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없애고 다양한 치료전략이 공유될 수 있기를

캣 아티스트 루이스웨인, 영화배우 비비안 리,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이자 조현병을 앓았던 사람들이다.

 

 

조현병(정신분열병)의 영어명칭인 'Schizophrenia'는 1908년 저명한 정신과의사인 Eugen Bleuler에 의해 제정됐다. Schizo는 '분열되다', '파괴되다'를 의미하고 phren은 '지능'이나 '마음' 혹은 정서를 일컫는데 이는 고대인들 사이에서 폐와 횡경막을 가리켰다. 그는 이전의 '조기치매(Dementia praecox)'라는 단어처럼 절망적인 병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희랍어 어원을 동원한 명칭으로 작명했다.

하지만 이 용어로 인해 많은 일반인들의 오해가 생겨났다. 성격이나 인격이 분열되는 것으로 잘못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환자들이 병명으로 인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이 두려워 조기에 병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대한조현병학회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007년부터 병명 개정작업에 착수했고 이후 '조현병'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게 됐다.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라는 뜻으로 병으로 인한 정신의 부조화를 치료를 통해 조화롭게 하면 좋은 소리를 내는 현악기 처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뇌신경망의 이상 증세로 발병하는 조현병의 특성상 뇌신경망이 느슨하거나 단단하지 않고 적절하게 조율돼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어 정신분열병이라는 병명에서 비롯된 편견을 바로잡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전남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완 교수는 "간호대학생 360명을 대상으로 정신분열병과 조현병이라는 병명이 주는 편견과 낙인의 정도를 알아보는 연구를 실시한 결과 조현병은 정신분열병에 비해 위험성과 관계 및 권리에 대한 차별행동이 유의하게 낮았다"면서 "정신건강질환을 동반한 개인과 대중 간의 직접적인 접촉이 증가하면 낙인현상의 감소를 기대할 수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한 낙인 감소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개명의 노력과 달리 여전히 질환의 인식도와 환자의 치료 적극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고 다양한 치료전략이 공유될 수 있도록 조현병을 분석했다.

 

정상인보다 범죄율 15배 낮은데,,
'폭력 성향 강해 위험' 인식 뚜렷

 

지난 2008년 보건사회연구원이 시행한 정신보건과 관련한 사회적 낙인에 대한 조사결과를 보면, 조현병 환자의 자해 가능성은 78.6%, 타해가능성은 52.5%로 나타났다<표 1>. 또 '조현병 환자는 예측할 수 없다'에 65.8%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조현병 환자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58.3%가 동의했다.

 

결과만 봐도 조현병과 환자를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선에는 폭력성이 높아 위험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뚜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현병의 치료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치료 순응도와 재활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낙인을 제거하는 활동이 절실하다.

1980년대에는 전문가들 대부분이 조현병에서 폭력성의 위험이 증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 20년 동안의 대규모 대상 인구조사를 실시했더니 20개 이상에서 조현병이 폭력성과 관련이 있다는 결과가 나와 임상에서는 혼란이 가중됐다.

여기에는 비록 전체 사건에서 조현병 환자가 저지르는 건수가 소수에 해당함에도 살인이나 폭력성이 조현병과의 통계적인 유의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한 논문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폭력성은 조현병의 병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뿐더러, 조현병 환자의 폭력성은 질환과 동반되는 물질관련 장애의 영향이라는 견해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한 연구에서는 조현병과 물질장애가 동반된 환자와 물질장애만 진단받은 환자 간의 폭력성 차이 또한 없다고 보고됐다.

폭력의 발생 위험인자는 적대적인 행동, 최근의 약물오용(drug misuse), 심리치료에 대한 거부감, 충동조절약화, 최근의 물질과 알코올 오용, 약물 치료에 대한 거부반응 등이다. 그러므로 정신건강질환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줄이기 위해 이러한 요인들이 중점적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소견이다.

다시 말해 폭력은 조현병의 증상이 아니라는 것. 조현병 환자의 60%가 우울증상을 보이는데 이들은 폭력적인 성향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위축되고 소외된 경우가 많다.

지난 2011년에 발표된 경찰통계연보만 봐도 정신건강질환자의 범죄율은 0.3%로 아주 극소수에 해당한다. 범죄 발생의 유형별 집계 현황에서는 정신질환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강력범죄자 2만 5346명 중 509명, 폭력범죄자 39만 2042명 중 1506명으로 전체 가운데 0.4%을 차지했으며, 조현병 환자 10만 명 중 단 40명만이 강력범죄를 일으킨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표 2>.

 

대검찰청의 범죄분석 보고서에서도 2010년을 기준으로 정신건강질환자의 범죄율은 정상인 범죄율의 10분의 1로, 정상인의 범죄율이 약 1.2%인데 반해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0.08%였다. 즉 정상인의 범죄율이 15배 가까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한양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최준호 교수는 "폭력은 조현병의 전체 이환된 경과에서 모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첫 정신병 삽화에서 주로 발생한다. 또 반수가 삽화의 발생에서 치료를 받게 되는 시점 사이에 주로 나타난다"면서 "이 시기에 생성된 폭력성은 때론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영구적인 손상을 주는 정도의 심한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경찰대 행정학과 박지선 교수도 "정신건강질환자의 범죄를 예방하고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치료비 지원, 사회 안전망 구축, 고위험군 지속 관리 등 정책적 제도적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망 위험 일반인의 4.3배…사고 사망 위험은 12배
자살 예방위한 약물 치료 꾸준히 병행해야

 

조현병이 심해지면 충동 조절에 문제가 생기고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조현병 환자들은 자살 위험도도 높기 때문에 늘 주의가 필요하다.

조현병 환자는 일반인에 비해 2~3배 높은 사망률을 보이며, 평생 자살률은 5% 정도로 자살 위험 요인들에 대한 연구들이 행해져 있으나 대부분 인구학적, 임상적 요인들에 머물러 있고, 임상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실제로 각종 통계를 봐도 전체 환자들 가운데 조현병 환자의 10~15%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50% 이상이 자살을 시도했다. 자살을 선택한 환자들은 주로 청소년이거나 초기 성인기에 속해 발병 후 수년 내에 자살하므로 나이도 비교적 젊다. 또 입원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환자의 경우 절반이 퇴원 후 수주에서 수개월 내에 자살해 소수만이 입원 기간 중에 자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의대 이기영 교수는 입원 당시 의무 기록과 혈액학적 검사 결과를 활용해 조현병 환자의 사망 원인 및 사망과 관련된 위험요인을 밝히고자 연구를 실시했다.

연구팀은 1989~2006년까지 18세 이상의 조현병 환자 1464명의 최근 입원시의 의무기록을 참조해 사회 인구학적 변인들을 찾았고, 입원시 행했던 혈액검사 결과들을 확인했다. 또 2009년 12월을 기점으로 통계청의 협조를 얻어 연구 대상자의 사망 여부 및 사망 원인을 확인했다.

사망원인에 따라 자살과 사고, 의도를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한 사망을 사고사군, 신체적 질병으로 사망한 군을 비사고사군, 2009년 12월까지 생존해 있는 환자들을 생존자군으로 나눠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환자 가운데 141명(9.6%)이 사망했고, 사고사군의 사망은 자살이 66명(64.7%), 사고로 인한 사망이 22명(21.6%), 의도를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한 사망이 14명(13.7%) 이었다. 비사고사군의 사망은 암이 11명(28.2%), 심혈관계 질환이 7명(17.9%), 내분비 질환이 6명(15.4%) 순이었다.

세부적으로는 조현병 환자가 일반인과 비교해 사망 위험이 4.3배, 사고로 인한 사망은 12.2배, 비사고로 인한 사망 역시 2.1배 높았다. 또 자살과 사고 등으로 인한 사망자군이 생존자군에 비해 콜레스테롤이 낮은 경향을 보였고, 알칼리성 인산분해 효소가 유의하게 높았다. 특히 높은 자살사고와 자살 시도의 과거력이 있을수록 사고사의 위험이 컸다.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해보면 조현병 환자는 자살과 사고로 인해 사망할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12배가량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현병 환자에서의 자살률을 효과적으로 낮추기 위한 효과적인 치료전략이 제공돼야 할 것이다.

조현병 환자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치료법은 가장 기본적으로 가족치료를 포함한 정신치료와 약물치료 그리고 입원 치료가 주로 실시된다. 약물치료에는 클로자핀이 올란자핀보다 자살 위험도를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빈도 수를 효과적으로 줄여준다. 항우울제인 SSRI(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역시 자살을 예방하는 데 혜택이 크다.

입원치료는 진단적 목적, 약물 관련 이슈, 타인이나 본인에게 위험한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존재하거나, 실제적인 생활이 어려울 때 등에 고려한다. 최근 경향은 무의미한 장기 입원을 피하고 가능한 한 지역사회로 빨리 복귀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환자가 입원하게 될 경우 담당 주치의가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모니터링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치료는 조현병 환자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상담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질환의 이해도를 높여 환자에게 지지적이고 협조적인 환경을 조성해 재발률을 줄이고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적절한 대처방안을 찾아 위험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용인정신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선철 교수는 "정신치료와 약물치료를 꾸준히 병행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인 조현병 환자들에서 나타나는 자살의 역학적인 특징이 있는지, 있다면 어떠한 것이 있고 또 그 예방법은 무엇인지 심도있게 고민해보고, 한국인 환자만을 위한 맞춤 치료 전략이 제정될 수 있도록 향후 추가적인 연구가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환 자체 새로 봐야
의사 관찰보다 환자 주관적 경험 중요
뇌구조학·신경인지 접근 가능

 

조현병은 분명 까다로운 질환이다 보니 질환에서의 병식을 새롭게 이해하고 치료 접근법을 달리 해보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병식(Insight)은 질병에 대한 통찰을 말하는데,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인식하고 이러한 변화가 질병임을 파악하고 치료가 필요함을 판단하는 다면적인 개념으로 구성돼 있다.

정신병적 장애에서는 병식 결여가 흔한데 조현병에서는 약 60%, 우울증은 50%까지 병식이 없다.

어떤 질환이라도 완벽한 치료 순응도를 얻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조현병과 양극성장애 등과 같은 정신건강질환은 낮은 순응도 때문에 치료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정신병적 장애의 임상에서 병식이 떠오르는 주된 이유는 임상가의 관찰에 의한 객관적인 진단기준의 한계와 환자의 주관적 경험과 기술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증가했다는 데 있다. 더불어 신경과학적 측정 및 평가 기술이 발전하면서 병식과 관련한 뇌구조학 및 신경망, 신경인지 등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졌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투약순응(Medication compliance)이라는 용어는 점차 치료준수(Treatment adherence)라는 용어로 전환되는 추세다. 이는 과거의 일방적이고 권위적이던 의사 환자의 관계를 지양하고 좀 더 환자중심적이고 환자의 결정권이 존중되는 관계를 조성해나가는 분위기에 발 맞추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치료순응도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어떤 것이 있고 이를 높이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효과적인지 현재까지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충분한 교육, 투약 결정, 질병 관리에 환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환자 스스로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방법들이 강조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최근에는 장기지속형 주사제나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투약 관리가 도입됐다.

이처럼 여러 가지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조현병 환자 중 80% 이상이 전혀 병식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부분적 병식밖에는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단순히 병식이 있고 없음을 따지는 범주적 접근보다 다차적원적 요소들을 분리해 고려하는 차원적 접근이 더 타당하다고 전문가 다수는 말한다. 즉 무조건 치료에 순응하지 않으면 병식이 없다는 단순한 논리보다는 병식이 있어도 치료에 순응하지 않을 수 있고 역으로 병식이 없어도 치료에 순응할 수 있음을 고려하자는 취지다.

이런 점을 반영해 최근에는 인지적 병식과 임상적 병식을 분류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인지적 병식(Cognitive insight)이란 스스로를 성찰하고 자신의 오류가능성을 인정해 제3자의 시각에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능을 뜻한다. 이 개념을 처음 밝힌 정신과 의사 Aaron Temkin Beck를 비롯한 학자들은 인지적 병식이 조현병의 특징적인 메타인지의 장애나 사회인지의 장애로부터 기인된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특정 뇌 부위의 형태학적 이상과 관계된다는 보고도 존재한다.

이에 반해 임상적 병식(Clinical insight)은 정신건강질환이 있음을 인식하고 자신의 질환이 가져오는 사회적 결과를 파악해 치료의 약물효과를 판단한다는 요소로 설명이 가능하다. 후자는 인지기능 이상을 비롯한 생물학적 이상뿐 아니라 환자가 갖는 질병관, 지역 사회의 문화 전통 교육의 정도, 의사와의 관계 등 다양한 심리·사회문화적 요인에 좌우된다.

을지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정성훈 교수는 "병식은 이렇듯 질병에 의해 손상되는 고유 영역뿐 아니라 환자와 의사의 가치관이나 해석의 틀의 차이에서 야기되는 갈등을 포함한다"면서 "결론적으로 병식의 회복을 통해 치료 순응도를 높이려는 노력은 이러한 병식의 다차원적인 면을 고려해 그에 부합하는 다양한 방식으로의 접근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동국대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인원 교수도 "병식과 치료 순응도를 높이기 위해서 초기 또는 급성기의 약물치료와 함께 동기강화 및 인지행동, 정신재활 등을 통한 정신의학적 교육훈련을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면서 "더불어 가족들의 정신적·사회경제적 문제와 함께 정신건강질환으로 인한 제반 부담을 감소하는 노력도 동반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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