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민건강보험법을 어기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법에 어긋난 행보가 잘못된 것인지를 알면서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최근 '무자격자 요양기관 확인 제도'를 도입하려는 건보공단의 움직임은 건강보험법 제 14조, 47조 등에 어긋난다.
 

 

건보법 제13조(보험자)에 따르면 건강보험의 보험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하며, 제14조(업무 등) 1항에 공단은 가입자 및 피부양자의 자격 관리 업무를 관장한다고 돼 있다.

제47조 제1항에 따라 급여비용을 청구하려는 요양기관은 심평원에 요양급여비용의 심사청구를 해야 하며, 심사청구를 받은 심평원은 이를 심사한 후 지체 없이 그 내용을 공단과 요양기관에 알려야 한다.

또한 47조 제2항에 따르면, 심사 내용을 통보받은 공단은 '지체 없이' 그 내용에 따라 요양급여비용을 요양기관에 지급하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공단은 법적 근거도 없는 제도를 무리하게 강행하려고 하고 있다. 몰라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공단 급여관리실에서도 법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

게다가 이를 시행할 경우 의사 폭행, 요양기관 상대로 민원 발생 등을 예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단의 업무 편의를 위해 의료계 의견 수렴 없이, 7월부터 강제 시행을 밀어부치고 있는 것이다.

공단의 위법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간 건보공단은 심평원의 청구·심사 업무 이양에 관한 의견을 개진해 왔다. 이는 건보법 제62조, 63조에 어긋난 발언이다.

전문심사가 아닌 일반심사의 경우에도 건보공단으로 업무를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한 바 있다. 

 

건보법 62조에는 '요양급여비용을 심사하고 적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심평원을 설립한다'고 명시됐다. 63조에는 심사, 적정성평가, 심사기준 및 평가기준 개발, 업무 연구 및 국제협력 등의 심평원 업무를 규정하고 있다.

무자격자 확인제도와 마찬가지로 위법한 내용을 떳떳하게 주장하고 있어 더욱 문제다.

공단에서는 지난 2년여간 지속적으로 이와 관련한 의견을 개진하고, 건강복지플랜 보고서까지 만들어 국회와 정부에 제출하는 등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에 설득을 당한 탓인지 최근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등에서 공단-심평원 통합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공단에 '현지조사 권한'을 달라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현지조사 시행은 보건복지부장관의 권한으로 '건보법 제97조'에 명시됐으나, 각 지역본부-지사 등을 의식한 탓인지 '강제조사 권한'을 이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건보법에 따라 복지부장관의 명령이 있으면 복지부와 심평원이 현장에 나가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건보공단 측에서 현지조사 동행을 요구한 관계로 공단 지사 직원도 함께 현장에 나가고 있다.

업무적인 권한을 임의로 넓혀줬음에도, 공단은 만족하지 않고 '장관 권한'까지도 넘보고 있는 것이다.

한편 공단은 꼭 위법한 주장만 펼치는 것은 아니다. 의료계에 불리했던 '수가계약'에 대해서는 위법한 주장을 펼치기 전에, '건보법'을 먼저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의료계에서는 "예결산 심의 전으로 수가계약 시기를 바꿔달라"고 매년 요구했지만, 공단은 "정해진대로 해야 한다. 법이 바뀌기 전까지 임의대로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결국 건보법이 개정됐고, 이후 공단은 지난해부터 5월에 수가계약을 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수가계약에 있어 불합리한 부분들을 개선해달라는 다양한 요구 등에 대해 공단 측은 "법을 고치기 전까지는 원래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선을 긋고 있는 상태다.

법에 대한 엄정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속적으로 법에 어긋나는 행보를 펼치는 '이율배반적' 건보공단의 행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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