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서 변호사로 변신하게 된 그간의 과정, 그리고 후배들을 위한 조언

[특별인터뷰-의사, 의료산업 중심에 서다①]  김정은 미국변호사
"진료하는 의사로 평생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면,  울타리 밖으로도 고개를 한 번 내밀어 보세요.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본인의 선택입니다."

의사들이 진료 현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환경 속에서 의료산업 중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의료산업 전문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롭스 앤 그레이 김정은 변호사와 서면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준비 과정과 후배들의 진로 선택을 위한 조언을 들어봤다. 

▲ 올바른 의료제도 실현을 위해, 한국의 의료산업 성장을 위해 의사에서 미국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김정은 롭스앤 그레이 변호사.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 달라. 

현재 미국 대형로펌 중 하나인 롭스 앤 그레이에서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롭스 앤 그레이는 약 150년 전 롭스와 그레이라는 성을 가진 하버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보스턴에 설립한 로펌으로, 보스턴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한국사무소를 포함해 약 1100명의 변호사가 근무하고 있다.

의사이자 변호사인 만큼 의료와 관련된 고객사 업무를 하고 있다. 미국은 송무변호사보다 법원에 발을 들여놓을 일이 전혀 없는 자문변호사가 더 많다.

자문변호사들은 기업경영, 투자, 인수합병, 정부규제 등과 같은 다양한 법률 관련 서비스를 기업들에게 제공한다. 보통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 빅데이터회사, 벤처캐피털회사, 바이오기업 등에게 다양한 투자, 인수합병 그리고 기업경영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의료기기회사의 특허나 자산 매각, 바이오기업이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문서 작성, 빅데이터기업의 기업경영 관리, 바이오기업의 고용계약서 작성 등이 있다. 회사 업무 외에도 하버드 의과대학 수련기관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의 임상시험심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의사에서 변호사로 돌연 전환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연세의대에 1997년 3월에 입학했고 2003년 2월에 졸업했다. 서울대병원에서 1년간 인턴으로 근무했고, 2006년 7월 미국 로스쿨에 진학하기 전까지 봉직의로 근무했다.

2000년 의사 총파업 당시 본과 2학년 학생이었다. 파업을 겪으며 느낀 것은 한국 의사들이 아무리 좋은 정책적 의견을 갖고 있더라도 정치적 힘과 세련됨이 부족해 실제적으로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는 '의료에 대해선 의사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식의 주장에 상당한 반감을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본과 3학년인 2001년에는 크고 작은 일들로 병원에 드나들 일이 있었다. 개에 코를 물려 치료를 받았고, 침샘에 돌이 생겨 작게나마 수술을 받기도 했다. 막상 의대생이 아픈 상황이 되니, 어디에서 어떻게 치료를 받아야 할지 막막했다. 선배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병원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환자들은 어떻게 치료를 받을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의문을 갖던 중 의료법윤리학 과정에서 임상과목 외에도 의사가 공부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료소송, 의료정책이란 것 자체가 법적 테두리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법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실습을 하면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도 궁금해졌다. 연구에 근거를 갖춘 임상시험이 쌓이고, 안전하고 유효성이 입증된 약이 시장에 나와 환자에게 처방된다. 의료산업은 '법' 테두리 하에서 이뤄지는 산업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봉직의로 일하면서 연세대 의료법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아직 의료정책과 산업 자체가 초창기였던 2000년대 초반 당시 한국에서는 의료 관련법을 공부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미국 로스쿨 행을 결정했고, 2006년에 유학을 시작해 변호사로 근무하게 됐다. 
 
-의사, 변호사의 업무의 차이점과 매력은 무엇인가? 

의대졸업 후 변호사가 되기까지 컨설팅,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의료정책연구, 로비스트 등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기업자문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에 벌떡 일어나 출근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사실 의사와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클라이언트(환자)에게 법적(의학적)으로 해결해야 할 이슈(질병)가 있고, 변호사(의사)는 이슈(질병)을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기 때문이다. 다만 의사와의 차이는 아무리 실수를 해서 클라이언트에게 손해를 입혀도, 최소한 사람이 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사는 다른 한 사람의 생명을 다룰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감당해야 하는 책임의 정도가 다르다. 

▲ 2003년 연세의대 졸업 당시 어머니와 함께

대신 변호사는 공정함(fairness)과 협상(negotiation)을 즐길 수 있다. 의사는 질병을 상대로 공정하게 협상을 할 수 없다. 질병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정복해야 하는 대상이지, 협상의 대상은 아닌 탓이다.

정책을 수립하든, 고객을 변호하든, 결국에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다. 만남에 있어 '의사'라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 의사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더 높아지는 경우가 있고, 의사이기 때문에 의료계 고객이 원하는 것을 빨리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향후 변호사로의 경험이 쌓이면서 의사라는 사실이 더욱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앞으로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가?

2003~2006년 한국 의사로 처방전을 발행할 때 한국 제약회사들의 약은 대부분 제네릭이었다. 그 때 당시만 해도 한국은 신약개발을 하는 국가가 아니었다. 그럴만한 실력도, 계획도, 비전도 부족했다. 이제 한국 제약회사들은 신약개발 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제약회사 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mHealth 등 바이오와 관련된 산업 전반에서 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한 국가가 개발국으로 성장할수록, 인구가 노령화될수록 의료산업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의 성장 가능성에 비해 내수시장은 터무니없이 작다. 결국 한국 의료산업은 해외를 바라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하며 배운 모든 지식과 경험뿐만 아니라, 미국 최고의 바이오 분야 변호사들 밑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 기업들을 도울 것이다.

▲ 롭스앤 그레이 내부 전경.

보다 장기적으로는 2000년 의약분업 총파업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한국의 법조계, 정치계, 고위 행정부와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며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의사들의 메시지를 전해 의료제도 개선에 기여하고 싶다. 
 

-후배들의 진로 선택에 조언을 한다면?

우선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몇 년 동안 본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평생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를 매우 심각하게 고민했다. 시험에 치이고 실습에 치어 그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떤 실습과 시험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 말하고 싶다. 이런 고민이 없다면 아무리 시험을 잘 보고 실습을 잘 해도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찾기 힘들다.

본인은 '평생 진료실에서 환자 진료를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사회 시스템을 생각하고 접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있다'고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임상의사는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분명히 말해둘 것은 '내가 의대를 졸업했는데 임상의사가 되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이 뭐라고 생각하실까?', '어디가서 무슨 과 의사라고 말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등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타인의 시선을 뒤쫓지 말길 바란다.

-비임상과를 선택하고 싶지만 망설이는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는 한 말씀.

'나는 어떤 인간인가'라는 고민에서 시작해 특정 관심분야를 선택하게 되면 그 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최소 몇년간은 사회적, 학문적 공부를 한 다음 인턴십과 같은 트레이닝을 받게 된다. 이후 다양한 직업적 선택이 눈에 들어오면서 비로소 최종 커리어를 꽃피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비임상과를 선택하더라도 의사를 포기하는 선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기본적으로 임상의사가 될 것을 전제로 의대에 진학하지만, 그런 전제를 뒤엎을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라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잘 이해한다면 과감히 도전할 수 있다.

이미 국내에도 다양한 진로를 선택한 비임상의사들이 꽤 있다. 후배의사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질문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위험도 뒤따를 수 있다. 반대로 위험이 없는 선택이란 없다. 임상의사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임상의사로서의 삶이 행복하다거나 또는 훌륭한 임상의사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진료하는 의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평생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울타리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