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이후 환자안전법 통과 기대감 커져...정부 기관들 물밑 경쟁 심화

 
세월호 사건 이후 6월 임시국회에서 환자안전법이 통과될 확률이 커지면서 환자안전업무의 컨트롤 역할을 할 기관이 누가 될지에 대한 정부기관들의 물밑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현재 논의 중인 환자안전법은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이 지난 1월에 발의한 것과 새누리당 신경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두 의원의 법안이 조금 다른 형태지만 오 의원의 법안을 기본 골격으로 신 의원의 법안 내용들이 보완돼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법안의 핵심 쟁점은 환자안전활동에 대한 기관을 어떤 형태로 운영하느냐다. 즉 독립적인 기관을 새로 만들어 환자 안전에 대한 모든 것을 컨트롤하게 할지, 아니면 현재 환자안전활동을 하는 의료기관평가인증원 등 기존 기관들이 이 업무를 하게 할지 등을 결정하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했다고 알려졌다. 기획재정부가 비용이 드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독자적인 기구 설립도 아주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분위기가 이렇게 흐르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환자안전을 다루는 새로운 기관이 설립되든 아니면 환자안전을 담당하던 기존 기관이 맡게 되든 인력과 재원 투자 등은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심평원이다. TFT를 구성하고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하지만 심평원측은 환자안전법 신설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심평원 환자안전 TFT 박춘선 팀장(연구조정실 심사평가연구팀장)은 “환자안전법 신설에 따른 전담기구 배치에 대한 우리원의 의지는 잘 모르겠다. TFT는 전담기구를 위한 밑거름도 아니다”라며 “법과는 관계없이 원래부터 환자안전에 관심을 두고 있어 TFT를 마련했다. 세월호 사건도 그렇고 세계적인 추세도 '환자안전'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지금까지 급여기준 마련, 심사, 적정성평가, 의료질 관련 업무 등 심평원의 대부분의 업무에서 비용대비효과, 의학적 근거를 중점적으로 봤으나, 이제는 환자안전으로 바꿔나갈 예정”이라며 “앞으로 심평원은 환자의 진료정보를 토대로 환자안전에 필요한 관리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위해 환자안전자문위원회도 구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제세 의원의 법안이 올해 1월 발의됐을 때 따가운 눈총을 받은 곳이 인증원이었다. 인증과 환자안전을 연계하기 위해 오 의원이 법을 준비할 때 인증원이 함께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연세의료원에서 열린 환자안전연구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인증원 정연이 실장은 “초기 오 의원의 법이 마치 인증원의 법인 것처럼 눈총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며 “인증원이 환자안전과 질향상 등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증원이 환자안전활동에 대한 적임기관이라는 것은 숨기지 않았다.

정 실장은 “인증원은 현재 환자안전자문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며 “인증원도 환자안전법이 통과돼 보고시스템이 증가했으면 하고, 이것이 인증과 함께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NECA도 보건의료안전연구팀이라는 별도의 팀을 꾸려 환자안전활동에 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NECA의 한 관계자는 “6명이 보건의료안전연구팀을 만들어 움직이고 있고, 보건의료안전자문위원회도 활동하고 있다”며 “환자안전에 대한 에비던스가 부족하고 이에 대한 투자도 부족해 활동이 뜸한 상태”라고 밝혔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도 기존의 업무 이외에 환자의 안전에 대한 예방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6월 환자안전법이 어떤 형태로 통과되느냐에 따라 기관들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환자안전을 다루는 독자적인 기관을 두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조심스런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심평원의 빅 데이터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데이터를 공유하고 자율보고와 의무보고를 하는 과정을 통해 데이터를 쌓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의료사고감정단 구홍모 선임조사관은 “현재 심평원을 비롯한 NECA, 인증원, 중재원 등이 환자안전에 대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려 나서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환자안전 기구를 설립하는 것은 반대”라고 밝혔다.

또 “환자안전에 중요한 것은 보고다. 자율보고와 의무보고로 나눠 자율보고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고, 적신호 사고에 대해서는 의무보고를 반드시 하게 해야 한다”며 “법률을 통해 이를 진행시키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심평원 등 몇몇 기관의 의욕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환자안전연구회 김석화 회장(서울대병원 성형외과)은 지금은 환자안전에 대한 보고를 활성화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기관들이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회장은 “인증원이 이 업무를 한다고 하면 병원들이 과연 의료사건을 마음 놓고 보고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의료사건 보고가 소홀해질 게 확실하다”며 “NECA도 의욕을 보이는데 과연 이들이 이 업무를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의문이다. NECA도 정부기관이라 복지부가 정보를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또 “지금은 독자적이 기구설립이냐 혹은 어떤 기관이 환자안전 업무를 하느냐보다는 병원들이 의료사건을 자유롭게 보고하고, 의료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했다.

환자안전연구회 염호기 부회장(백병원 호흡기내과)도 환자안전에 대한 보고체계를 문화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법적으로 하면 형식적으로 흐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염 부회장은 “환자안전에 대한 보고를 법적으로 정해 강제보고를 하게 하는 것보다 자율보고 시스템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우리는 현재 환자안전보고에 대한 현황도 모르고 있는데 법안이 먼저 튀어나와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환자안전활동의 주체가 누가 되느냐와 무관하게 환자단체들은 6월에 환자안전법이 통과되길 바라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오제세 의원과 신경림 의원이 발의한 법 모두 흡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6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됐으면 하는 게 환자단체의 희망"이라며 "환자 안전 문제의 핵심은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것이므로 어떤 기관이 됐든 주관부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환자안전법 자체를 반대하는 기관은 대한병원협회다.

병협측 한 관계자는 “18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 888개 정도다. 이 중 5개만이 통과됐다”며 “미국 캘리포니아의 환자안전 사례가 아이디얼하지만 과연 우리나라가 환자안전에 드는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환자안전법이 통과돼 정부에서 기관을 둔다면 병원들이 과연 환자안전 사고에 대해 보고를 할지 의문이고, 전담인력을 배치해야 하는데 의료기관이 또 법을 어기게 되는 꼴이 될까 두렵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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