위해 A원장은 빚을 내야 했지만, 산후조리원 수익 기대에 부풀어 걱정은 접어뒀다.

하지만 A원장은 의원에서 주로 진료를 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진료실장,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에게 산후조리원을 맡기다시피하다 보니 엉망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A원장은 "위생상태도 불량했고 친절면에서도 상당히 미흡했다"며 "산모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후에서야 이를 깨닫게 됐고, 산모들의 커뮤니티에 '블랙리스트' 산후조리원으로 꼽히는 불명예도 얻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관리에 있어서 산후조리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데려다놨지만, 원장이 관심을 두지 않아 엉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며 "의원 경영난을 개선해보고자 마련한 것이 오히려 빚만 더 늘린채 이미지만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이곳을 이용했던 B산모는 "아기를 A의원에서 낳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용했다"며 "차라리 의사가 아니어도 전문적으로 관리해주는 산후조리원이 낫다. 요즘에는 시설 좋은 구립, 공공 산후조리원도 생겼다고 하는데, 이러한 곳이 늘면 산모들은 의사가 운영하더라도 이미지가 안 좋은 곳은 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설에 치이는 산부인과의원의 산후조리원...이제는 '공공'에도 밀린다

▲ 송파구립산후조리원 전경.

현재 송파구에서는 전국 최초로 공공 산후조리원과 어린이집을 갖춘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를 운영 중이다.

올해 2월 개설된 공공 산후조리원은 2주 이용료가 190만원으로 민간 시설에 비해 저렴하지만, 시설은 최고급으로 꾸려졌다. 서울대 간호학과와 업무협약을 맺어 산모건강관리 표준 프로토콜을 마련했고, 산모실엔 전동 유축기, 수유 쿠션, 노트북 PC, 적외선 치료기가 신생아실은 황달 측정ㆍ치료기, 신생아 전용 욕조, 고압 멸균 소독기, 자외선 소독기 등이 갖춰졌다.

뿐만 아니라 좌욕실과 피부관리실 등 모든 시설은 추가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으며, 산부인과 전문의와 간호사가 상주하며 임신 확인부터 출산까지 전 과정을 관리해주는 등 서비스 질도 높은 편.

박춘희 구청장은 "전문성과 공공성을 겸비한 센터 운영으로 올바른 출산 문화와여성 건강관리의 롤모델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용산구 역시 '공공 산후조리원'을 신설하는 부분을 검토 중이며, 전라남도 역시 대규모 공공 산후조리원 개설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해당 지자체와 전남도가 이용 비용의 일부를 최대 100만원까지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C 산부인과개원의는 "개원의들이 다소 미숙한 산후조리원 운영으로, 전문성을 갖춘 사설기관과의 경쟁에서도 지기 일쑤"라며 "공공시설과의 경쟁은 일단 '가격'에서부터 차이가 나므로 바위로 계란치기"라고 울상을 지었다.

이어 "우리도 환자입장에서 봤을 때 가격을 낮추고 싶지만, 정부 지원 하나 없이 적자를 내며 운영 중인데 여기서 더 낮출 수 없다"고 토로했다.

주변에 싸고 시설 좋은 곳이 들어오면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씁쓸해하며, "사설기관, 특히 산부인과의사들의 전문성을 믿고 산후조리원에 대한 재정, 정책적 지원을 먼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 시민단체 전문가 역시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시설을 만들고 극소수 산모들만 반값 산후조리원을 이용하게 하는 방식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라며 "산모 도우미 파견제도나 사설 산후조리원의 관리 등을 통해서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훨씬 비용효과성이 뛰어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운영 어려움 넘어 '규제'까지 산부인과의사들의 산후조리원 '발목'

경영 미숙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산후조리원 운영시 수많은 규제들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고. 최근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뿐만 아니라 대한의사협회에서도 이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의협에서 보건의료분야에서 개선돼야 할 규제를 정리한 결과 총 54개가 나왔으며, 이중 "산부인과 기준 병상 규제를 개선하고 산부인과의사들이 운영하는 산후조리원 관련 규제들도 철폐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한 산부인과의사회는 산부인과의사가 산후조리원도 함께 운영할 경우 '산후조리원의 간호인력 기준'을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모자보건법 시행규칙에 따라 산후조리원의 1일 평균 입원 영유아 7명당 간호사 1명을, 영유아 5명당 간호조무사 2명을 둬야 하며, 산후조리업무 외에 다른 업무를 겸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됐다. 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는 "간호조무사가 해도 충분한 일인데, 꼭 간호사를 채용토록 규제해서 인건비가 상당히 많이 든다"며 "지나친 규제로 운영이 상당히 어렵다"고 강조했다.

D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산후조리원 시설 자체를 아예 산부인과 병·의원을 운영해야만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대안에 대해 언급했다. 이 교수는 "결국 아이를 낳는 일을 도맡아하는 의사는 적자에 시달리고, 이후 짧은 기간의 의료 외 서비스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이는 구조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는 분만 수가가 많이 올랐지만 여전히 원가에 못 미치는 구조"라며 "산후조리원을 운영하지 않고는 산부인과 유지가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산부인과 쪽 수가를 분만을 해도 수익이 날 정도로 올려주거나, 아니면 산부인과만이 산후조리원을 할 수 있도록 법령을 고쳐놓으면 조금이라도 산부인과 재정수지가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으론 사실상 '산후조리원'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밝혔다. 이는 산부인과에서의 건강보험 재정을 운운하며 입원기간을 단축시킨 데 따른 산물이라는 것.

D 교수는 "산모가 몸을 추스를 수 있을 때까지 병·의원에서 전문적인 입원치료를 받고, 태아도 위생적인 공간에서 지낼 수 있게 했다면 '산후조리원'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는 잘못된 수가제도로 인한 파생품"이라고 비판했다.

오히려 건보 재정 절감을 하려고 의사들을 쥐어짜면서, 산모들의 본인부담만 높아지게 됐다는 것. 이어 "잘못 파생된 산후조리원의 원인부터 발본색원하는 노력은 커녕 국가가 나서서 사립 기관마저 말살시키려는 공공 산후조리원을 내놓는 등 제도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며 "이렇게 된 이상 산과의사와 산모를 위한 제도로 수정,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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